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 <Rationality>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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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는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언어학자이자 심리학자, 인지과학자로서 대중적인 저서를 계속 쓰고 있는데, 초기에는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하여 집필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역할을 고찰하는 책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특히 2002년의 <빈 서판>, 2011년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2018년의 <지금 다시 계몽>에서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낙관적인 측면을 강조했고, 이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2021년에 <Rationality>를 출간하면서 그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이 글에서는 영문 제목을 그대로 쓰겠다)


그런데 제목의 'Rationality'는 무엇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단어는 '이성'이라는 뜻과 '합리성'이라는 뜻 모두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저자는 두 가지 의미 모두를 담고자 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이성'과 '합리성'이 동의어가 아니며, 영어에서는 맥락에 따라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스티븐 핑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가 그동안 얘기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성'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성>과 <합리성> 모두를 후보로 놓고, 둘 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이 글에서도 나는 두 가지 용어를 혼용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성의 역할의 강조하다 못해 '이성의 신봉자'라고 불릴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러다가 이제는 거의 강박적으로 그에 대한 내용의 책을 계속 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을 굳이 왜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전작들에 비해 많이 실망스러웠다.


핑커는 서문에서 (다소 의역하자면) "인간은 이성(또는 합리성, 이하 동일)의 존재이지만, 그 이성은 늘 의심을 받아왔고,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이성은 더욱 필수적이며, 그 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제시한 목적에 얼마만큼 부합했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다룬 것들이다. 저자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고 있는데, 사실 상당수의 내용은 이미 그 책에 나온 것들이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구분, 다양한 인지 편향의 증거들이 모두 카너먼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카너먼은 자신이 직접 수십 년에 걸쳐 수행한 실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지만, 핑커는 단지 카너먼의 연구 내용을 요약하고 인용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깊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생각에 관한 생각> 뿐만 아니라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넛지>의 내용은 <생각에 관한 생각>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의 비합리성에 실천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탈러와 선스타인은 편향을 교정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하는 역설적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핑커의 경우에는 <Rationality>에서 인간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원인을 나열하다가 막바지에 가서야 합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과 제도 개혁을 얘기하는데, 사실상 개인 차원에서 해야 할 것들을 막연하게 이야기할 따름이다.


이 외에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키스 스타노비치의 <우리편 편향>등이 핑커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한 책들은 각각 특별한 목적과 주장을 바탕으로 쓴 것인 반면, 핑커의 이 책은 두리뭉실하면서도 결국 다른 이들 및 자기 자신과 비슷한 주장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핑커는 전작 <지금 다시 계몽>에서 '과학, 이성, 휴머니즘이 인류를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는지'를 방대한 데이터로 보였다. 하지만 사실상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부터 보인 낙관론이 '지나치게 선택적 데이터 해석에 의존한다'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러한 비판은 <지금 다시 계몽>에서도 반복되었고, 이 책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는 객관적인 데이터로부터 사실을 이끌어 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가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취사선택하고 조작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론적으로는 반대에 있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누락됨으로써 편향적인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탈레브가 '극단값(fat-tailed distributions)', 즉 '희귀하지만 충격이 큰 사건'의 문제를 중심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이 근본적 한계를 갖는다'라고 본 반면, 핑커는 이러한 관점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이에 탈레브는 핑커에 대해 '의도적으로 '블랙 스완'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그의 전공 분야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깊이가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책에서 언급한 여러 통계이론 (베이즈 추론 등), 신호탐지이론, 게임이론 등은 앞서 언급했던 책들 뿐만 아니라 여러 대중서에서 다뤄진 내용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다. 핑커도 그 이상의 내용을 다루지 못했다. 그러한 전문성의 한계로 인해, 이 책은 단지 '언어심리학자가 쓴 이성(합리성)에 대한 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하버드에서 관련 강좌를 통해 이 내용을 가르치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자신의 연구 내용이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내용을 정리해서 가르치는 방식이다 보니 그 결과물인 이 책 역시 단순 소개에 그치게 된 것 같다. 핑커는 기존 연구 내용에 대해, 그리고 때로는 학자들 간의 논쟁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는 하지만, 일반인 수준의 단순한 의견일 따름이다.


그렇다 보니, 핑커가 책 전반을 통해 논증을 이어가는 방식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단순 나열, 단편적으로 흩어지는 양상을 보이며, 결론으로 가는 과정은 성급해 보인다. 아니, 결론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그래도 이성(합리성)이 답이다'라는 것일까?




이 책에는 통계학의 내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없는 독자는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통계학은 그의 이전 저서에서도 종종 다뤄진 바 있고, 유사한 다른 저자의 책에서도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이 책이 더 어렵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계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글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가 말한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그 안에 내포된 가정이나 문제점, 유의해야 할 점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즉, 그 이론의 타당성 혹은 합리성만 자신의 주장에 맞춰 제시할 뿐, 그것을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함정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것이다.


5장의 베이즈 추론의 예를 들자면, 핑커는 조건부 확률과 사전 확률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사전 확률 설정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주관적 사전 분포의 선택 문제'는 베이즈 추론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이즈 추론에 익숙하지 않은데도 '빈도주의 통계학'과 '베이즈 통계학'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해 보인다.


9장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작위 대조 실험(RCT)'를 인과 추론의 '황금 기준'으로 제시하고 실험적인 방법론을 소개한다. 그러나 실제 RCT를 수행할 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통계적 유의성 검정(p-value)에 대한 논의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p-value'에 대한 맹신과 남용은 RCT 뿐만 아니라 통계적 연구에서 타당성과 합리성의 근거를 흔들 수도 있다. 더욱이, 심리학 연구들은 그 방법론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재현성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듯하다.


사실 나는 의학에서의 RCT도 그렇게 신봉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심리학이나 사회학 연구에서의 실험, 통계적 연구에 대해서는 의심부터 하는 편이다. 이는 그동안 심리학 연구의 결과들이 얼마나 자주 뒤집혀왔는지, 그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나왔는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완전히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둘째, 합리성의 도구(논리, 확률, 베이즈 추론, 게임이론 등)는 인간의 합리적 판단에 도움이 되며, 이는 교육을 통해 개인 및 사회에 확산될 수 있다.

셋째, 합리성은 물질적 진보와 도덕적 진보 모두의 핵심 동력이다.


첫 번째 결론은 대체로 옳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다른 연구자의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따라'라는 조건이 모호하다. 잘못된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인간이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실험실과 같이 통제된 조건, 혹은 일상과 동떨어진 조건 하에서 행해진 연구들이 과연 인간의 이성(합리성)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복잡한 상황에서,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자아'와 '타아'에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이성적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두 번째 결론은 근거가 부족하다. 통계적 사고가 합리적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실제 그 효과는 의문인 것이다. 내 경우, 통계학 전공자로서 나는 철저히 통계적, 확률적 사고를 하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이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감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상황이 복잡해질 때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는 개인의 믿음, 가치관 등 더 복잡한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러한 도구만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너무 순진해 보인다.


마지막 결론은 그저 저자의 바람으로 보인다. 인류의 물질적, 도덕적 진보가 합리성의 산물인가? 이는 인과 관계라기보다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아니, 결과라기 보다는 아직은 과정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러한 요인들에 합리성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합리성이 최선은 아니며, 그 합리성이라는 명분이 오히려 인류에 재앙을 가져온 경우가 더 많았다. 이 또한 불편한 진실은 외면한 채 낙관론에 그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을만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만약, 유사한 다른 책들을 읽어 보았거나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은 그나마도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의 근거력이 부족하다. 깊이도 부족하다. 그의 저서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저 그런, 흔한 대중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에는 한계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또는 그의 고질적인 약점이 결국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이러한 주제에 대한 책을 읽는다면, 나는 차라리 위에서 언급했던 <생각에 관한 생각>이나 <넛지>, <블랙 스완>, <우리편 편향> 등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팩트풀니스>도 통계적 데이터를 제시하지만 핑커와 마찬가지로 낙관적으로 보는 듯해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통계적 사고에 관심이 있다면 게르트 기거렌츠 등의 <우리는 왜 숫자에 속을까>도 추천할 만하다.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많지만, 우선 이 정도가 생각난다.


<Rationality>는 저자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 과연 국내에서 얼마나 큰 반응을 이끌어 낼지 의문이다. 그래서 아직 국내에서 번역본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어느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늦어지는 듯하다)


또는 핑커의 낙관론과 '이성의 전도사'와 같은 모습에 대해 나처럼 피로감을 느끼는 독자도 많은 듯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이후의 저서들은 다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처럼,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같이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는 스티븐 핑커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은 저자의 의도와 반대되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적어도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독자의 경우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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