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극] 굴러 떨어지는 바위 옆에서

카뮈가 푸시킨을 만났을 때

by 칼란드리아

* 카뮈가 푸시킨과 대화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하여 그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Gemini 3.0 Pro를 이용하여 가상극 대본을 생성하였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 및 <반항인>과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푸시킨의 삶은 이 시의 내용과는 반대에 가깝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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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알렉산드르 푸시킨 (50대): 19세기 낭만주의의 거장. 삶의 비애를 긍정하고 시간의 치유력을 믿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인물.

알베르 카뮈 (40대): 20세기 실존주의 작가. 거짓된 희망을 거부하고 차가운 이성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

장소: 시지프의 산, 중턱. 거대한 바위가 굉음을 내며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 직후. 흙먼지가 자욱하다.

시간: 영원히 반복되는 '현재'.




#1. 서막: 속임수와 부조리

(카뮈, 땀범벅이 된 채 굴러 떨어진 바위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표정에는 절망보다는 기이한 차분함이 서려 있다. 이때, 안갯속에서 푸시킨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푸시킨: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네, 또 바위를 놓쳤군. 저 밑바닥까지 굴러가 버렸어. 흙먼지를 뒤집어쓴 자네 꼴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아프네. 삶이란 놈은 참 짓궂지 않나? 늘 우리를 속이고, 기대한 것을 배신하니 말일세.

카뮈: (고개를 돌려 푸시킨을 보며, 냉소적으로) 삶이 저를 속인다고요? 아니요, 선생님. 삶은 저를 속인 적이 없습니다. 삶은 그저 침묵할 뿐입니다. 저 바위처럼요. 속은 건 접니다. 삶에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제 자신이, 스스로를 속인 겁니다.

푸시킨: 너무 날카롭게 받아들이지 말게. 내 말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뜻일세. 자네가 지금 느끼는 그 분노와 허무함... 다 이해하네. 하지만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반드시 오지 않겠나?

카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 '기쁨의 날'은 언제입니까? 내일입니까? 아니면 죽은 다음입니까? 저는 그런 불확실한 어음에 제 인생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습니다.


#2. 논쟁: 미래라는 감옥 vs 현재라는 감옥

푸시킨: (바위에 손을 얹으며) 인간의 마음은 원래 미래에 사는 것이라네.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이지. 당장은 이 노동이 지옥 같겠지만, 이 고통이 지나간 뒤에 찾아올 평안을 꿈꾸게. 그 희망이 자네를 다시 바위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아닌가?

카뮈: (단호하게) 틀렸습니다. 그 희망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까지 나오지 못한 게 왜 '희망'인지 아십니까? 그게 인간을 가장 괴롭히는 고문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내일에 대한 희망은 '오늘의 삶'을 죽입니다. "내일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는 지금 바위를 미는 제 손의 감촉, 흐르는 땀방울, 이 순간의 생생한 삶을 '견뎌야 할 형벌'로 전락시키게 됩니다.

푸시킨: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으로 사는가? 미래가 없다면 인간에게 남는 건 짐승 같은 생존뿐이지 않은가?

카뮈: 저에게는 '현재'가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남김없이 소진해야 할 '지금'이 있습니다. 저는 희망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얻었습니다. 내일의 구원을 기다리지 않기에, 저는 오늘 이 바위 앞에서 온전히 주인일 수 있습니다.


#3. 심화: 기억의 미화 vs 의식의 각성

푸시킨: 자네 참 고집이 세군. 하지만 들어보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순간이고, 지나가는 것'이라네.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한 그리움이 되리니.' 자네가 지금 겪는 이 끔찍한 고통도 언젠가는 "그때 참 치열하게 살았지" 하며 추억할 날이 올 걸세. 고통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 그게 인간의 특권이야.

카뮈: (씁쓸하게 웃으며) 선생님은 끔찍한 상처에 예쁜 붕대를 감아주시는군요. 하지만 저는 상처를 드러내고 곪은 부위를 째고 싶습니다. 고통은 그냥 고통입니다. 그것을 '추억'이나 '그리움'으로 포장하는 것은, 부조리한 현실을 흐릿하게 만드는 '도피'일뿐입니다. 저는 바위가 굴러 떨어질 때 눈을 감고 옛 추억에 잠기지 않습니다. 똑바로 뜹니다. 그리고 확인합니다. "이게 내 운명이구나. 피할 수 없구나." 그 명징한 의식(Lucidity)! 그것만이 저를 이 비참한 운명보다 우월하게 만듭니다.

푸시킨: 의식이라... 하지만 그 의식이 자네를 더 괴롭게 하지 않나? 차라리 꿈을 꾸는 게 낫지 않나?

카뮈: 꿈꾸는 노예보다, 깨어있는 반항인이 되겠습니다. 신들이 제게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내렸지만, 제가 그 형벌을 보며 웃어버린다면 신들은 저를 벌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나의 운명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비극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만 남습니다.


#4. 결말: 따뜻한 손과 차가운 눈

(푸시킨, 카뮈의 눈 속에 있는 뜨거운 불꽃을 본다. 그는 더 이상 설득하려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푸시킨: 자네는 겨울 같은 사람이군. 차갑고, 단단하고, 투명해. 나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 때 모닥불을 피워주고 싶었네. "봄이 올 거야"라고 속삭이면서 말일세. 그게 거짓말일지라도, 얼어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카뮈: 네, 압니다. 선생님의 시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얼어 죽지 않고 밤을 견뎠지요. 존경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봄이 오지 않는 영원한 겨울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모닥불 없이도 추위를 견디는 법을, 아니 추위 자체를 삶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푸시킨: (먼 산을 바라보며) 위로가 필요한 자에겐 내 노래가, 각성이 필요한 자에겐 자네의 외침이 필요하겠구먼.... 자, 다시 내려갈 시간일세. 바위가 기다리고 있어.

카뮈: (옷의 흙을 털어내며) 갑시다. 다시 밀어 올려야죠.

푸시킨: 그 지겨운 걸 또 하러 가는데, 자네 표정이 꽤 비장해 보이는군.

카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제 마음을 가득 채운다고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두 사람, 나란히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간다. 푸시킨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카뮈는 묵묵히 앞을 응시한다. 그들의 뒷모습 위로 거대한 바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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