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짐승_필립로스
아무리 많이 알고, 아무리 많이 생각하고, 아무리 음모를 꾸미고 공모하고
계획을 세운다 해도 그게 섹스를 능가할 수는 없어.
인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다면 뭐라 할 수 있을까?
'욕망으로 이루어진 늙어가는 존재다.'라고 정의내리게 만드는 책이 바로 필립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예순 둘 문화비평가 교수인 그는 나이가 자신의 나이의 삼분의 일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회춘은 커녕 20대의 찬란한 젊음을 감당하지 못해 어느때보다 늙음을 철저하게 느낀다. '죽어가고 있음'에 대한 자각이 깊어진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시드는 육체에도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물 넷 그 아이에게 집착하고 불안을 느낀다. 그녀에게 이길 수가 없다. 그무엇도 젊음앞에선 무력하다.
나는 왜 이 아이의 비위를 맞출까? 왜 아이가 얼마나 완벽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멈추지 못할까? 왜 늘 이 아이하네는 뭔가 어긋날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까? p.46
그녀는 어떨까. 반짝이는 육체와 절정의 젊음을 가진 그녀는 왜 늙은 교수를 선택한 걸까. 나이차이남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나이 때문이다. 엄청난 나이 차이에서 기인하는 굴복의 허용, 교수의 권위와 지위가 그녀에게 항복해도 좋다고 그를 허락하게 한다. 그녀는 그렇게 그를 만남으로써 자의식을 충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행동 또한 욕망으로 인한 행위였다. 그런데 그들이 이별한 후 그녀는 유방암을 선고 받는다. 이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그녀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와 헤어진 이후 그녀의 몸을 그렇게 숭배해준 사람은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과거 자신의 몸에대한 찬양을 다시한번 느끼고 싶어 그에게 연락한다. 죽어가는 그 아이 앞에서 그는 풍만했던 그녀의 가슴을 도려낸 후 다시 잘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한테 친밀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이런 젊은 남자와 성적인 수작을 할 때는 얻을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돼. 굴복의 쾌락과 더불어 정복의 쾌락을 누리는거지.p.53
필자는 이 책을 만났을 때 정말 흥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읽은 많은 책들 속에선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걸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이 책에서는 심리도 심리지만 인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신선하게 표현해낸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방식과 필체는 처음 만나본다. 필립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이 책 한권으로 다 설명된다는 것이 짜릿하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해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을까, 인간을 얼마나 많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수많은 학문적 설명과 수식어들 중에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정수를 찌른 대목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딘가 모르게 아릿해져 왔다. 이 책은 외설에 가깝다. 그런데 읽는내내 마음이 너무 아파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가엾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찬란한 찰나의 순간도 늙어가는 순간의 하나일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가련하게 만드는지.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이유도, 더 나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이유도 본능적으로 우리는 늙어가는 게 너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일한 강박이 사랑이라고, 그리고 그 사랑이 사람을 부서버린 다는 문장으로 사랑을 그려내고 섹스로 욕망을 품은 인간을 이야기하며 늙은이와 암에 걸린 여자를 통해 죽음을 사유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늙은 남자의 욕망도 아니고 여성의 비정상적 에로티시즘도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에 관하여 얘기하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늙음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인간은 그 위에서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오직 섹스를 할 때만 인생에서 싫어하는 모든 것과 인생에서 패배했던 모든 것에 순간적으로나마 순수하게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오직 그때에만 가장 깨끗하게 살아 있고 가장 깨끗하게 자기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야. 섹스는 죽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해.
애착은 파멸을 초래하는 적이에요.
조지프 콘래드가 그랬어요.
유대를 맺는 자가 진다.
#필립로스#죽어가는짐승#에브리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