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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Oct 13. 2024

새로운 여행 Stuttgart

[천상잡부] 새로운 인연, 사업 그리고 인생

 3월부터 준비한 전시회로 Stuttgart에 다녀왔다. 뻔질나게 다니던 Frankfurt에서도 기차 타고 두어 시간을 더 가야 한다. 5월에도 다녀왔을 때 변두리를 헤매느라 시골 읍내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엔 전시회 짐도 있고, 함께 딸려가는 자매님들도 있으니 돌아가더라도 Stuttgart까지 직항으로 갔다. 러시아도 전쟁 중이고, 중동도 전쟁 중이라 비행기가 대권을 가로지르지 못하니 평소보다 2시간이나 더 걸린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본사 인력과 합류하고 즐겁게 준비한 결과에 조금씩 가깝게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해 보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낯선 분위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겹치는 부분이 있다 보니 말이 잘 통하기도 한다. 미팅을 약속했던 기업의 프로덕트 매니저도 나랑 경력이 비슷하다. 서로 다른 업종에서 이 업종으로 와서 이야기를 하니 잘 통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네. 가깝게 보면 다르고 또 멀리 보면 서로가 오밀조밀 연결되어 있다.

 


 전시장과 공항 가까운 호텔을 잡았더니 방에서 공항과 전시장이 잘 보인다. 어디 가나 보이는 Bosch와 달리 Bosch 사업부는 전시회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문자로 연락했더니, 또 다른 녀석이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돌고 돌다 보면 또 만나리라. 어차피 이 전시회랑 연관도 없는 걸!


 호텔에 빵이 다양하다. 독일 곡물 빵은 정말 맛있기도 하지만 일주일정도 빵판으로 돌리면 물리기 나름이다. 아침에 수프가 나오면 좋은 호텔이지만 그런 호사스러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계란 프라이 반숙과 기가 막힌 버터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큰 자매님, 작은 자매님은 오므라이스가 기가 막힌 꿀맛이라며 좋아한다. 아침부터 연어를 참 잘 잡숫는다. 어린이 입맛에겐 아침부터 생선은 아니지!


 자매님들 배려형 출장으로 전시 설치 전 하루는 쉬기로 했다. 밥도 먹을 겸 슐로스플라자에 다녀왔다. 광장과 궁전이 하늘과 어울려 멋지게 펼쳐졌다. 우연히 찍은 사진에 해님이 마치 "너네들 여기에 무슨 일로 왔니?"라고 묻는 것처럼 사진이 나왔다. 광장 한편엔 팔레스타인들이 시위를 하고 (5월 프랑크푸르트도 하던데!), 잠을 설치다 본 우리나라 뉴스도 세상은 요지경이다. 혼자 남아서 사무실을 지키는 막둥이랑 영업팀장이 한 편으로 걱정되고 또 한편으로는 창립기념일이라 맛난 거라도 먹으라고 했다. 독일온 여러 자매님들은 만나서 즐겁다. 일요일 쇼핑몰이 논다고 아쉬움이 큰가 보다. 


 하늘이 깊고 파랗게 변해서 더 좋다. 시시각각 그림을 그리는 구름의 재능이 뛰어날 뿐이다. 

 다국적 자매님들 중 한 분이 폼 잡고 사진을 찍는다고... 내가 저 전기 따릉이를 몇 개를 옮긴 거야.. 아이고.. 하여튼 자매님들이 삼촌하고 부르면 무섭다. 삼촌이라 부르고 잡부처럼 부려먹는다니까.. 



 그중 막둥이 자매님이 옥토퍼 페스트에 가는 것이랑 학센을 먹어보겠다며 버킷리스트를 담아왔다. 시간이 어정쩡해서 벤츠 박물관을 가자고 U-Bahn을 탔는데 놀이동산이 있어서 일단 내리고 봤다. 마치 오래전 배낭여행처럼 특정한 목적지가 아니라 낯선 곳에 발을 내딛던 추억이 생각난다. 어쩌면 여행이란 낯선 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시작된다. 어차피 업종이 살짝 바뀌고, Stuttgart를 걷고 있는 나처럼. 천천히 걸어야 자세히 보고, 자세히 봐야 또 전과 다르다. 놀이기구를 타니 자매님들도 전과 다르다. 가관이다. 


 그렇게 우연히 동네 옥포버페스트 참가했다. 맥주도 한 잔 마시고, 놀이기구도 타고. 잘 보면 동네 연합마을 잔치처럼 느껴진다. 가죽 반바지가 전통의상 같다. 600유로 정도이던데 다들 하나씩 입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저 반바지 빨지도 못할 텐데 ㅎㅎ.


 전시 Booth 설치를 마치고 트램타도 몇 정거장을 가서 밥을 먹었다. 당연히 자매님들 욕구충족을 위해 DM도 잠시 들르고. 살 거 없다더니 다들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기찻길에 핀 꼿이 괜히 예뻐 보인다. 플랫폼은 누군가 떠나보내고 또 맞이하는 곳이다. 인생도 사업도 이런 양상을 피해 가기 어렵다. 



 Stuttgart Messe는 디자인이 아주 수려하다. 전시장 안쪽으로 층마다 공원같이 조성되었고, 각 Hall도 아치형 지붕이 멋지다. 특히 아치형 사이로 채광을 위한 창이 있어서 참 보기 좋다. 


 첫날부터 약속된 미팅을 하고, 고객 부스를 방문할 때면 가능하면 9시 개장 전에 방문을 했다. 개점 전부터 공급사가 찾아가면 민폐 아닌가? 반갑게 맞아주고, 이 업종에서는 어떻게 보면 듣보잡인데도 잘 맞이해 주고 친절하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기존에 경험했던 전투적인 전시회보다는 느긋해서 좋지만 바닥이 아주 깊다. 이 업종은 어떻게 된 게 연구소뿐만 아니라 박사가 지천이야? 


 첫날 개막전을 잘하고, 둘째 날은 자매님들 떼어놓고 조카랑 주요 부스에 가서 인사도 하고, 서로 소개도 하며 standing meeting를 여러 군데 했다. 이젠 구두 신고 하루종일 서있기 대단히 불편하다. 보통 전시회하면 2만 보인데 그 정도를 걷지는 않았다. 다만 이거 좀 떼버리고 싶을 정도로 욱신거린다. 늙는 거지 뭐.. 그렇게 둘째날도 즐겁게 전시회를 하고 학센을 먹으러 다녀왔다. 


 둘째 날과 마지막 날은 정말 신기했다. 현재 거래기업이지만 계열사가 많고, 계열사별로 분야가 다르다. 꼭 하고 싶은 계열사가 있었는데 누가 우리 부스 한 귀퉁이를 빼꼼히 보고 있다. 인연인가? 관련 계열가 개발자가 와서 우리가 잘하는 분야를 찾고 있다. "우리 당신 회사 협력사입니다. 그리고 그 제품을 찾는다면 정말 제대로 찾아오신 거예요?"라고 했더니 얼굴빛이 환해진다. 이스라엘 전쟁 때문인지 해당 개발 업무가 자기 쪽으로 다 몰려와서 난리란다. 마침 우리도 주력으로 밀려는 제품인데 신기하네. 정작 이 제품은 이번 전시회랑 무관한 제품인데. 그런가 하면 Family Brand를 사용이 이 기업 전시 부스에서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데, 나이 지긋한 인도분이 지나가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다시 한번 등록 협력사라니까 신기하다는 듯 부스랑 나를 여러 번 훑어보신다. 마침 뭘 하나 만들어 보려고 하신다면 연락하겠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다. 


 더 웃긴 건 우리 자매님들이 앞집 부스 보면 "재 완전 두기 박사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니?" 하며 종일 도촬을 하는 집이 있었다. 그 집 어르신과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했다. 몇 번 연락을 시도한 업체기도 하다. 마지막날 갑자기 어르신이 오시더니 "너네 이런 거 만들 수 있어?"라고 문의를 한다. 바로 연구소에 연락해서 'OK' 사인을 받자마자 얼른 달려갔다. "어르신 가능합니다. RFI주시죠"라고 했더니 웃으며 연락 주신단다. 그런가 하면 그 옆집 아저씨는 자매님들 드시라고 맛난 과자를 주신다. (정말 맛있었다) 만나주지도 않던 업체가 방문해서 이야기가 잘 되기도 하고, 우리 핵심사업분야는 이번 전시회랑 조금 거리가 있는데 관련 분야 방문자를 우연히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래 뭔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어도 부족하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고, 이렇게 인연이 닿는 것은 얻어걸려서 되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우리 회사에서 하는 분야가 3-4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속을 썩이니 다른 쪽이 잘 되고, 다른 쪽이 잘 될 때까진 속 썩이던 녀석이 너무 잘되고 도통 맘되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물 흐르듯 다들 합심해서 추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다행이지 뭐. 다 잘된다는 욕심이 일을 그르친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를 잘 마치고 마지막 날도 학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읍내에 나갔다. 돼지 껍질을 잘 발라서 뭐 하나 했더니 인생샷이라며 이렇게 찍어준다. 살 수가 읎다. 쭈그려 앉으면 등판이나 찍어주고. 자매님들!! 벌 받는다고!!


 듣보잡 츄리닝 하의만 800유로 하는 아웃렛을 잠시 보고 "여기가 아닌게벼"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커피를 마시고 공항으로 움직이려는데 선명한 무지개가 보인다. 올해 한국에서 엄청나게 큰 쌍무지개, 중국 출장에서 완성형 무지개, 독일에서는 꽤 선명한 무지개, 돌아오는 대로에서 은은하고 크게 펼쳐진 무지개를 본 것 같다. 올해 4번이나 무지개를 보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심이지만 이런 건물 뒤로 무지개가 생기면 좀 좋아? ㅎㅎㅎㅎ


 차분한 트램역과 달리, 공항은 역시나 여러 추억을 만들어 준다. 비행기가 지연되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이나 지연이 시작됐다. 뒤셀도르프에서는 자발적으로 다음날 간 적이 있다. 에센에서는 타아야 할 비행기가 오지 않아서 9명이나 되는 식구들 챙겨서 복귀하느라 개고생을 한 적이 있다. 하루 늦게 무사 복귀를 했음에도 온갖 타박이 많다. 보상금도 받아줬구먼. 갈아타는 시간이 1시간 정도라 조금 걱정이 됐다. 자매님들이 열받는다며 맥주를 마시잔다. 안심을 시키러 항공사 직원에게 문의를 했더니 괜찮단다. "내가 KLM 추억이 많다. 괜찮다고 하고 너는 집에 가고, 나 혼자 공항에 몇 번 남아봤는데 확실하냐?"라고 했더니 까칠한 안경 쓴 언니가 걱정 말라고 타일르고, 정말 예쁘게 생긴 언니가 별일 없을 거라고 이야기해 준다. 돌아와서 자매님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중요한 건 "이쁘냐?"로 귀결된다. 나만 죽일 놈이 된 거지. 아휴!! 10년짜리 당첨이지..아이고!! 동네방네 소문내겠다는 횡포까지..


 비행기를 탔더니 가관이다. 옆자리 녀석이 우리 자매님들에게 "너는 행운이다, 나는 틀렸다 ㅠㅠ", "나는 너네들보다 시간이 더 짧다" 온갖 소리가 나온다. 방송으로 보아하니 브라질부터 다양하게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한국은 안 나온다. 공항 내리자마자 자매님들 나만 떼놓고 자기들끼리 달리기를 한다. 아깐 그렇게 가자고 해도 미적거리더니 집에 못 가는 건 걱정인게벼. 게이트에 도착하니 시간이 남는다. 이젠 200M나 달렸다고 힘들다고 난리다. 거봐라.. 내가 뛰지 말라고 했지 여유 있다고?! 이 말해봐야 또 예쁜 년 소리가 나올까 봐 말을 말아야지.. 하여튼 이렇게 무사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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