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연기와 꿈과 삶에 관하여, 배우 한예리와 나눈 대화.
일찍이 춤을 추면서 꿈꾼 적 없었던 연기가 삶에 스며들었고 끝내 배우가 된 한예리는 덕분에 꿈꾸는 자유를 얻었다. 춤과 연기로만 규정되지 않는, 더 너른 삶을 지향한다. 저 멀리 자리한 정점으로 나아가는 꿈을 향해 오래도록 꾸준하게.
한화 이글스 팬이라고 들었는데, 요즘 야구 볼 맛 나겠어요.(웃음)
충북 대천 사람이니까요. 너무 좋아서 때때로 당황스러울 정도예요. 굉장한 기세죠. 이미 충분히 해줄 만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기뻐요.(웃음)
야구 외에도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나요?
되게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하계든, 동계든, 올림픽 시즌이 되면 일정 미리 확인해서 보고 싶은 경기는 동생들과 함께 챙겨봤어요. 보고 싶은데 중계해주지 않는 종목이 있으면 아쉬워하고 그랬죠. 팀스포츠 중에서는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뉴욕에 잠깐 놀러 갔을 때에도 뉴욕 양키스 경기를 보고 싶어서 두 번이나 보러 갔어요. 그런데 애런 저지가 두 번이나 홈런을 쳐서 너무 신났죠.
배우이기 전에 무용가로서 몸을 쓰는 스포츠 선수에게 공감대를 느끼는 바가 있을까요?
확실히 그렇죠. 결국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이잖아요. 자기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7월에 개봉한 영화 <봄밤>에서 영경이라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알코올 중독자인 영경은 주로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곧잘 쓰러지곤 하죠. 춤을 추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연기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사를 몸으로 해야 하는 영화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고민을 좀 했어요. 상대역인 수환을 연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마땅한 배우가 누구일까 고민했죠. 연경을 잘 받아주고 끌어안을 수 있도록 믿고 몸을 맡길 배우가 필요했거든요. 호흡이나 무게 중심과 무게 이동, 사소한 걸음걸이까지, 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설진 씨가 떠올랐고 추천하게 됐어요.
무용수에서 배우로 영역을 확장한 두 분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점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김설진 씨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03학번 입학동기예요. 저는 전통예술원에 있었는데 설진 오빠가 있었던 창작과 토요일 수업에 참석하면서 알게 됐어요. 창작과에 있던 친구의 작업에 무용수로 참여했거든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성향이나 표현하는 방식을 잘 알게 됐고, 그런 면이 <봄밤>에서 호흡을 맞추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김설진 씨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해외를 나갔다 오니 한예리 씨가 배우가 돼 있더라’라고 했더군요. 2008년에 인터뷰로 만났을 당시 서른 살까지만 연기할 거 같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서른 살은 이미 넘었네요.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어요. 우연히 출연하게 된 단편영화 <기린과 아프리카>로 미장센영화제 연기상을 받으면서 몇몇 회사 관계자와 만났는데 다들 무용과 연기를 같이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둘 다 하는 게 불가능하면 회사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점점 회사 없이 일을 하는 게 힘들다는 걸 느껴서 연기가 좋긴 하지만 서른 살까지만 하는 게 맞을 거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29살에 이소영 대표님을 만난 거죠. 그때 대표님은 둘 다 하면 된다고 하셔서 내심 사기꾼인가 보다 생각했어요.(웃음)
결국 사람엔터테인먼트의 이소영 대표님과 15년간 좋은 관계를 이어왔죠. 그런데 최근 사람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슈로 이소영 대표님과 함께 화보를 찍고 인터뷰도 했더군요. 배우가 오랜 소속사를 떠나는 경우는 종종 봤지만 이렇게 마지막을 기념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결정하는 입장에서도 고민이 상당했을 거 같아요.
그렇죠. 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물론 회사를 나왔다 하여 대표님과 제 관계가 크게 달라질 거 같진 않고요. 대표님과 정말 좋은 시간들을 보냈더라고요. 덕분에 많은 걸 이뤘고, 예쁨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좋은 자리에서 잘 쓰이게끔 인연을 잘 이어 주시고, 기회도 만들어 주셨죠. 이렇게 바탕을 다졌으니 이제 어떤 방향으로 가볼까, 새로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뭔가 새로운 변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 환경을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대표님과 얘기도 많이 나눠보고 결정한 거죠.
어떤 변화가 필요한 걸까요? 혹은 어떤 변화를 원하는 걸까요?
정확히 표현할 말을 잘 모르겠는데, 저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탐구하고 싶다고 할까요? 사실 저는 큰 변화 없이 살아온 사람이거든요. 무용할 때에는 무용만 보고, 연기할 때에는 연기만 보고 살아왔죠. 무용수로서, 배우로서 그 쓸모에 맞게 적절히 살아왔지만 정작 제 자신에 대한 경험은 별로 없는 거예요. 어딘가 내던져진 적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내가 어디에 있고, 내 감정이 어떠한 지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몸으로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떤 식이든 변화가 필요하겠더라고요.
강미자 감독님의 첫 작품 <푸른 강을 흘러라>가 한예리 씨의 첫 장편영화였습니다. 그 뒤로 16년이 지나 강미자 감독님의 두 번째 작품 <봄밤>에 출연했네요. 배우로서 그 시간을 잘 지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죠. 어쩌면 배우로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강미자 감독님께서 <봄밤> 시나리오를 주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예리야, 이게 내 마지막 작품이 될 거 같아.” 그래서 꼭 하고 싶었어요. 감독님과 함께 처음을 시작했으니 이게 만약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이라면 그 또한 당연히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문득 ‘아, 그래도 배우로서 내가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짚어볼 계기가 됐죠. 다행히 잘 살았고, 생각보다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희한하게도 미련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더 욕심을 내자는 생각보단 더 잘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경력을 쌓고 싶다는 생각보다 더 즐겁고 더 치열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상관없을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이 제 인생에서 또 한 번 방향키를 틀어야 되는 순간이 아닐까 고민하게 됐죠. 회사를 나온 것도 그런 고민의 일환이죠. 스스로를 검열해 보는 시기랄까요? 내적으로 많은 충돌과 변화를 겪고 있어요. 배우이기도 하고, 무용수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을 어떤 틀에 넣어서 규정하지 않고 가능한 대로 확장해보고 싶어요.
당연히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다는 의미는 아닐 테고, 뭔가 긍정적으로 마음을 열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긴 합니다. 어쩌면 배우로 살아오면서 갖게 된 마음일 거 같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힘을 예전보다는 믿는 편이에요. 이런 게 나이가 주는 좋은 점이더라고요. 뭔가 최악인 것 같아도 괜찮아. 이 시간을 잘 견디거나 통과하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인생을 살아보고 경험한다는 게 고마운 일 같아요. 적어도 오늘 하루를 넘겨보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만 넘기면 괜찮을 거라니, <최악의 하루>의 은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처럼 들리기도 하네요.(웃음)
바로 괜찮진 않을 텐데.(웃음) 하지만 좀 더 살아본 언니로서 말해주고 싶긴 하네요. 확실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게 꼭 있기 마련이더라.
갑자기 <박하경 여행기>의 한 대사가 떠오르네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술이 하고 싶은 거잖아. 해 봐. 계속해 봐.” <박하경 여행기>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님과도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일찍이 단편영화 <달세계여행>으로 함께 작업했고, 이소영 대표님과 인연을 맺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도 했다고 들었고요.
이종필 감독님은 한창 꿈이 왕성하던 시절에 만났어요. 춥고 배고파도 그냥 오늘 촬영이 즐거웠던, 매일매일 치열하게 꿈꾸는 게 좋던 시절에 함께한 기억들이 있고, 여전히 이 일에 대한 신념을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달 세계 여행>을 찍을 때 스태프가 다섯 명 정도였는데 이 사람들이 꿈을 꾸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어요. 현실도 중요하지만 꿈을 꿔야 잡히는 것도 있어요. 더 나아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고, 희망적인 나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걸 툭툭 던져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큰 행운이죠.
‘낭만 합격’ 같은 인연이군요.(웃음)
덕분에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진 않은 사람은 됐어요. 지금은 좀 늦었어.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이런 얘기들. 누군가 뭔가 해보고 싶다고 하면 뭐든 해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죠. 반대로 제가 듣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 꿈꾸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하지만 꿈만 먹고살 수는 없으니까 가끔씩은 현실에 거세게 부딪히는 경험도 필요할 거예요.
맞아요. 필드에 나와보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감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재능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자기가 어느 정도 사이즈인지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강점 같은 걸 찾아가면서 잘할 수 있는 것과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계속 생각하며 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이 일을 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배우로서 역할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겠지만 연기를 해내고 싶은 마음보다 역할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위험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쩌면 지금 해낼 수 있는 게 가까이 있는데 정작 먼 곳만 보다가 다 놓칠 수도 있겠죠.
열심히 달려야 하는 순간도 분명 있죠. 하지만 자유롭게 놔줘야 할 순간도 필요해요. 빨리 올라가면 빨리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미나리>를 촬영할 때 윤여정 선생님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물론 계획한다고 다 될 일은 아니겠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해 나가고, 인생의 어떤 순간들을 잘 누리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 저렇게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배우도 쓰임이 돼야 하는 사람이니 오랫동안 쓰이는 배우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결국 오래도록 불릴 수 있는, 어떤 감독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최고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러니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미나리>로 미국까지 가서 영화를 찍었어요. 심지어 오스카 시상식까지 갔죠.
신기하죠. 제 인생이 즐거운 이벤트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오스카에 다녀온다고 해서 그다음이 좋으란 법도 없고, 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다음에 어떤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그걸 선택할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게다가 <미나리>는 너무 작은 독립영화라서 출연을 결정했을 때에는 오스카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요. 그저 정이삭 감독님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좋은 건 누구에게나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출연작 중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인 작품에 출연한 게 아마 <코리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북한 국가대표 탁구선수 유순복을 맡았고, 연기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죠.
회사 들어가고 처음으로 찍은 작품이었는데 그전까지 제 이력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배우로서 처음 선보이는 모습이기도 했죠. 제 입장에서는 제 강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배우들과 차별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이미지가 있고, 저와 부합하는 면이 많아서 이걸 잘 해내면 그다음이 좀 더 좋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하면서 정말 성실하게 임했죠.
배우로서 인지도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작품도 있겠죠.
당연하죠. 영화를 할 때도 있었지만 드라마를 할 때는 더 확연하게 느껴졌어요. <청춘시대>를 하면서 진명이를 사랑해 주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꼈죠. 신기했어요.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를 찍고 나니까 저를 전혀 모를 것 같은 아저씨들이 알아보시더라고요. 이게 무협 장르의 힘이구나 실감했어요.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도 있었을 거 같아요. 어쩌면 연기를 한다는 건 잘 모르는 타인을 이해해 보는 노력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자신을 좀 더 알게 될 수도 있고요.
당연히 저도 다 이해하고 접근하는 건 아니고 연기를 하면서 더 이해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죠. 그래서 그런 캐릭터를 만나면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요. 결국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한 사람을 연기하는 건 참 재미없을 거예요. 누군가가 보기에 근사하기만 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요. 왜냐면 인간은 그렇지 않잖아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모순이 있기 때문에 저와 다른 모순이 있는 캐릭터를 만나면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거 같아요. 그런 인물들을 연기한다는 건 내가 모르던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한예리 씨는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나요?
사실 친하고 긴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가 엉뚱하고 때로는 충동적이고 되게 허당이라는 걸 잘 알 거예요. 어릴 때 춤을 접하고 너무 오랜 시간 거기 몰입해 살아온 덕분인지 몰입 자체가 주는 재미를 일찍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영화를 작업하는 게 즐거워요. 요즘에는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특히 더 많고요. 이런 게 배우가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아닐까 싶어서 이렇게 치열한 행복을 지속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는 방향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숱한 관계 속에 자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할 거 같아요. 그러한 관계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노력도 중요하겠죠.
일단 최선을 다해보려는 거 같아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최대한 전달해 보려 노력하는 편이죠. 아무래도 제가 계산적인 사람은 못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솔직하게 사람을 대하고 그래도 뭔가 잘 안 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야죠. 그래야 후회도 덜 남더라고요.
벌써 올해도 4분기로 접어들고 있네요. 올해 남은 기간 동안 특별한 계획이 있을까요?
9월 말쯤 <달세계여행>을 함께 만든 최시형이라는 친구와 작품을 만들 예정이에요. 그 작업을 끝내고 나면 아마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가 될 텐데, 그렇게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면 될 거 같아요.
꿈꾸게 해 준 사람들과 계속 꿈을 꾸며 일을 하는 셈이네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아주아주 큰일은 없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어쩌면 큰일이 필요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본인이 그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고 그 이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질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꼭 피해야 할 일도 없는 거 같아요. 내 인생에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돼, 이럴 필요는 없다는 거죠. 나라는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돌파하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스스로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결국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야 다음 작품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생기거든요. 결국 지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이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너무 몰아붙이고 싶진 않다는 거죠. 어쩌면 적어도 지금까진 잘 살아왔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니 계속 잘 살아보고 싶어요.
(한화 펨테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Between' 매거진에 실린 원고를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