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번 버스 기사님의 목소리...

어느 날 밤, 회식 후 타게 된 버스에서 겪었던 친절

by 김 마음

내가 아주 어릴 땐 우리 동네 집 앞 종점까지 오는 버스를 어쩌다 한 번 보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나도 빨리 커서 버스 타고 학교나 직장을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게 소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야 버스로 통학을 하게 됐으니, 그 소원을 이루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직장을 다니면서는 오히려 대중교통을 이용할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늘 직장과 멀지 않은 거리에 내가 사는 집이 있어서 대부분을 편리한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했기 때문이다.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탈 수 있는 기회라곤 어쩌다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였다.

회식 후 귀가 시에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그중에서도 지하철은 역세권에 살지 않기 때문에, 택시는 밤에 잡기가 너무 힘들어서 주로 집까지 가는 노선버스를 이용했다.

늦은 밤 별로 많지 않은 승객과 도심의 텅 빈 도로는 버스가 다니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버스기사님 들도 빨리 운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인지 그 시간의 버스는 도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몇 년 전 어느 날, 그날도 회식 후 늦은 밤 집으로 가는 999번 노선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스피커에서 '어서 오세요.'라는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특이한 버스라고 생각하고

뒷좌석에 피곤한 몸을 묻었다. 그 후 매 정거장에 버스가 설 때마다, 기사님은 버스에 타는 사람들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내리는 사람들에게는 '조심히 내리시고, 안녕히 가세요.'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기사님 쪽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기사님의 복장은 흰 장갑에 정식 근무복을 입고 있었고, 귀에는 이어 마이크를 걸고 버스에서 내리고 타는 모든 승객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버스기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인지 운전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교통체증, 다른 차들의 끼어들기, 운전 중에도 늘 승객들에게 집중을 해야 하고, 교통사고에 대한 부담감, 정체되는 차 시간을 맞추기 위한 스트레스 등등... 어느 직업이 쉬운 게 있겠냐마는 버스기사라는 직업은 그중에서도 쉽지 않은 직업이 분명한데, 그 속에서 친절하게 승객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저 기사님이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늦은 시간 야간 운행을 하는 시내버스에서 친절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기사님의 승객들에 대한 친절과, 안전을 위한 남다른 행동은 단순한 직장의 업무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 기사님은 남들보다 더 힘들지만 자신의 직업과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 작은 업무에도 짜증 내고 조금만 힘들어도 혼자 직장 업무를 다하는 것처럼 불평하던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업무를 하면서 남들한테 손해 보기 싫어서 이 업무가 내가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부터 따졌던 날들. 내가 하는 일들을 남들이 얼마나 알아줄 것인가 하는 마음.. 모든 일들의 결과를 따져보고 나에게 이득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했던 일들.. 그외에 많은 부정적인 행동들..

술을 한잔 먹고 겪게된 일들이라 그런지 기사님의 행동을 보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으로 좋은 행동을 할때 남들이 나를 보는 마음이 바로 내가 지금 버스기사님을 보는 마음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버스에서 내릴때 쯤 나도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집까지 오는 몇 정거장 아닌 시간이 마치 긴 여행을 한 시간 같았다.

내가 버스에서 내릴때 여전히 기사님은 '조심히 내리시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했다. 나도 큰 목소리로 "기사님도 안전운행 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 후에도 몇번 더 999번 버스에서 그 기사님을 볼수 있었다.. 그 때마다 여전히 단정한 유니폼에 귀에 이어마이크를 꽂고 친절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남을 배려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준 기사님이 너무 고맙고, 존경스럽다.

BeautyPlus_20190413092356043_sav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