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주 이야기
전주 한옥마을 끝자락에 다다르면, 어느 순간 붉은 벽돌의 깊은 울림을 가진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동 성당.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벽돌 사이로 먼 옛날의 숨결이 새어 나오는 듯한 이 성당은, 누군가에겐 신앙의 집이지만 나에게는 어린 날의 풍경을 지탱해 주던 하나의 거대한 상징이었다.
사실 나는 어려서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전동 성당은 늘 바라만 보고 지나치던 건물이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관광객의 시선으로 성당을 찬찬히 바라보기도 했고, 내부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당의 첨탑이다. 마치 하늘을 천천히 꿰뚫는 바늘처럼, 첨탑은 붉은 벽돌 위에서 날카롭게 솟아 있다. 햇빛이 탑의 곡선을 따라 비치면 은은한 흔들림이 생기는데, 그 빛을 보고 있으면 성당이 단지 돌과 벽돌이 아니라 시간과 기도를 합쳐 만든 조각처럼 느껴진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성당의 전체 구조가 ‘십자가’를 그리고 있는 듯 보인다. 외관은 붉은 벽돌이 서로의 결을 맞추며 층층이 쌓여 있다. 어떤 벽돌은 오래된 장인의 손길처럼 거칠고, 또 어떤 벽돌은 오래 말린 흙빛처럼 은근한 색을 품고 있다. 월형 돔 아래 반원형 아치 창문들은 벽면을 따라 느리게 반복되고,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 뒤로 비친 햇살이 여러 색으로 번져 화려한 빛을 만든다. 그 아래 있는 작은 장식들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히 붙어 있다.
전동 성당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외관만큼이나 깊다. 이곳은 원래 조선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자리였다.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제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곳. 그 피가 스며든 땅 위에, 훗날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들이 조심스럽게 돌을 올리고 벽을 세웠다고 한다. 어떤 이는 추운 겨울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이는 조선 땅에서 배운 언어로 복음을 전하려다 병에 걸려 쓰러졌다. 그들의 헌신과 순교가 성당의 주춧돌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성당 뒷 쪽에는 신부님들이 기거하는 고요한 공간과 수녀님들이 작은 정원을 가꾸는 자리도 있다. 그 옆편으로는 성심여고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어린 시절 그 길을 스칠 때마다 늘 작고 묘한 설렘을 느꼈다. 마치 성당과 학교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숨을 고르곤 했다.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성당 입구 맞은편에는 서약국이 있었다. 유리문 위에 걸린 나무 간판은 햇빛에 색이 바랬고, 문을 열면 약 냄새와 오래된 나무 향기가 섞여 있었다. 약국집 아들은 우리 반 서봉국이었다. 6학년 전교 회장. 키는 작았지만 콧날이 오뚝하고 눈이 유난히 반짝이던 아이. 그 애가 골목에서 친구들을 부를 때면 작은 체구와는 달리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성당 앞에서 우리와 뛰어놀다가도 어느 순간 조용히 성당 첨탑을 올려다보곤 했다.
전동 성당의 빛깔을 말하자면, 그것은 단지 ‘붉다’ 거나 ‘고풍스럽다’라고 표현할 수 없다. 아침 햇살이 비칠 때는 이른 새벽의 따뜻한 핏빛 같고, 해가 기울 무렵이면 말린 포도주처럼 짙어진다. 비 오는 날에는 벽돌 하나하나가 젖은 흙냄새를 품으며 색을 더 무겁게 눌러 담는다. 성당 앞에 서면 어린 날의 내가 서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렀지만, 전동 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붉은 벽돌의 체온을 지키고 있다. 순교자들의 희생과 푸른 눈 가진 선교사들의 숨결, 성심여고로 이어진 시간의 길, 그리고 서봉국이의 또렷한 얼굴까지. 지금도 전동 성당을 지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보면 어린 시절의 마음 한 조각이 빛을 머금고 조용히 되살아나는 것 같다.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