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민간요법에서 현대 합성의약품까지
아스피린(아세틸살리실산)의 개발 역사는 인류 의학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취 중 하나로, 고대 버드나무 껍질의 민간요법적 사용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정교한 합성의약품에 이르기까지 약 3,500년에 걸친 장대한 여정을 보여준다. 이 약물은 최초의 합성 의약품으로서 해열, 진통, 소염 작용뿐만 아니라 심혈관 질환 예방에까지 활용되며 인류 보건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아스피린의 개발 과정은 단순한 화학 합성의 성공을 넘어서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 제약 산업의 형성, 그리고 현대 의학의 토대 구축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스피린의 역사적 기원은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는 버드나무 껍질을 일반적인 통증과 아픔의 치료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것이 아스피린의 전구물질에 대한 인류 최초의 문서화된 증거로 여겨진다. 고대 수메르, 이집트, 앗시리아 문명에서도 버드나무 껍질의 치료 효과에 대한 기록들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당시 인류가 경험적으로 이 자연물의 약리학적 효능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A.D 40년경 의사이자 약리학자였던 그리스의 디오스코리데스는 '버드나무 잎과 나무껍질을 잘게 빻아 와인과 후추와 함께 먹으면 심한 복통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고 기원전 5세기경 서구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 껍질로 만든 쓴 가루가 진통과 해열 작용을 한다고 기록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처방법은 마른 버드나무 껍질 분말을 물, 차, 그리고 약간의 맥주에 녹여서 복용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체계적인 관찰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초기 임상 경험의 사례로 평가된다. 이러한 고대의 지식은 중세 시대에 일시적으로 잊혀졌으나, 민간요법으로는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왔다.
한국사에도 이순신이 과거시험을 치를 때 무과 시험 도중 말에서 떨어지자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서 다리 상처에 싸매고 시험을 끝까지 완주한 기록이 있다. 또한 해열 효과도 있다. 현대에도 의료체계가 열악한 북한의 의료 당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하자 버드나무 잎을 하루 3번 달여서 먹으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버드나무 껍질의 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1763년 영국의 성직자 에드워드 스톤(Edward Stone, 1702-1768)이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스톤은 옥스퍼드셔 치핑 노턴 근처의 초원을 걸으며 열병을 앓고 있을 때 버드나무 껍질을 씹어보았는데, 그 극도로 쓴 맛이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이 추출되는 페루 친초나 나무 껍질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스톤은 체계적인 실험을 통해 열이 있는 50명의 환자에게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을 처방했고, 그 해열 효과를 확인한 후 1763년 런던 왕립학회에 이 결과를 보고했다. 이는 자연물의 약리 효과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임상시험 중 하나로 평가되며, 근대 약리학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화학 분석 기법의 발전과 함께 버드나무 껍질의 활성 성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828년 프랑스의 약학자 앙리 르루(Henri Leroux)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처음으로 살리신(salicin) 결정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버드나무의 치료 효과를 담당하는 화학적 실체를 최초로 분리한 것으로, 자연물 화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1838년 이탈리아의 화학자 라파엘레 피리아(Raffaele Piria)는 살리신 결정에서 더욱 강력한 효능을 가진 산성 화합물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버드나무의 라틴어명 'salix'에서 따온 '살리실산(salicylic acid)'이라고 명명했다. 살리실산의 발견은 천연물에서 순수한 화학 성분을 분리하여 의약품으로 활용하는 현대 제약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1854년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의 헤르만 콜베(Hermann Kolbe)는 살리실산을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콜베 반응을 개발했고, 1859년에는 그 화학 구조를 완전히 밝혀냈다. 콜베 반응은 페놀화나트륨을 180-200℃로 가열하고 이산화탄소를 통해 살리실산의 디나트륨염을 얻는 방법으로, 이후 R. 슈미트가 120-140℃, 가압 조건에서 개량하여 산업적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1874년부터 살리실산의 공업적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저렴한 가격의 진통해열제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살리실산은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지나치게 쓴 맛이 났고, 복용 시 구역질과 위장장애를 일으켰으며, 장기간 복용하면 소화기관이 손상되어 사용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관절염 환자처럼 많은 양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살리실산의 부작용이 치료상의 큰 걸림돌이 되었다.
아세틸살리실산의 최초 합성은 1853년 프랑스의 화학자 샤를 프레데릭 게라르트(Charles Frédéric Gerhardt)에 의해 이루어졌다. 게라르트는 다양한 무수화산을 이용한 합성 과정에서 염화아세틸(acetyl chloride)과 살리실산나트륨(sodium salicylate)을 혼합했는데,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면서 곧 굳어지는 생성물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세틸살리실산에 대한 구조적 이론이 없었고, 게라르트는 이 물질에 대해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았다.
1859년 von Glim이 살리실산과 염화아세틸을 반응시켜 동일한 물질을 얻었고, 1869년 Schroder, Prinzhorn, Kraut는 게라르트와 von Glim이 각각 합성한 물질이 아세틸살리실산으로 동일함을 확인했다. 이들은 이 생성물이 아세틸기와 페놀의 산소가 결합해 형성된 구조일 것이라고 처음으로 추측했다.
1897년 8월 10일, 독일 바이엘사에서 결정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당시 29세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 1868-1946)이 아세트산을 이용해 살리실산을 아세틸화시킴으로써 화학적으로 순수하고 안정된 형태의 아세틸살리실산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살리실산과 무수아세트산을 소량의 인산 촉매 하에서 반응시키는 에스테르화 반응을 통해 이루어졌다.
호프만의 개발 동기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아버지가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 당시 유일한 치료제인 살리실산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맛이 좋지 않고 소화불량과 같은 부작용이 심해서 아들에게 새로운 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동기가 인류 의학사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참고로 바이엘의 연구진들이 사용한 살리실산은 버드나무가 아니라 메도우스위트라는 허브에서 추출한 것을 사용했다
아스피린의 발명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왔다. 공식적으로는 펠릭스 호프만이 발명자로 알려져 있지만, 아르투르 아이헨그뤼은(Arthur Eichengrün, 1867-1949)이 자신이 실제 개발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아이헨그뤼은은 1949년 테레지엔시타트 수용소에서 바이엘사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아세틸살리실산의 최초 합성을 지시했고, 호프만은 단지 자신의 화학적 지시사항을 실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이헨그뤼은의 주장이 오랫동안 무시된 배경에는 나치 시대의 반유대주의적 역사 수정이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1941년 뮌헨 독일박물관의 명예의 전당에는 "아스피린: 발명자 드레서와 호프만"이라는 설명과 함께 아스피린 결정이 전시되었는데, 박물관 입구에는 비아리아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이 걸려있었다고 아이헨그뤼은은 기록했다. 최근의 역사 연구들은 아이헨그뤼은이 아스피린 개발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바이엘사는 1899년 3월 6일 베를린 제국특허국에 "해열 진통제" 아스피린의 특허를 등록했다. 흥미롭게도 독일에서는 특허 등록이 거부되었는데, 이는 1897년 하이덴 화학공장이 이미 아세틸살리실산을 아세틸린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898년 호프만은 미국에서 아스피린 특허 신청에 성공했고(US 644077), 1899년에는 영국에서도 특허를 획득했다(GB 189909123A).
'아스피린(Aspirin)'이라는 명칭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세틸(Acetyl)의 'A'와 조팝나무(Spiraea ulmaria)에서 얻은 조팝나무산(spiraeic acid)의 'spir'을 결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다른 설에 따르면 아세틸의 'A'에 스피라에아 울마리아(Spiraea ulmaria)의 'spir'을 덧붙여 명명했다고 한다.
아스피린은 처음에 분말 형태로 판매되었으며, 약사들이 이를 1그램 단위의 종이봉투에 담아서 판매했다. 그러나 고객들이 원래 약제가 다른 물질로 오염되었다는 항의를 제기하면서, 1914년(일부 자료에서는 1915년) 현재와 같은 알약 형태의 아스피린이 출시되었다. 이는 복용을 간편하게 하고 복용량을 표준화함으로써 아스피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초기 출시때 만병통치약을 판매를...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을 때 아스피린의 판매량은 2배로 증가했다. 이는 아스피린이 대중적 해열진통제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당시 과도한 아스피린 복용이 오히려 사망률을 높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약물 사용에서 적정 용량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도 1955년에 처음 출시되었음
아스피린이 개발된 지 70여 년이 지난 1971년, 영국의 약리학자 존 로버트 베인(John Robert Vane)이 아스피린의 작용 기전을 최초로 밝혀냈다. 베인은 아스피린이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s)의 생합성을 억제함으로써 약리학적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아라키돈산의 대사산물로서 다양한 생리학적, 생화학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인의 연구는 과환기 상태의 개에서 폐혈류에 대한 프로스타글란딘의 효과를 생물학적 검정법(bioassay)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프로스타글란딘이 혈류 조절의 핵심 요소일 뿐만 아니라, 아스피린(모르핀은 아님)의 주입이 저혈압을 감소시키고 프로스타글란딘의 분비를 억제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러한 발견으로 베인은 1982년 수네 베리스트롬(Sune Bergström), 벵트 사무엘손(Bengt Samuelsson)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아스피린의 작용 기전은 사이클로옥시게나제(cyclooxygenase, COX) 효소의 억제에 기반한다1. 아스피린은 COX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여 통증과 발열을 일으키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차단한다. 또한 혈소판 기능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어서 혈전 형성을 방지하는 항응고 작용을 나타낸다.
살리실산과 달리 아스피린은 COX 효소의 활성을 직접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경로를 통해 COX 효소의 생성 자체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다른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구별된다. 이러한 독특한 작용 기전이 아스피린의 다양한 임상적 효과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스피린의 새로운 임상적 가치가 발견되었다. 저용량 아스피린(하루 75-100mg)이 혈소판 기능을 억제하여 심장이나 뇌혈관에 생기는 동맥경화를 어느 정도 줄여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 인해 아스피린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아스피린은 500mg의 고용량 제품과 100mg의 저용량 제품으로 구분되어 판매되고 있다. 고용량은 주로 진통제로 사용되며, 저용량은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용량별 차별화는 아스피린의 다면적 약리 효과를 임상적으로 활용하는 정교한 접근법을 보여준다.
아스피린의 의학적 중요성은 1977년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아세틸살리실산은 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세 번 등재되어 있다: 경미한 통증과 발열에 대한 비마약성 진통제, 급성 편두통 발작 치료제, 그리고 뇌졸중과 심장마비 예방을 위한 혈소판 응집 억제제로서이다.
최근에는 대장암 등 일부 암의 발생을 줄여준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암 예방약으로서의 역할에도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아스피린이 단순한 해열진통제를 넘어서 만성질환 예방의 다목적 약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스피린의 개발 역사는 인류 의학 발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경험의학에서 시작된 버드나무 껍질의 활용이 19세기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살리실산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20세기 초 화학 합성 기술의 발전과 함께 부작용이 최소화된 아스피린으로 완성되었다. 이후 20세기 후반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작용 기전이 해명되면서 새로운 임상적 응용 영역이 개척되었다.
아스피린의 성공은 자연물에서 출발한 약물 개발의 전형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전통적 지식의 과학적 검증, 활성 성분의 분리와 구조 해명, 화학적 개량을 통한 부작용 최소화, 작용 기전의 분자적 이해, 그리고 새로운 임상적 응용의 발견이라는 단계적 발전 과정은 현대 신약 개발의 기본 패러다임이 되었다. 12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아스피린은 전 세계에서 하루에 1억 알 이상 소비되는 필수의약품으로서 인류 건강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는 과학적 혁신이 어떻게 인간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아스피린과 중의학 그리고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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