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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내려오는 가족회관 비빔밥

전주 이야기 3

by 김경희

친정아버지는 가족회관 비빔밥을 좋아하셨다. 정갈하신 성격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가족회관 비빔밥은 누런 놋그릇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뜨근해진 놋그릇에 하얀 쌀밥을 가지런히 담고 고사리, 미나리, 도라지, 당근, 콩나물, 오이, 호박, 청포묵을 삥 둘러앉힌다. 그 위에 볶은 소고기를 얹고 은행과 잣을 고명으로 올린다. 울긋불긋 보기에도 화려한 색감과 고급스러운 비빔밥의 자태는 조선 시대의 식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비빔밥의 기원설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선 시대 ‘골동반(骨董飯)’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골동반’은 조선 시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데, 여러 반찬을 밥 위에 올려 비벼 먹는 음식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용적 발상에서 시작되어, 점차 궁중 음식으로 발전하면서 화려한 고명과 색감을 더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원설은 제사 음식의 ‘혼밥(魂飯)’에서 유래되었는데, 제사를 지낸 뒤 조상에게 올린 밥을 비벼 먹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원은 바쁜 농번기에 여러 반찬을 따로 먹을 여유가 없던 농부들이, 밥에 나물과 고추장을 한데 넣고 빠르게 먹기 위해 비벼 먹은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는 비빔밥에 대해 이어령 선생은 ‘한국적 미학’이라고 극찬했다. 고기, 나물, 밥 각자 독립된 맛이 하나로 섞여 새로운 맛으로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비빔밥에 있다는 말이다.

전주 전라감영 5길에 위치한 가족회관은 비빔밥의 고장 전주를 대표하는 식당이다. 일년내 쉬는 날 없고 브레이크타임 없이 옛날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내가 여고 2학년 되던 해(1978년) 개업해서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 식당은 김년임 할머니가 창업주다. 김 할머니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9호 ‘비빔밥 기능보유자’이자 전주 음식 명인 1호가 되셨다.


친정아버지가 전주 시청에 근무하던 시절, 시청과 도청을 사이에 두고 가족회관이 있었다. 두 개의 관공서를 양쪽에 끼고 있던 이 식당은 공무원들의 모임 장소이자 손님으로 북적대던 고급 음식점이었다. 지금은 세월 앞에서 견뎌낼 수 없었던 식당의 빛바랜 내부가 네트로 한 감성을 자아낼 뿐이지만, 예전엔 전주에서 내놓으라는 사람들의 연회장소로 쓰일 만큼 고급스러웠다.


가족회관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비빔밥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가족회관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오빠, 언니, 나, 동생 할 것 없이 결혼 피로연 장소로 가족회관을 선택하셨다. 결혼해서 배우자의 집안과 잘 어우러지라는 기원을 담은 마음이셨는지도 모르겠다.


친정 아버지 덕분에 지금도 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되면 남편과 함께 가족회관에 가서 비빔밥을 먹는다. 가족회관이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아서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 안고서. 비빔밥을 먹는 날은 구리하라 다케히코(栗原貴久)가 쓴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우동집이 생각난다. 삶의 응원이 깃든 따뜻함이 살아있는 식당 말이다.


가족회관은 우리 부부에게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에서 비빔밥 한 그릇을 마주할 때마다, 젊은 날의 설렘과 서툰 약속, 함께 걸어온 세월의 무게가 고추장과 함께 비벼진다. 삶의 단맛과 쓴맛이 고루 섞이며 작년에도 잘 살아왔으니, 올해도 다시 잘 살아가 보자 서로를 응원한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해의 결혼기념일에 가족회관의 비빔밥을 먹는다.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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