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운전석에, 걱정은 조수석에

01. 낭창한 마음

by 참기름강아지


너저분한 방, 밤낮으로 젖힐 일 없는 암막커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난뒤에

피곤에 못 이겨 들어버린 선잠.


혈기없는 얼굴, 다크서클, 떡진 머리.


고작 3평짜리 작은 방이

세상 전부였던 기억이 있다.


우울에 이유를 따지는 건

그냥 누워있느니만 못하다.


그런 쪽의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슬픔에 의한 슬픔이 되곤했다.


날이 맑으면 이렇게 맑은 날, 나만 우울해서 힘들고

날이 흐리면 우중충함이 마음에 얹혀서 힘들고.


웃는 사람을 보면 뭐가 저리 재밌다고

나만 빼고 웃나, 웃지못하는 나를 원망하고

우는 사람을 보면 뭐가 저리 힘들다고

나만큼이나 힘들어 우나, 우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늘 진 세상에서 그늘 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기억이 있다.


/


여행을 다니다보면 미처 경험하지못한

다른 세상의 채도와 명도,

공기가 와닿는 순간이 있다.


경탄과 동시에,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작고 어두운 방과

넓고 빛나는 세상을 비교하게 된다.


문득 방문을 열고 나온 나를 칭찬해주고싶어진다.


날이 맑으면 커피 사들고 산책이나 해볼까,

아침부터 마음이 도근거리고

날이 흐리면 엄마한테 전을 부쳐먹자고 해야지,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책이나 읽어볼까

또 마음이 도근거리는.


웃는 사람을 보면 웃는 모습이 예뻐,

물끄러미 보다가 나도 한 번 웃어보고

우는 사람을 보면 나도 마음이 쓰려,

괜스레 안아주고싶은 오지랖이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낭창한 마음을 만들어준 게 여행이라,

여행가로 살아가면 모든 순간이 예쁠것같아서

열아홉,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