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설 명절인데 무료하기 그지없다. 명절 전날엔 온 가족이 찜질방에 갔다. 허리쯤 오던 아이들이 이젠 나보다 크다. 최근에 코로나로 온 적이 없었는데, 달봉이 얼마 만에 왔는지 묻는다. 얼마 전에 왔는지 기억은 없다. "네가 요만할 때 자주 왔었지. 너희들 목욕시키느라 아빠가 힘들었지"라고 대답했다. 별봉이도 환하게 웃는다. 그러고 보면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 이젠 알아서 본인들이 잘 씻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다.
찜질방에 내려갔더니 코로나로 마스크를 하고 불가마에 들어가야 한다는 문구가 붙었다. 아이들이 양머리 아직도 할 거냐고 물어봤는데, 마스크까지 하고 들어가니 기분이 묘하다. 다들 마스크를 하고, 안 하신 분도 있고. 불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왔더니, 이 녀석들 찜질은 관심 없고, 컵라면에 이것저것 사 먹고 둘이서 코인 노래방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마나님이 마무리하고 집에 가자는데 계속 4곡이 남았다며 나보고 한 곡 부를 거냐고 한다. "열심히 해라"라고 답해줬다. 다음엔 노래방엘 가봐야겠다.
명절날 차례를 지내고, 누나들 식구들이 와서 어머니께 세배했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이젠 세배하지 마라"라는 어머니의 우기기도 할 수 없지. 조카도 대학에 합격하고, 한 군데 아직 발표가 남았다고 한다. 서로 세배하고 인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조카 온다고 좋아하는 음식을 해준 우리 마나님이 고생이지. 세뱃돈도 주고, 조카 책도 한 권 주고, VOD로 영화도 보며 평범한 명절이 지나간다.
막상 명절이 지나고 연휴가 이어지는데 무료하기 그지없다. 극장 영화도 딱히 볼 게 없고, VOD도 별로 볼 게 없다. 50 페이지 읽은 '파친코'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려서 혼자서도 신이 났는데, 나이 먹으니 심심하기가 그지없는 명절이다.
머릿속으로 명절 지나며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살펴봤다. 잘 되고 있을 때 잘 다져놓고 축적해야 한다. 한 번 성장했을 때 더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닥을 올려놔야 훨씬 더 안전하다. 그래야 다음 점프를 더 쉽게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한 번 더 터닝 포인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땐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회의 머리끄덩이를 손에 잡아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이것도 욕심일까?
갑자기 사회에 나와서 내가 누굴 가르쳐 본 적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굴 돕는 것과 진심을 담아 어떤 사람을 성장시키고 본인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과정은 조금 다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연속 사고를 치고 이걸 정리하느라 화가 나서 "학교도 아닌데 엄마 불러오고 싶어? 그래야 정신을 차리겠어?"라고 했던 녀석이 생각난다. 그 바람에 이 녀석에게 실무적인 것을 하나 둘 가르쳐주다 보니 이젠 해외 법인장으로 나가있다. 뜬금없이 나가기 전에 인사하러 왔었는데. 다른 녀석은 어쨌든 금년에 연구소장이 되어 일만 엄청 늘었다는 투덜이가 하나 있고. 배우는 것은 재미가 있으나 가리치는 일과는 적성이 전혀 안 맞는데 지금 우리 회사 팀장에 공들이는 중이다. 언제까지 해? 나중에 본인이 내일 다 줄 테니 해야 하고, 난 쉬어야지. 다른 한 놈은 일은 왜 안지켜냐고 해서 바짝 시켰더니 입에 거품 물고 다른 부서로 튀었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그래도 그러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온갖 다양한 이벤트를 즐겁게 보고 떠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괜찮은 거지. 그때 일이 회환이 되지 않았으면 잘 살고 있다는 말일지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미래의 즐거운 회상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런데 자꾸 옛날 화려한 기억들 때문에 자꾸 웃음이 나네. 시간이 흘러 멀리서 보면 코미디인데, 그땐 어휴.
어려선 형아, 언니야가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형아 언니야가 되니 손이 많이 간다. 이거 뫼비우스 띠 같아. 아우 심심해. 입맛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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