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1부. 셋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갑자기 엄마가 됐다.
"이게 아기집이에요. 크기는 아직 5mm네요. 다음 주에 아빠랑 같이 오시면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의사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핑크색 산모 수첩에 4주 0일이라고 썼다.
나는 방금 임신 사실을 알았는데, 아기는 4주 전부터 내 자궁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니 그저 혼란스러웠다.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다가온 간호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라고 답을 일러주듯이 거침없는 설명을 이어갔다.
"2층에 내려가셔서 임신·육아 바우처 카드랑 태아보험 설명 들으시고, 1층에서 수납하시면서 임신확인서 받으시면 돼요. 그리고 보건소 가셔서 임산부 등록 하시고 혜택 설명 들으시고요. 참, 엽산은 먹고 계시죠?"
"아니요.”
내가 그런 걸 먹고 있었다면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며 멍하니 귀에 들리는 말들을 가만히 적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정말 큰일이라도 난 듯 나에게 다그쳤다.
"네? 엽산은 꼭 드셔야 돼요! 엽산을 드셔야 애기 염색체 이상이 안 생겨요. 산모 전용 영양제들도 잘 나오는데, 따로 드시는 거 없으시면 옆 건물에서 상담받으시고 가세요.”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일단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2층, 1층, 옆 건물, 보건소를 차례로 방문하며 설명을 잔뜩 듣고, 돈을 내고, 서류를 받고, 약을 샀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정보들이 가득 차서 머리가 아팠다. 머릿속에 미처 저장되지 못한 정보들은 욕으로 변환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고 막막했다.
임신테스트기를 살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고,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을 때에도 설마설마했다. 병원에 가면서는 테스트기를 의심했고, 간호사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모르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의사에게 임신 확정 진단을 받았을 때는 ‘헉’ 했다. ‘망했다’라거나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쏟아지는 정보에 휩쓸려 잠시 생각이 멈췄고, 간호사가 엽산 이야기를 했을 때에는 아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엽산을 먹지 않아서 아기가 아프게 될지도 모른다는 죄책감도 함께.
영양제를 한 아름 사 들고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에 서서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은 의사가 말했던 안정기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런 생각도 했다. 지금 4주밖에 안 됐는데 안정기가 되기 전에 자연유산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왠지 아기에게 미안해지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하는 질책의 말이 들리는 듯했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이기도 했기에 그런 가정을 안 해 볼 수는 없었다. 3년이 흐른 지금이야 예쁜 딸과 함께하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나중에 딸이 커서 이 글을 읽고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며 ‘엄마인데 어떻게 그래?’라며 나를 질책한다면 내 대답은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너도 임신해 봐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가 보자.”
흘릴 수도 있겠지.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도 많고, 내 딸도 나중에 임신을 간절히 원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내 이런 글을 본다면 복에 겨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임신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을 테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임신을 하는 것이 무서웠으니까. 임신으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내가 할 수 있었던 많은 기회들이 사라지는 것이 억울했으니까.
“XX”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욕도 했다. 여러 번 했다. 그것도 꽤 자주. 지금까지 나는 정말 화가 나도 욕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임신 초기에는 이 복잡한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어서, 욕이라도 안 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길래 그랬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쨌든 엄마라고 4주짜리 태아에게 들리기라도 할까 봐 소심하게 중얼거렸더랬다.
엄마가 도대체 뭐라고, 아기가 도대체 뭐라고. 엄마가 되자마자, 아기가 생기자마자.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쭉 ‘나’이기를 원하면서도 또 ‘엄마’이기를 무시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게 되는지. 단순하고 명확했던 나는 빅뱅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졌고, 오로지 뿌연 연기만이 가득 차 있었다.
▢ 임신·육아 바우처카드(국민행복카드) 발급받기
▢ 임신확인서 받기 (카드 발급, 임신·육아 관련 지원 신청 등에 필요)
▢ 임산부 영양제 먹기 (엽산, 유산균, 칼슘, 오메가3, 비타민D 등 임신 주수에 따라 다름)
▢ 보건소 가서 임산부 등록 하고, 지원 혜택 설명 듣기 (지원혜택 적힌 리플릿, 임산부 먼저 핑크 배지, 육아가이드 책 등 증정 / 보건소마다 다름)
▢ 태아보험 가입하기 (보통 1차 기형아검사 하기 전까지)
▢ 산후조리원 또는 홈 케어 결정하기 (산후조리원의 경우 안정기인 16주 이후에 예약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기 있는 곳들은 훨씬 빨리 마감될 수 있음)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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