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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Nov 11. 2018

[어떤人터뷰]주호민 작가

'신과 함께'를 완성한 주호민은 지금도 즐겁게 지옥을 건너는 중이다.

요즘 연재 중인 <빙탕후루>는 송나라를 배경으로 요괴를 퇴치하는 도사의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스토리 작가로 함께하는 장희 작가가 페이스북에 연재하던 동명 소설을 웹툰으로 기획한 작품이라 들었다.

원래 다른 만화를 구상했는데 준비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장희 작가님이 페이스북에 연재하는 <빙탕후루>를 읽게 됐는데 재미있더라. 도사가 부적으로 요괴를 잡는다는 내용도 그렇고, 유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만화 콘티가 그려지는 느낌이라 작가님께 연락했는데 흔쾌히 수락하셔서 연재를 시작하게 됐고,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본래 기획했던 작품은 어떤 내용이었나?

경상남도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양까지 가는 길에 요괴가 득실거린다 하여 퇴마사를 고용해서 함께 움직이는 내용을 다루려 했다. 경상남도에서 한양까지 거리가 한 500리라 하니 왕복 1000리니까 <천리마경>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배경을 조선 후기로 해서 부적이 아니라 기계로 요괴를 퇴치하는 설정을 두려 했다. 스팀펑크에 접목해볼 생각이었으니까.


<빙탕후루>는 송나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캐릭터들의 복식이 명나라나 청나라 혹은 일본식이라는 지적도 있고, 이를 비판하는 독자도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고증에 실패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시대적 고증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결과물처럼 보인다.

실제로 송나라 역사와 연관된 작품이었다면 고증에 신경 썼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의 중국 드라마를 많이 참고했다. 요즘 중국 드라마가 그런 식이라서. 철저하게 고증한 시대극이 아니라 화려한 퓨전 판타지 같은 느낌. 그러다 보니 옛날 중국으로 퉁 쳐서 다양한 시대의 복식이 섞이게 됐고. 다만 배경을 송나라로 설정한 건 보통 무협지 배경이 송나라이기 때문이다. 무협물의 클리셰 같은 거랄까.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전화번호가 항상 5로 시작했던 것처럼.


본래 구상했던 <천리마경>과 지금 연재 중인 <빙탕후루>의 공통점은 요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요괴에 끌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신과 함께>를 준비하면서 제주도 신화와 민담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잔인함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왜 이렇게 잔인할까 싶을 정도였는데, 이런 부분을 재미있게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지금 시대와 인권 감수성 차이가 커서 자칫 잘못하면 굉장한 문제가 될 거 같지만, 적정선을 지키며 옛날 사람들의 끔찍한 상상을 되살리는 재미가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민담이나 전설 속의 요괴를 등장시켜 판타지를 부각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빙탕후루>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확실히 중국은 스케일이 커서 좋았다.


실제로 <빙탕후루>는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잔인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체 훼손을 묘사한 장면도 있고, 파괴왕의 본색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웃음)

너무 신나게 그리고 있다. 아무래도 내면에 그런 면에 대한 흥미가 있나 보다. 그래서 종종 수정 요청도 들어오지만. 초반에 수위 조절을 생각하지 않고 막 그리면서 신체 절단 면을 과감히 표현하기도 했는데, 수정해야 한다고 해서 흐릿하게 실루엣 처리를 하거나 칸 밖으로 밀어냈다. 그런데 무삭제 버전의 원고를 출간할 때는 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나마 내가 그려서 전체 관람가인 거 같다.(웃음) 더 극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가 그렸다면 19금으로 분류됐을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극적인 수위 조절에 신경 써야 하는 건 처음이었을 거 같은데.

오타 수정을 한 적은 있지만 잔혹성을 줄여달라는 요청은 처음이긴 했다. 게다가 극 초반에는 여자를 강간하는 내용도 있다 보니 개인적으로 곤혹스러운 느낌을 받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이나 내용의 차이가 있지만 <빙탕후루>는 <신과 함께>처럼 구전된 설화나 민담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도 있다.

사실 <천리마경>을 하지 않게 된 이유도 그래서였다. 강한 인물에게 기대서 여정을 떠나는 인물이 등장하는 로드 무비 같은 형식이다 보니 아무래도 <신과 함께>의 기시감이 너무 많이 들었고, 자기 복제 같은 느낌이 들더라. <빙탕후루>를 선택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크다.


어쩌면 그래서 스팀펑크 같은 장르를 고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다. 그리고 지금껏 작품을 해오며 느낀 건, 즐겁지 않으면 작업하기가 어렵다는 것. <빙탕후루>에도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입장에서 <빙탕후루>의 주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로 주건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은 거 같고.

주건은 원래 인간의 얼굴에 눈이 하나인, 표범처럼 생긴 가상의 짐승이라 전통적으로 묘사된 형태는 좀 징그럽다. 그래서 좀 귀엽게 그릴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표범보다는 커다란 고양이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나 입은 없애고 눈만 크게 그려 넣어서 외눈박이 고양이처럼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주건을 좋아하는 분들이 좀 있던데, 아마 단행본 표지에도 들어갈 거 같다.


영화화된 <신과 함께>가 대단한 흥행을 기록한 덕분에 원작자로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무신론자라고 들었는데, 무신론자가 <신과 함께>로 성공했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실제로 신을 믿는 사람이 그렸다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이게 다 뻥이라는 걸 인정한 상태에서 그려야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 같다. 어쩌면 믿고, 믿지 않고, 이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옥의 형벌이 끔찍하다는 것을 보고 옛날 사람들의 지독한 상상력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영화화된 작품은 원작자의 손을 떠난 셈인데, 원작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부담스럽지는 않나?

그래서 내가 왜 축하를 받나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원작자가 나이긴 하지만 영화가 내 것은 아니니까.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을 때도 나 역시 축하하는 입장이었다. 말 그대로 내 손을 떠난 작품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큰 성공을 거뒀으니 원작자로서의 뿌듯함도 있지 않을까?

당연히 있다. 무엇보다도 편해졌다. 어디 가서 만화가라고 하면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질문을 받게 되는데 <신과 함께>를 그렸다고 하면 되니까. 영화화되고 나면 확실히 다르다. 물론 그 전부터 아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만화를 보지 않는 분들도 아는 작품이 돼서. 무엇보다도 부모님이나 처가 식구들과 친척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자꾸 한 턱 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서 용돈도 좀 드리고 있다. 자랑하려면 쏘고 자랑해야 한다고.(웃음)


아까 촬영 중에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너무 유명해져서 힘든 부분은 없나?

그건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차피 출근해서 만화 그리고, 집에 와서 애들 보다 자고, 그런 반복적인 일상을 살다 보니 불편해질 일은 별로 없는 거 같다. 자주 나다니질 않으니까. 다만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행사장 같은 곳에 가면 워낙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어서 힘들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숫기를 박박 긁어서 장착하는 법을 알게 됐는데, 그래서 행사가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더라.


방송에서 출연한 걸 보면 말도 잘하고, 특별히 카메라를 어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게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친한 사람과 있으면 좀 까불게 되고,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최근까지 김풍, 이말년, 심윤수 작가와 함께 <축제로구나>라는 예능에 출연했다. 웹툰 작가들끼리 예능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말년이 ‘침착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유튜브에서 스트리머 활동을 하는데 한번은 나랑 이말년, 풍이 형, 기안84랑 넷이서 여수 여행 가는 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방송사에서 그걸 보고 만화가들끼리 여행 다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을 거 같다고 기획해서 하게 됐다. 그런데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스케줄 때문에 할 수 없게 돼서 심윤수 작가가 대신 들어왔다. 결국 작가들끼리 지역 축제를 다닌다는 콘셉트가 더해져서 <축제로구나>가 됐다. 처음 찍을 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어느 정도 적응된 거 같다.


어쩌면 방송에 출연하게 된 건 살면서 상상도 못 해본 일 아니었을까? 마치 <신과 함께>에서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것처럼.

그게 방송에 나가는 기준이다. 유명한 프로그램이라서 나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평소에 지방 축제에 다닐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니 이건 새로운 경험이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만화를 만드는 건 에너지를 안쪽으로 수렴하는 작업인데 방송은 바깥으로 발산하는 일이니까. 폭풍이 불어서 바다가 뒤집히면 어종이 다양해진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것처럼 기분 전환이 되는 측면이 있다.



<신과 함께>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무속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만화로 그려보고 싶어서 무당과 인터뷰도 했고. 그런데 막상 인터뷰하고 나니까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래도 무속인들은 인간과 신의 중개자니까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좀 그렇더라. 그래서 아예 허구에서 찾는 게 낫겠다 싶었고 무당이 모시는 신들 쪽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그러면서 한국 신화에 대한 책을 읽게 됐고. 대부분 제주도 신화였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더라. 게다가 그걸 이용한 창작물은 거의 없었고. 캐릭터들이 되게 생소해서 이걸 각색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지.


결국 제주도 신화가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이 <신과 함께> 신화 편인데 저승 편과 이승 편까지 3부작으로 정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했다. 저승 편에서는 한국의 전통 저승관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실 그게 제일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 결과물도 그랬고. 저승이라는 소재가 죄책감처럼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이 많고 모험의 요소도 많았으니까. 이승 편은, 제주도 신화 중에 가택 신앙이 많은데 가택 신과 평소 관심 있게 보던 재개발 문제를 엮어서 풀어내면 좋을 거 같았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신화 편을 배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승 편과 이승 편을 끝까지 보고 난 뒤에 신들의 과거사를 최후에 배치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신과 함께>를 만들기 전에 작품에 넣을 신을 선택하고 걸러내는 과정이 있었을 거다. 마치 신을 오디션한 느낌인데, 작품에 반영하고자 하는 신에 대한 기준이 있었나?

신화마다 재미의 편차가 크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우선이었고, 그중에서도 캐릭터가 확실한 신 위주로 뽑았다. 후보까지 올랐다가 탈락한 신도 있다. 자청비와 바리공주가 대표적인데, 자청비는 꽃을 이용해 복수하는 내용이 신화 편의 꽃감관과 유사해서 탈락시킨 거라면, 바리공주는 <신과 함께>에 넣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라 나중에 아예 여전사 느낌을 살려서 별개의 작품으로 만들면 좋을 거 같았다.


신화 편에 반영된 제주도 신화를 통해 <신과 함께>를 구상했다고 했는데, 3부작의 포문을 여는 저승 편은 불교적 세계관이 반영됐다.

저승 삼차사는 실제로도 셋이 함께 다니고, 인간적인 실수가 많다는 부분을 극대화했다. 원래는 셋 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라는데 만화에서는 삼차사의 개성을 확실하게 부여하는 쪽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이 신화 편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복선이 되는 사연을 그릴 수 있었다.


저승 편과 이승 편은 스토리라인이 있는 반면 신화 편은 에피소드가 나열된 형식이다. 아무래도 연결된 이야기 구조를 지닌 저승 편과 이승 편을 끝내고 각기 다른 주인공이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한 신화 편을 그리는 느낌은 달랐을 거 같다.

확실히 덜 피로했다. 신화 편은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는데 한 에피소드가 10회 정도면 끝났다. 그렇게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에너지 소모가 적더라. 빨리 진행해서 끝내고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대한 부담도 적었고. 제일 편하게 작업했다. 어떤 면에서는 저승 편과 이승 편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신화 편에서 제일 신경 쓴 부분은 서로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세계관이 한번 생기면 그걸 바탕에 두고 새로운 캐릭터를 넣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그게 좀 아깝다고 생각했다. 세계관을 만들어놓고 캐릭터를 더 안 넣었다는 게. 영화 제작사에서도 다음 이야기는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그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뭔가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새로 한다면 <신과 함께>라는 제목은 안 쓸 거 같다. 전에 있던 캐릭터의 흔적을 느끼는 정도일 거 같다.


이승 편의 철거촌은 <무한동력>의 달동네와 유사한 풍경이다. 가난한 현실을 반영한 느낌이랄까.

이승 편이 제일 힘들었다. <무한동력>은 관찰하는 대상이 있어서 보고 느낀 걸 그릴 수 있었지만 재개발, 철거촌에 사는 사람들을 글로만 접하고 피상적으로 그리다 보니 오류가 있었다. 약자가 무조건 선한 건 아닌데 그렇게 묘사한 거 같다. 선악과 강약은 별개의 문제인데 그렇게 됐더라. 돌이켜보면 그런 게 좀 아쉽다. 철거 용역도 조폭 같은 이미지로 일반화시킨 거 같아서 아쉽고.


그래도 철거 용역에 학자금을 벌어야 하는 대학생을 등장시킨 건 그런 도식화를 경계한 노력처럼 보인다.

실제로 <시사인> 르포 기사에 등장한 철거 용역 아르바이트생 인터뷰를 보고 넣은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화된 <신과 함께>는 원작을 반영한 작품이지만 원작과 큰 차이가 있는 부분도 상당한 작품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너무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진기한 변호사가 없어진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김용화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나와 결이 다른 창작자라고 느꼈다. 추구하는 지점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그냥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자신감이 상당했고. 내 의견을 어필하는 것보다 마음껏 만들도록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결과가 굉장히 좋았고. 시나리오상에서는 진기한이 없어져서 아쉬웠지만 영화상에서는 딱히 부재를 못 느꼈다. 물론 2차 창작물은 내 것이 아니니까 달라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진기한 변호사가 없다고 했을 때는 ‘엔간히 달라져야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만.(웃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어서 괜찮았다. 덕분에 원작을 다시 찾아보는 독자도 늘었고. 어쩌면 영화와 원작의 맛이 다르니까 다양하게 즐길 거리가 생긴 거 같다.


영화 흥행 이후로 주호민 작가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에서 ‘주호민’을 검색하니 ‘주호민 수익’이라는 자동 검색어가 뜨더라.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나?

진짜 별생각이 없다. 어차피 <짬>을 그릴 때나 지금이나 삶의 관성은 비슷하니까. 그때도 하루 종일 만화만 그렸고, 지금도 만화만 그린다. 물론 만화가 잘 팔려서 수입이 늘긴 했지만 삶의 질이 막 올라간 것도 아니니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지만 사는 모습 자체는 달라지지 않아서 잘 체감하지 못하고 산다. 다 떠나서 아직 정산도 안 됐고.


<셋이서 쑥>에서 로또 당첨을 기원하며 요트 사는 꿈을 꿨다는 내용이 있는데, 요트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헛된 꿈이었다. 어차피 연재 중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웃음) 다른 미래를 꿈꾼 적도 있었지만 결국 역시 만화밖에 없는 거 같다.


<신과 함께> 이후로 경상북도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제안으로 <제비원 이야기>를 그렸다. 안동의 제비원이라는 불당에 있는 미륵불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신과 함께> 이후로 민담이나 설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신과 함께> 같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런 의뢰를 받아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신과 함께> 신화 편을 만들면서 서로 연관 없는 신화들을 연결하는 노하우가 생긴 상태였으니까 그런 노하우를 실험해볼 기회 같았다. 결국 설화 네 개를 합쳐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지방의 다른 설화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걸 하나 따와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설화를 엮어서 그럴듯하게 만드는 노하우는 확실히 생겼는데 다른 한계도 깨닫게 됐다. 지방에 다양한 설화가 있지만 플롯이 생각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거. 서로 이름만 다르지 거기서 거기더라.


어쩌면 지금 시대에서 신화를 재창작하고 구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신화라는 게 그 시대에 필요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시대가 너무 다르니까. 신화에 담긴 메시지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거나 지금 세상에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메시지로 개조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거의 없다 보니, 내가 만든 만화는 신화를 각색한 작품인데 원전으로 잘못 이해하고 쓴 글을 몇 번 봤다. 한국 신화에는 없는 <신과 함께>의 내용을 잘못 인용한 사례였다. 널리 읽히면 그런 일도 생기더라. 실제로 제주도에서 신화를 전공한 한 교수님은 <신과 함께>가 제주 신화를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글도 썼다.


아무래도 작가의 의도가 잘못 전파된 해석인 셈인데.

굉장히 난감하지.


데뷔작인 <짬>은 군 생활의 경험을 그린 작품이고, 이 작품으로 처음 주목을 받았다. 그 뒤로 시즌 2까지 연재하기도 했고. 군 입대 전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습작 같은 만화를 올리곤 했는데, 당시에 스타크래프트의 테란을 한국 군대에 이입해 그린 만화가 굉장히 유명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군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걸까?

일단 스타크래프트를 엄청 좋아했다. 테란 게이머였거든. 그런데 마린이 죽을 때 내는 비명 소리가 너무 끔찍한 거다. 정말 덧없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감정이입을 해본 거다. 마린이 내 주변인이라면 과연 위험한 공격을 지시할 수 있을까? 그걸 그려보고 싶었다.



어쩌면 주호민 작가의 진정한 데뷔작은 <무한동력>이 아닐까 싶다. 무한동력을 발명하고자 하는 남자와 그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호민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장선재와 진기한이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짬>은 두 시즌을 더하면 거의 3~4년 정도 작업한 작품이다. 회의감이 들었다. 군대 만화를 언제까지 그려야 하나. 2년간 군대에 있었는데 4년째 군대 만화만 그리고 있는 건가. 그래서 다른 얘기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쉬운 것부터 해보자 싶어서 취업 준비생이던 친구들을 모델로 작품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한 무한동력 발명가를 보고 ‘이거다’ 싶어서 그리기 시작한 게 <무한동력>이다. 그리면서도 즐거웠다.


결국 취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취재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무한동력 발명가의 이상을 공감해서 만들어진 것이 <무한동력>인 셈이다. 이상을 꿈꿀 수 없는 팍팍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끝내 이상의 실현을 바라는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처음에 그 방송을 봤을 때 나 역시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걸 알았지만 제작진이 공과대학 교수님을 모셔다가 발명가 앞에서 ‘이게 안 되는 거’라고 말하는 게 당시 내 감수성으로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일종의 팩트 폭행이랄까.

그래서 저 교수님 앞에서 저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거다. 물론 돌아가버리면 완전 판타지가 돼버리니까 <무한동력>은 그런 여지를 열어두는 정도로 마쳤다. 아무래도 그게 독자 입장에서 더 울림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무한동력 기기의 불이 계속 켜졌을 거라 생각하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거지.


<무한동력>은 <짬>과 달리 허구로 창작한 작품이지만 어쩌면 당시의 본인과 주변인들로부터 소재를 얻었다는 점에서 결국 작가의 개인적인 범주에서 비롯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당시에는 또래 친구들에게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무한동력>을 그렸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늘 그랬거든. <짬>도 <무한동력>도 친구들한테 보여주려고 그리는 느낌이었지. <신과 함께> 덕분에 독자층이 넓어지기 전까지는 항상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무한동력> 외에 구상한 작품은 없었나?

순정 만화도 시도해보려 했다. <투명소녀>라는 기획이 있었는데 포토샵 기능 중에 투명도 조절하는 게 있다. 그래서 만화를 백화로 기획해서 한 회마다 1%씩 투명도를 적용해서 점점 투명해지는 소녀를 등장시켜볼까 했다. 그래서 한 50화쯤 되면 반투명 상태가 될 거고, 그렇게 점점 투명해지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짠할 거 같아서.


멜로나 로맨스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있나?

지금은 없다. 그런 작품을 하기에는 내가 연애 경험치가 너무 낮다는 걸 깨달아서. 마음속에 그런 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웃음)


어쨌든 <짬>이라는 작품의 연재를 마쳤을 때는 불안감도 상당했을 거 같다. ‘작가로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있었을 거고.

굉장히 불안했지. 사실 그 작품으로 번 돈이 없었으니까. 아르바이트하면서 연재를 이어갔고, 완결된 뒤 책이 나와서 신인작가상을 받았는데, 그러니까 더 혼란스럽더라. 이 작품으로 번 돈이 없는데 책이 나왔다니, 나는 만화가인가 아닌가. 그런 고민이 커진 상황에서 어느 만화가 모임에 초대받아서 갔다가 양영순 작가님을 처음 만났다. 2006년쯤이었는데 내 만화를 다 보셨더라. 그리고 팬이라면서 “앞으로 계속 만화 그릴 거지?” 하시는 거다. “생각 좀 해보고요” 따위의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웃음)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가 내 만화를 재미있게 봤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서 계속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양영순 작가님을 다시 만나서 이 일화를 얘기하니까 전혀 기억 못 했다.(웃음) 


<무한동력>을 마쳤을 때는 <짬> 연재를 마쳤을 때와 다른 기분이었을 거 같다. 작가로서 좀 더 자신감이 붙었을 법도 한데.

<짬>은 결말이 정해진 작품이었다. 제대하면 끝났으니까. <무한동력>은 지금은 없어진 야후에서 연재를 했는데 처음부터 결말을 고민해본 건 처음이었고, 결국 원하는 형태의 결말로 끝내서 만족스러웠다. 캐릭터와 정이 드는 것도, 캐릭터와 헤어진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이 많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운 주호민의 만화는 <만화전쟁>이다. 남북 공작원이 대한민국의 삼류 만화가 작업실에서 각자 자신이 속한 남북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공작을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화가가 그린 만화가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

굉장히 즐겁게 그린 만화였다. 원래 코믹한 소재를 좋아하기도 하고. 모든 면에서 열려 있는 사람이지만 만화에 대해서만큼은 자기 세계가 확고한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다. ‘진정한 만화가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데, 옛날 만화가를 희화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선배들이 꽤 있었다. 피키캐스트의 컷툰이 한 컷씩 보는 형식이라 그 호흡으로 만들다 보니 이전까지와는 다른 호흡으로 그릴 수 있어서 역시 즐거웠던 만화다. 다만 이 만화의 최대 단점이 피키캐스트에 연재해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점이겠지만.(웃음) 그래도 영화 판권까지 팔렸다.


남한에서 북한에 삐라 날리는 걸 보고 ‘내 만화나 날려주지’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이라고 들었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나?

한국 드라마를 몰래 보다 적발돼서 총살당했다는 북한 주민에 관한 뉴스를 보고 나서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알아보니까 한국 드라마는 물론 가요도 인기가 엄청나다고 하더라. 실제로 북한에는 ‘오빠’라는 말이 없고 ‘오라버니’라고 하는데 한국 드라마 때문에 ‘오빠’라는 말이 유행한다고도 하고. 그 말을 듣고 문화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저기에 만화책은 없을까 생각한 거다. 그래서 만화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삐라 날리는 걸 보면서 한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만화를 보내는 게 삐라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북 공작의 설정은 어떻게 얻었나?

한창 국정원 여직원 셀프 감금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공작이라는 게 의외로 너무 지질하고 왜 하는 건가 싶어서 그런 공작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작 자체를 희화화해서 여러 가지를 패러디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했고.



여러모로 당시의 현실을 풍자한 작품인데, 아버지가 국내 개념 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주재환 작가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작품 활동을 해온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바는 없을까?

없지 않았을 거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작품을 많이 봤으니까. 사실 민중화라고 하면 선동적인 그림을 생각하지만 아버지 그림에는 유머가 많았다. 어렵지도 않았고. 웃음을 통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작품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소소하더라도 늘 웃기려는 시도를 한다. 그렇게 긴장을 풀어놓고 쓱 밀어 넣는 거지.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혹시 아버지 영향이었을까?

있는 것 같다. 집에서 항상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따라 그림을 그렸으니까. 동생도 디자이너다. 집안이 결국 다 그림 그리는 분위기가 됐다.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는데, 그때부터 만화가가 되길 희망했을까?

애니메이션 감독이 꿈이긴 했지만 졸업하고 나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여건상 <심슨> 같은 작품의 하청 작업이나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학과가 없어져서 결국 졸업도 못 했지만. 그런데 <짬>도 일하면서 그린 거니까 무슨 일을 했건 결국 만화는 그렸을 거 같다. 회사를 다녔다 해도 결국은 갈아탔을 거 같고. 이게 훨씬 재미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만화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중학생 때 친구들이 내 만화를 보고 즐거워한다는 기분을 느끼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입원해 계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만화로 그려서 병원에 보내기도 했다. 그걸 너무 재미있게 보셔서 의사나 간호사들에게도 보여주고, 그분들도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즐겁게 보는구나, 그때 그걸 알아서 계속 그리는 거 같다.


사실 그림 못 그리는 만화가로 꼽히기도 하는데.

<짬>을 그릴 때 만화가 선배가 그림 연습을 엄청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림체가 단순하기도 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편도 아니고. 지금은 몸에 완전히 익어서 어떻게 해보려 해도 잘 안 된다.(웃음) 최대한 내가 가진 자원 안에서 깔끔하게 뽑아내려 하고 있다. 그래도 <빙탕후루>에서는 종종 그림 칭찬하는 댓글도 달린다.(웃음)


<빙탕후루>에서는 그림의 터치뿐만 아니라 일종의 특수 효과도 능숙하게 다루는 인상이다.

어시스턴트 덕분이다. 유능한 어시스턴트를 두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웃음)


과거 출판 만화 작가들은 도제식으로 문하생을 두고 작업했는데 웹툰 작가들은 개인 작업을 하거나 여건이 되는 작가들은 어시스턴트를 고용해서 협업하듯 작업한다. 산업의 규모가 팽창하고 2차 판권의 수익성이 더해지면서 웹툰 신에서도 나름의 변화가 발생하는 것 같다.

<신과 함께>를 연재할 때만 해도 편집부는 작품에 의견을 주는 부서가 아니었다. 편집부는 그저 배너 만들고 업데이트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기획 단계부터 많은 의견을 주는데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웹툰이 인기를 끈 게 기존 만화의 문법과 다르고 희한한 것이 나와서 좋아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공모전 심사도 하고, 만화학과도 많이 생기고, 연재하는 포털 사이트도 늘어나면서 관습화된 만화가 많이 나오는 거 같다. 출판 만화 시절에는 작가가 기업화되면서 대량의 만화가 나오는 구조였는데 지금 다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작가가 스튜디오를 만들고 기획하면 여러 만화가 나오는, 과거와 단절은 됐지만 옛 모습이 재현되는 느낌을 받는다. 산업 구조가 너무 달라져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신과 함께>와 같은 큰 성공 사례가 웹툰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 같나?

우려가 된다. 굉장히 헛된 꿈 같아서.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원래 연예인이었는데 얼마 전에 웹툰 작가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다. 하나도 안 기뻤다. 오히려 큰일 났다 싶었지. 2차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작품 수도 굉장히 적거니와 작품이 나온다 해도 성공하는 게 극소수다. 게다가 원작과 무관한 운이 따라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데 매스컴에서는 항상 2차 창작 후 작가가 얼마를 버는지만 궁금해하니까. 그래서 웹툰을 금광처럼 여길까 우려된다.


웹툰 산업의 비전이 대단하다고 상찬하지만 작가 입장에서 느끼는 문제점이 있을 거 같다.

2013년부터 본격적인 유료화 서비스가 시작돼서 그때부터 만화가들 상황이 좋아졌다. 이전까지는 원고료에만 의존하다 독자들의 돈을 받으면서 수익이 늘어났다. 유료 플랫폼도 생기고. 그때가 좋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포화 상태인 것 같다. 더 이상 독자층이 늘지 않는다. 게다가 예상치 못했던 불법 사이트가 생겨나면서 수입에 타격이 생긴다. 실제로 성인 만화는 거의 10분의 1 정도로 줄었다. 몇천만원 나오던 게 몇백만원 나오고, 불법에 대한 대응도 느리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웹툰 시장이 장밋빛 같지만 취약한 부분은 여전히 취약하다. 만화계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어제도 불법 사이트에 <빙탕후루>가 올라온 걸 보고 슬펐다. 근데 더 웃긴 건 그 사이트에 내 만화가 없어도 슬프다. 재미있는 것만 퍼가니까.(웃음)


만화를 연재하는 것만으로 좋았던 시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짬>을 그릴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진 않은 거 같다. 다만 지금은 10배는 더 열심히 그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까. 그때는 취미였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고급 취미라고, 생산성 있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책임감도 없었다. 중학생 때 친구들 보여주는 거랑 별 차이가 없었다. 지금은 생계 문제도 걸려 있고, 이제껏 그려온 작품들도 있고, 그걸 재미있게 보는 독자들이 있고, 그만큼의 기대치도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게 된다. 물리적인 작업량이 많아서 예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고.


‘마감’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지 않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하기 싫어하면서도 결국에는 열심히 하고. 힘들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눈앞에 있는 원고에 집중하게 되니까. 그런 몰입이 즐거워서 계속하는 거 같다. 다른 일에는 그렇게 몰입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


혹시 <신과 함께>에 나오는 지옥 가운데 결코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이 있나?

만화에서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은 마지막 지옥이 있다. 열 번째 지옥인데, 흑암지옥.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거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이 어둠뿐이다. 의식은 있지만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


그 지옥을 그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지금 감수성과 너무 맞지 않아서 못 그렸다. 그 감옥에 가는 이유는 아이를 낳지 않은 죄라서. 심지어 결혼하지 못한 죄도 있다.


만약 김자홍처럼 귀인이 돼서 환생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만화가가 되고 싶나?

사실 내가 제일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그거였다. 어떻게 환생이 상일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너무 끔찍하지 않나? 아예 사라지거나 천국으로 가면 몰라도 즉시 환생이라니, 너무 형벌 같다. 게다가 만화가로 다시 태어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은데.(웃음)


결국 주호민에게 환생이란 또 한번 지옥으로 떨어지는 상인 걸까.

말 그대로 마감 지옥. 


(<에스콰이어> 한국판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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