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심는 마음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by 김경희

2025년도 이제 사흘 뒤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다. 98인의 작가가 모인 ‘블로그 작가협회’의 회장직을 맡은 지 어느덧 1년 4개월이 흘렀다. 임기를 마무리할 8개월 뒤를 생각하면, 지나온 시간의 무게와 남은 시간의 소중함이 교차한다. 블로그 작가협회는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일상을 작품으로 빚어내려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임이다.


우리는 시장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비상업적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글이 곧 삶이 되어 숭고해지기를 추구하며, 뼛속까지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한다. 모두가 건강한 나무가 되어 울창한 문학의 숲을 이루는 것, 그것이 블로그 작가협회의 존재 이유다.


이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출발선에서 매년 세미나를 열고 문예지를 발간하기로 약속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두 차례의 초청 강연회를 열었고, 올해 봄에는 협회 문예지 ‘Bletter 창간호’를 출간했다.


감사한 점은 이 모든 활동이 연간 1만 2천 원(월 천 원)이라는 상징적인 회비만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돈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협회를 위해 무보수로 헌신하고 있는 17인의 임원들 덕분이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번의 세미나를 위해 기획팀은 적합한 강사 섭외하느라 애를 썼고, 편집팀은 수많은 원고를 교정하느라 사투를 벌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일이 그들의 본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각자의 생업으로 분주한 와중에도 금쪽같은 개인의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헌신해 준 귀한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있다.


블로그 작가협회는 온라인 광장에서 연결된 세계다. 전 세계에 흩어진 작가들이 Zoom이라는 가상 광장에서 조우한다. 운영위원회는 협회의 나침반이 되고 있고, 기획팀과 편집팀은 세미나와 문예지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95인 작가들의 펜 끝이 무뎌지지 않도록 고민하는 운영위원들의 회의 시간은 언제나 묵직한 책임감으로 채워지곤 한다.


2026년 1월부터는 변화의 씨앗을 심기로 했다. 운영위원회의 행정 논의를 줄이고, 그 자리를 모든 회원이 주인공이 되는 ‘낭독의 시간’으로 채울 예정이다. 특히 협회에 소속된 작가들이 출간한 저서를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간은 특별한 울림이 될 것이다.


목소리로 토해내는 문장은 가슴 깊이 박히며, 행간에 숨겨진 작가의 숨결을 나누는 가장 뜨거운 소통이 된다. 활자들이 목소리를 얻어 살아 움직이는 순간, 문학의 결속력은 한층 더 단단해질 것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 묻는다. ‘이런 활동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삶의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생명력을 얻는다.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단순한 해석을 넘어 나의 시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창조적 행위가 된다. 오늘 내가 부여한 의미의 크기에 따라 미래는 완전히 다른 색채로 물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과거가 남긴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심고 있는 의미들이 틔워낸 결실이다.


내가 블로그 작가협회의 활동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혼자 쓰면 기록에 그치지만 함께 쓰면 문학이 되고 역사가 된다. 비록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씨앗일지라도 우리가 쌓아가는 ‘의미’들은 훗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자산이 될 것이다.


협회에 모인 작가들의 진심이 세상에 더 널리 닿을 수 있게 돕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그 길을 함께 닦아나가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지켜내야 할 약속이다. 각자의 나무를 키우며 마침내 함께 일군 울창한 숲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오래도록 함께 걷기를 희망한다.


회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가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구속하는 멍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의 짐은 굴레가 아니라 블로그 작가협회의 푸른 숲을 일구기 위해 기꺼이 짊어져야 할 존엄한 무게였다.


자신의 짐을 사랑하는 자만이 정상에 설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모두를 보듬고 그들의 열정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나는 작가적 자아를 더욱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홀로 쓰는 고립에서 벗어나 함께 쓰는 연대의 가치를 깨달았고 작가로서 한 뼘 더 깊어질 수 있었기에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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