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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선 Aug 26. 2024

1부 - 2화. ‘너와 나’에서 ‘우리’가 된다

<엄마와 나>

1셋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2. ‘너와 나에서 우리가 된다     



우리로 처음부터 다시 보기     


    월경이 며칠 늦어지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최근 살이 찌고 있기도 했고, 몸살 기운이 있어서 컨디션 때문에 며칠 늦어지나 보다 했다. 그런데 쭌이는 ‘이번엔 뭔가 쎄한 느낌이 든다’며 몇 번이고 나에게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약국에 가기 귀찮아서 며칠을 더 그냥 흘려보냈다. 어기적거리는 사이에 월경이 시작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월경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설마설마하며 테스트기를 확인하는데, 꽤나 선명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마침 쭌이가 출장을 간 날 테스트를 하는 바람에 얼굴을 맞대고 결과를 공유할 수가 없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오빠. 두 줄인데?”

    “두 줄이면 뭔데?”

    “임신.”

    임신. 두 글자를 말하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복잡미묘한 감정이었지만 확실한 건 기쁨의 퍼센티지가 크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아직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쭌이와 전화 통화를 이어나감과 동시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누군가는 임신테스트기의 정확도가 90% 이상이라 하고, 소비자원에서는 30% 이상의 제품이 정확도가 떨어진다고도 한다. 쭌이도 임신테스트기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았던 터라 우리 둘은 ‘일단은 병원을 가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 근처에는 대구 산부인과 중 큰 규모의 병원에 속하며, 쭌이의 여동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산부인과가 있어서 병원 선택에 있어서의 고민은 없었다. 다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뿐. 

쭌이 없이 혼자 병원을 가야 했지만, 그렇다고 쭌이가 돌아올 때까지 궁금증을 참고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병원으로 나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두 줄이 나와서요.”

    “축하드려요! 자연임신이시죠? 요즘 자연임신이 정말 힘든데, 축복받으셨네요!”

    “아, 그런가요? 그런데 임신테스트기가 틀릴 수도 있지요?”

    “아니요. 거의 백 프로라고 보시면 돼요. 정말 희미하게 두 줄이 나와도 검사해 보면 임신으로 떠요. 키랑 몸무게, 혈압 체크하시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시면 돼요. 축하드려요!”

    간호사의 100% 확신에 찬 축하를 받고 나서도 나는 아직 임신일 거라고 믿지 않았다. 시중에 파는 간단한 테스트기의 성능이 100%일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테스트기를 두 개, 세 개 사용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던데, 나는 한 개만 사용했으니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가 검진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의사에게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떠서 왔음을 밝히고, 초음파 검사를 준비했다. TV에서 봤던 것처럼 배 위에 젤을 바르고 기기를 움직여 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산부인과의 수치스러운 일반 진료를 받을 때처럼, 노팬티 병원 치마 차림으로 기기 위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질을 통해 초음파 검사를 했다. 임신 초기에는 아기가 밑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배로는 초음파를 볼 수가 없단다. 이 부분은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해 더욱 당황스러웠다. 왜 29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걸까. 조카도 셋이나 있는데 그동안 새언니가 이런 건 한 번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아래의 미끄덩거리고 불편한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에 뜬 영상에 온 신경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흑백의 화면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음파 사진처럼 구부러진 사다리꼴 모양이 나타났고, 검은색 구멍 두 개가 보였다. 나는 영상을 아무리 열심히 쳐다봐도 의사의 설명 없이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어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조용히 설명을 기다렸다. 의사는 까만 구멍 중 하나를 가리키며 아기집이 생겼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다른 구멍은? 크기도 모양도 비슷한데 혹시 쌍둥이인 건가?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의사는 다른 구멍의 정체는 피가 고인 것이라고 했고, 작은 크기이니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피고임이라는 말에 잠깐 놀랐지만 큰일은 아니라니 마음이 놓였다. 아니, 아기가 생긴 일이 아주아주 큰일이었다.

    “오빠, 이제 오빠가 아빠가 됐대. 어떡하지?”

    “우리 계획보단 빠르게 찾아왔지만, 잘 키워보자. 나도 열심히 할게. 엄마 된 거 축하해~”

    “응. 오빠도 축하해~”

    쭌이는 미리 준비라도 한 것인지, 아주 정석적인 멘트를 했다. 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렇게 예쁜 말을 해주는 쭌이가 고마워서 거기다 대고 심술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덤덤하게 이야기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축하한다고 말하는 와중에 눈물이 자꾸 나왔다. 

축하한다는 말에 조금은 진심이 덜 들어가서 양심이 찔렸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상황에 놀라고 당황스러운데, 또 완전 싫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막 기쁜 감정도 아니었는데, 분명한 건 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쭌이가 잘 키워보자고 이야기해 준 것이 고맙고, 또 쭌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안심하면서 눈물이 나온 것 같았다. 쭌이가 잘 키워보자고 하니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확실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감정들이 들쑥날쑥 온몸을 헤집고 다니다 눈물 버튼이 눌려진 것이겠지. 뭐가 어찌 됐든, 눈물이 나오면서 이제 쭌이와 나뿐이던 우리의 세계에 아기가 생겼다는 것과 우리가 진짜 우리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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