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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nny Jul 29. 2019

reminiscence

짧은 글 #셋

  학기 중 각자의 수업으로, 사람으로, 일로 붐비던 학교는 마치 휴가철이 지난 휴양지의 섬처럼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것 같았다. 휴가지의 붐비는 사람들로 왠지 모르게 휴가철의 기분을 내듯, 텅 빈 학교의 모습은 기억 속의 시끌벅적함과 대비되어 그것대로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게 하였다.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서늘해져 버린 여름밤과 같은 쓸쓸함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문득 외로워졌나 보다.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학교의 이곳저곳을 새삼 다시 둘러보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찾고 있었다.


  맥주가 필요한 밤이라며 친구들과 길을 나선 밤을 나는 기억한다. 낮에 불어오던 포근한 바람이 왠지 조금 쌀쌀해져 있는 밤이었고, 어느새 길가에 활짝 피어 완연한 봄임을 알려주던 벚꽃을 시샘하듯 떨어뜨리는, 그런 밤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 갔다. 저번에 했던 게임의 실력이라던가 어떤 맥주가 맛있다던가 왜 그런 걸 마시느냐던가 하는 것들이었다. 시시하고 별거 아닌 대화였지만 이런 시시함은 나에게 언제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나는 항상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내가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이 무렵도 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삶을 사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삶은 큰 노력이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종종 나를 지치게 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러한 여유는 빠르게 달려가는 나의 삶에 언제나 편안한 휴식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잠시 멈춘 후에도 다시 열심히 달려갈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하루가 끝나가는 아름다운 밤거리의 모습과 술안주가 담긴 봉지를 흔들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는 이런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동아리방에서 밤늦도록 보냈던 시간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날은 당장 내일 아침에 마지막 과목의 시험이 있던 밤이었고, 아직 보아야 할 범위는 꽤나 많이 남아있었던 밤이었다. 시간에 쫓기며 하는 공부는 역시나 하면 할수록 안 되는 것이다. 몸은 피곤하고 머리는 지끈거리고 정리는 안 되고 정말 포기하고 싶어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몇 명의 친구들이 들어왔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시험 기간의 답답함과 곧 끝나는 시험 기간의 해방감을 빠르게 공유했고 이는 새벽 4시까지의 술자리로 이어졌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시험의 압박감보다 왠지 모를 묘한 행복에 젖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짙어져 가는 하늘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시험 기간 혼자 하는 공부의 고독함과 외로움이 나도 모르게 나를 많이 상하게 했음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점점 나를 무겁게 짓눌러 왔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 있는 공부가 스트레스가 되어갔고 시험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는 몸과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져 있었다. 그때 나는 점수를 조금 올리기 위한 공부보다는 몸과 마음을 적셔줄 몇 모금의 물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 밤, 몇 명의 친구들과 몇 잔의 술과 몇 시간의 대화는 어떤 물보다 달콤하게 이 모든 것을 적셔주기에 충분하고도 충분했다. 그래서 이 시간 또한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를 촉촉이 적셔주었던 이 밤을 나는 사랑한다.  


 사람들은 사랑한다면 보지 않고도 볼 수 있고, 느끼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나는 방학 한가운데에서 만난 학교에서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모습을 보지 않고도 볼 수 있었고, 그때의 감정들을 느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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