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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09. 2024

유부녀는 오늘 가출합니다

나를 찾지 마세요


[친구가 좋을 나이, 마흔]의 후속 이야기입니다.     


우린 경복궁역에서 만났다. 10개월 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듯 이질감이 전혀 없는 우린 서로 덕담을 나누느라 바빴다.


“어쩜 우린 학교 다닐 때라 똑같니 똑같아.”

“맞아 얼굴도 그대로고, 여전해.”

“근데 나는 살이 좀 찌지 않았어?”

“아냐 아냐. 딱 좋아.”     


홀로 있을 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던 이도, 전우와 같은 27년 지기 친구와 똘똘 뭉치니 무서울 게 하나도 없었다.


‘나이 마흔에 이 정도면 날씬하지!’(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달콤해진 입담은 각자 눈앞에 놓인 두툼한 삼계탕을 뜯으며 유독 바빴다. 분명 어제저녁 식사만 해도 제 양을 채우진 못한 위는, 낯설게 활발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술술 넘어가는 뽀얀 닭고기는 마흔의 소화력을 의심케 했다.







적당히 채운 아랫배에, 입가심할 먹거리를 손에 가득 채워 2차전을 위해 호텔로 들어왔다. 새하얀 테이블에 포장해 온 음식을 차례대로 차렸다. 이쁜 잔을 준비하고 각자 준비한 마니토선물(책)을 곁에 두었다.


“어떻게 선물 뽑을까?”

“카카오톡에 사다리 타기 있던데 그거로 하자”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어려웠다. 그냥 어려웠다. 결국 우 아날로그식으로 종이에 이름을 적어 한 곳에 모아 흔들어 눈감고 뽑았다. 그런데 흔들면 흔들수록 까르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마흔 인 우린 여전히 17살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     



종이에 적인 이름대로 서둘러 선물을 건네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지를 쓰다듬을수록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어떤 녀석이 이 안에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이윽고 포장지를 찢었고 책 보다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이름이 적힌 얇은 편지였다.


‘to. 혜민’


마니토는 누구에게 전달될지 모르고 준비하는 것인데, 버젓이 내 이름이 적힌 선물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 A에게 물었다.


“내가 받을 줄 어떻게 알고 편지를 썼어?”


그러자 A는 가방에서 나머지 3개의 선물을 추가로 꺼냈다.


“너희 생각하면서 선물하고 싶은 책 하나씩 다 준비했지. 그리고 편지도 넣었어.”


평소 감정선이 섬세한 A는 그날도 우리에게 뭉클함을 선사했다.     

그 뒤를 이어 나도 준비한 뭉텅이를 꺼냈다.


“추가 선물이야. 하나씩 선택해.”


동글동글 뭉텅이를 이리저리 주무르던 친구들은 정체가 궁금했는지 서둘러 뜯기 시작했고 나도 그중 하나를 집어 속 알맹이를 내비쳤다.


“난 주황색”

“앗 이게 뭐야”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친구들은 학창 시절 그때의 미소와 함께 서둘러 입기 시작했다.


“편하기 편하네”


그렇게 우린 편한 복장으로 그날밤을 오롯이 만끽했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함께 못한 친구로 이번에 4명이 모였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색을 바꾸게 된다.


지난 여행 친구에게서 받은 책(선물), 나눠 입은 몸빼바지 또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손때가 묻고 어쩌면 찢기거나 낡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만남의 설렘과 위로의 진심이 듬뿍 담긴 한 권의 책

까르르 웃으며 입던 촌스러운 몸빼바지의 나열  

   

여전히 싱겁지만 깊은 맛 그녀들과 나눈 그 밤 또한 변하지 않을 하나이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짙은 꿈을 꾼 듯 가출한 그날이 또렷하다.     

여전히 깊은 잔상에, 배시시 행복이 새어 나온다.


우리의 네번째 가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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