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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Sep 27. 2019

쿠엔틴 타란티노이기에 가능한 복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사랑하기에 가능한 복수극.

1960년대는 할리우드의, 더 넓게는 미국과 전세계의 격변기였다. 전통적인 메이저 스튜디오가 지배하던 할리우드의 낙천적인 상업영화 신에 반하는 리얼리즘 영화들이 대거 등장했다.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 프랑스의 누벨바그에 영향을 받아 사회적 문제나 현실적인 모순에 주목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아메리칸뉴시네마가 태동했다. 동시에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주의 운동과 함께 평화와 자유를 추구하는 히피 문화가 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시대였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원스 어폰 어 타임>)는 바로 그 격변의 주무대였던 1969년의 LA 할리우드로 카메라를 밀어 넣는다.


<바운티 로>라는 서부극 TV시리즈의 주연으로 활약하며 큰 인기를 얻은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전속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와 늘 짝패를 이루고 다닌다. 릭은 예전 같지 않은 인지도에 전전긍긍하며 영화계로 진출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클리프 역시 예전 같지 않은 릭의 입지 덕분에 스턴트맨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릭과 함께 매일을 보내는 건 음주운전 중 사고를 낸 탓에 면허가 취소된 릭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고 촬영장과 집을 오가는 대리운전사 역할을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나름 돈독한 사이라 릭의 집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TV쇼를 보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한물간 스타라고 하지만 릭에게 배역이 아예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릭은 간간히 제안을 받게 되는 악역을 소화하며 배우로서의 명맥을 이어간다. 하지만 마음 속에 응어리가 진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배우 경력을 반등시키고자 영화계 진출을 호시탐탐 노린다. 그리고 자신의 옆집에 요즘 가장 주목받는 감독인, 지난해인 1968년에 <악마의 씨>라는 센세이션한 오컬트 영화를 발표한 감독 로만 폴란스키(라파우 자비에루하)와 그의 아내인 배우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69년 2월 8일 토요일의 일이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실존했던 시대상을 세워놓되, 실제적인 세계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실존했던 인물도 등장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도 등장한다. 그러면서 진짜와 가짜가 뒤엉켜 구르는 일종의 팩션이며 대체 역사에 가깝다.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 스티브 맥퀸, 이소룡 등 당대의 할리우드 셀레브리티들과 찰스 맨슨이라는 희대의 살인마를 비롯해 시대의 공기를 직접적으로 호흡했던 실존 인물들 옆에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라는 가상의 주인공을 세워 넣는다. 이는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사실적인 시대상을 재현하고자 출발선에 선 영화가 아님을 명확하게 인지시킨다. 물론 이것이 타란티노의 영화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예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1969년은 전세계적으로 길이길이 회자될 실로 끔찍한 사건이 할리우드에 벌어진 해다. 1969년 8월 8일 금요일, 여전히 악명 높은 살인마로 회자되는 찰스 맨슨의 추종자를 일컫는 맨슨 패밀리 중 네 사람이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가 살고 있던 LA 비버리힐스 외곽의 주택을 급습했다. 유럽을 방문 중이던 로만 폴란스키는 화를 면했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샤론 테이트와 집을 방문했던 지인 네 사람이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에게 무참하게 척살당했다. 뱃속의 아이만은 살려 달라는 샤론 테이트의 부탁은 오히려 뱃속의 태아까지 무참하게 살해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짓밟혔다. 이 끔찍한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의 목적에서 어긋난 결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맨슨 패밀리가 본래 살인 대상으로 생각했던 건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가 살기 전에 그 주택에 살았던 테리 멜처라는 음악 프로듀서였다. 본래 음악 프로듀서였던 찰스 맨슨의 작업물을 혹평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사건으로 찰스 맨슨과 맨슨 패밀리는 일급살인죄로 체포된다. 그들은 샤론 테이트가 자신들을 열광시킨 <악마의 씨>를 연출한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유명한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만족했다고 한다. 다시 들어도 뇌가 녹는 기분이다.

“깊은 잠수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정말 맨슨 패밀리를 내 머릿속에 들여보내고 싶은 걸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정말 생각해보고 싶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타란티노는 <원스 어폰 어 타임>을 연출하는 것을 주저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재현하고자 했던 1969년에 관한 다양한 자료에 끌리는 것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의지를 다져준 건 바로 그 문제의 엔딩 시퀀스였다 “이미 처음부터 그 마지막 이미지를 떠올렸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을 포착해 필름에 담아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대단한 카타르시스였다.” 타란티노는 샤론 테이트가 겪었던 그 끔찍한 운명을 자신의 영화로 되돌리고 싶었다. 끔찍한 살인마들의 재앙을 쾌감으로 전복시킬 카니발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관통해 현재로 이끈 오래된 세계, 1969년의 할리우드를 스크린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타란티노는 그렇게 최후의 일격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상의 스타배우이자 스턴트맨인 릭과 클리프를 세워 1969년의 할리우드를 조망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그 시대의 공기와 호흡하고, 시대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은 있지만 그 시대 자체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둔 작품은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지금껏 쿠엔틴 타란티노가 제시한 세계들을 대거 인용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영화다. 세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서사의 중력을 끊임없이 이동하는 동시에 파편적인 플래시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액자 구조 형식의 서사를 운영해 극적인 입체감을 더하는 방식은 <펄프 픽션>과 유사하다. 동시에 타란티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인물들의 바라보는 태도가 대체로 차분한 설명과 관찰로 이어지다가 끝내 결말부에서 응축된 감정을 대폭발시키는 서사의 응집력은 또 다른 LA 배경의 작품 <재키 브라운>을 닮았다. 그리고 가상의 캐릭터들을 투입해 실제 역사를 전복시키는 방식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그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지나온 족적을 밟아 나가며 끝내 자신의 노스탤지어로 다다르는, 할리우드 키드의 헌사일 것이다. 퇴물이 된 스타배우를 희화화하긴 하나 조롱하진 않고, 낭만으로 치장된 어떤 세계가 감추고 있던 날 선 이빨을 들여다본다. 시대의 온도를 차분히 응시하고, 영토의 활기를 뜨겁게 응원한다. 동시에 그 시절이 품고 있었던 가혹한 폭력에 꺼져 버린 빛을 다시 밝히고 영화적인 숨을 불어넣을 기회를 마련한다. 잔학한 무리들이 행했던 폭력의 역사를 되돌려주는, 일종의 영화적 보복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유토피아에 폭력을 가한 이들을 영화적으로 단죄하고, 온전히 영화적인 쾌감을 재생산해낸다. 화끈하지만 윤리적이고, 잔혹하지만 합당한, 지극히 쿠엔틴 타란티노적인 결말로 관객의 마음에 불을 놓는다. 이렇게 쌈박한 결말을 만날 기회는 드물다.


무엇보다도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샤론 테이트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렉킹 크류>가 개봉한 극장을 찾아가 스크린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과 직접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스크린에 상영되는 <렉킹 크류>의 샤론 테이트는 실물 그대로 등장한다. 객석에서 샤론 테이트를 연기하는 마고 로비 앞에 진짜 샤론 테이트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는 샤론 테이트에게 바치는 일종의 경의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배우라는 존재를 영화적으로 해석하고 승화한, 영화적 마술에 가깝다. 두 명의 샤론 테이트를 보게 될 관객 그 누구도 그 장면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작품 너머의 캐릭터를 통해 배우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도 작품과 연결되지 않은 배우의 세계를 상상한다. 배우들은 그렇듯 두 세계를 오가는 존재로서 세상과 조우하고, 세상에 착지한다. 그럼으로써 결국 싸이코에게 무참히 살해된 여자로 기억되던 샤론 테이트가 촉망 받는 배우였다는 사실 또한 환기시킨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결국 바로 그 세계를 탐닉해온 사람만이 가능한 복수극이자, 사랑해온 사람만이 보낼 수 있는 러브레터인 셈이다. 그렇게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가 세상을 찾아왔다.

('에스콰이어' 10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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