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1부. 셋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지금까지 세웠던 나의 인생 계획에서 아기는 없었다. 당연하다. 그땐 아기가 없었으니까. 아기가 생긴 지금,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은 바뀌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참 쉽지가 않은 일이다. 온전히 혼자였던 ‘나의 삶’에서 ‘쭌이와 함께하는 우리의 삶’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쭌과는 연애와 동거의 과정을 거치면서 충분히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볼 시간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의 준비도 했었다. 일을 하는 스타일이나 시간대가 안 맞아서 조율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 조금씩 노력하여 맞춰가는 재미도 있었고, 그러면서 돈독해지는 느낌도 들었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우리는 ‘우리’가 되었었다. 그런데 아기가 생긴 일은 그야말로 ‘침범’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아이라는 외계행성의 침공으로 나의 삶은 한 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쭌이를 만나기 이전의 나는 비혼주의는 아니었지만 연애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결혼이 내 인생의 큰 이슈는 아니었다. 쭌이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면서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지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게 정확히 언제쯤 일거라는 생각은 안해봤다. 그리고 아이를 안 낳겠다고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구체적으로 상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막연하게 상상해 본 적은 있는데, 그저 ‘낳는다면 딸이면 더 좋겠다’ 정도? 그리고 그것은 쭌이도 마찬가지였고, 우리에게 결혼식과 아이는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이 없었으니 딱히 어그러진 것도 아닌가? 아무튼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탄탄이가 찾아왔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임신 초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엄마로서의 일은 물론이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가정이 있는 여성이 집안일 때문에 일에 참석하지 못했던 모습, 엄마가 저녁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아빠의 모습, 아기가 아파서 회사에 데려와 일을 하며 곤란해하던 회사 팀장님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함께 일하던 경험이 많은 감독님에게 물었다.
“감독님, 결혼하고 애기 키우면서도 현장에 계속 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많지는 않지. 거의 없지.”
“보통 어떤 롤(영화 현장에서의 역할)을 해요?”
“데이터 매니저나 현장 편집? 내가 본 사람들은 그래.”
한 마디로 현장을 주도하는 역할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관찰하며 정리하는 역할이라는 거다.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데이터란, 그 날의 결과물이다. 이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도록 삼중 백업을 하고, 결과물을 미리 그려볼 수 있게끔 현장에서 촬영한 데이터를 편집하여 밑그림을 보여주는 역할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데이터 매니저와 현장 편집의 중요도가 낮다고 말하거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고 희망하는 역할이 아니었기에 실망한 것 뿐이다. 굉장히 많이.
한 번의 좌절을 경험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진로고민을 하던 때로 돌아가 내가 가장 바라는 본질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 나는 표현해야 사는 사람이다.
나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 정체된 삶을 싫어한다.
나는 재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나는 영화가 재미있다.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즐겁다.
- 나는 회사에 속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일을 하는 것이 잘 맞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내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 북돋아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엄마로써만 살고 싶지 않았다. 원래 생각하던 바와는 다를지언정 스스로 재미있는 일을 찾아 즐겁게 사는 것이 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다시 새로운 나를 만들자.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자 행동하는 것은 쉬웠다. 배리어프리 비영리모임을 만들어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하며 가능성을 찾아보았고, 미디어강사라는 일을 시작했으며, 일을 하며 새롭게 만난 선생님들의 영향을 받아 라디오도 만들어 송출해 보았고,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시나리오 외주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일들은 또 다시 나에게 공익활동가, 강사, 작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면서 가능성을 넓혀주었다.
나는 지금, 이전 동료들과 같이 영화 현장에서 뛰고 있지는 않지만 새로운 꿈을 꾸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전 동료들과도 가끔씩 작업을 한다. 온전히 영화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던 그 때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즐기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은 모습인 것 같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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