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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랭 Jun 26. 2020

스마트폰이 없으면 인증샷은 뭘로 남기죠?

 요즘 새로 생긴 식사 예절이 하나 있다. 핫하다는 음식점, 분위기 좋은 카페일수록 이 예절은 꼭 지켜야 한다. 바로 인증샷 찍기이다. 배가 고파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아도 음식이 나오면 짧으면 몇십 초, 길면 10분 이상 이 수행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예절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음식 자태에 경망스럽게 포크 자국을 낸다면, 상대방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 진짜! 사진 좀 찍고!


 보통 이런 볼멘소리를 하는 쪽은 젊은 여성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자들은 음식이 나와도 제법 침착하다. 당연한 순서인 듯 자연스럽게 기다려준다. 가끔 여자 친구가 수저나 포크를 먼저 들면 친절하게 이런 이야기도 해준다.


안 찍어?


혹,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런데 여자 비율이 현저히 높은 모임이라면 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이 각도가 아니다, 저 물티슈 껍데기 좀 치워봐라, 너 팔 나온다, 포크랑 나이프 좀 세팅해 봐라 사진 찍기 준비단계부터 난리법석이다. 음식의 색과 주변의 빛을 고려한 세심한 앱 필터 고르기는 필수이다. 옆에서 찍는 한 컷, 항공 샷이라 불리는 위에서 찍는 한 컷, 메뉴 각각도 찍고 모아서도 찍어야 한다. 음식을 앞에 두고 한참을 이러고 있으면 슬슬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현타가 오기 시작한다. 가장 빨리 현타를 느낀 누군가가


야, 이제 좀 먹자!


하면 '잠깐만, 잠깐만 마지막 하나만'을 외치며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우고 그 누구도 아쉬움 없이 다 찍었다 싶으면 그제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다. 밥 한번 먹기 드럽게 힘든 세상이다.


나는 SNS를 끊었고, 음식 사진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진도 잘 못 찍기 때문에 폴더폰을 사용하기 이전에도 음식 사진 찍는 일에 열을 올리는 편은 아니었다. 모두들 찍으니까 왠지 안 찍으면 손해일 것 같은 마음에 찍기도 해 봤는데 쓸데없이 핸드폰 용량만 차지하는 느낌이어서 필요하면 음식 사진을 기가 막히게 잘 찍는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나 역시도 나들이나 여행을 가면 달라졌다. 음식 사진에는 욕심 없지만 내가 간 곳, 관광지가 되었든 자연환경이 되었든 그곳에 내가 있었음을 인증하는 사진들에 목을 맸다. 남들이 보면 '아 여기 거기구나.'라고 딱 알만한 장소에 내가 떡하니 서있는 사진, 사람들이 몰라도 '와 여기 어디지?' 하는 곳에 또 떡하니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담는 걸 좋아했다. 물론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 떡하니 서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꽤 멀리서 찍었는데도 사진에서 차지하는 나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거나, 처참한 쌩얼일 경우에는 나를 대신해 그지 꼴이어도 어리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빛나는 딸아이를 세워두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의 목적은 형식상 '추억 만들기'였지만, 깊숙한 내면에는 보여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남한테든, 미래의 나한테든 말이다.


 그런데 이제 폴더폰을 쓰게 되었으니 여행 사진이고 나발이고 인증샷이라 불릴 수 있는 모든 사진들과는 이별을 고해야 했다. 물론 폴더폰에도 카메라는 있다. 500만 화소짜리, 찍으면 얼굴이 지글거리는.(참고로 100배 줌이 된다는 갤럭시 S20은 1억 화소라고 한다. 그러니까 20배 차이. 500백만 화소 카메라는 2004년 폴더폰 카메라 수준이다. 또르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삼시세끼 잘 먹는 아이가 북한 아이처럼 나오질 않나, 남편 사진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짠함이 느껴지질 않나, 도대체가 안쓰러워 찍을 수가 없었다. 셀카는 말해 뭐할까. 나는 그동안 보정 앱만 쓰다 보니 내 눈 크기가 진짜 그런 줄 알았지. 진짜 나 브이라인인 줄 알았다니까. 근데 퀭하고 누렇고 넙데데한 나의 진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카메라 앞에서 나는 조용히 폴더폰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도 컸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가볍기도 했다. 그동안의 여행이나 나들이를 생각해 보면 찍기 위해 돌아다닌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사진에 집착했었다. 패키지 해외여행을 가서도 사진 찍다가 집합 시간에 늦어 연신 사과했던 기억도 있고, 인생 사진 남기겠다고 사진만 냅다 찍고 이동하다 보니 그 지역명이나 관광지명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폴더폰 카메라로 찍느니 안 찍는게 낫다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했다. 사진 대신 주변의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고,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매번 남편은 홀로 놔두고 아이 사진 찍기, 예쁜 가게 인테리어 찍기, 셀카 찍기에 열을 올렸는데 찍을 게 없으니 남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 오늘의 날씨, 남편의 회사 사람들, 아이 얘기까지 한번 물꼬가 터지니 그동안 쌓여 있던 얘기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새삼 연애 시절, 둘이서 끊임없이 수다 떨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카메라를 놓으니 아이에게 이런 포즈 취해봐, 저런 포즈 취해봐, 여기 서봐, 엄마 봐야지, 했던 말들도 사라졌다. 너 알아서 놀아라 들판에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놀게 했다. 처음엔 아이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엄마, 사진 안 찍어?" , "나 이거 하는 거 동영상 좀 찍어줘." 하며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 카메라 없어."라고 말하고 폴더폰을 보여줬는데 자기가 보기에도 저 폰으로는 도저히 사진을 못 찍을 것 같은지 이내 포기하고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습관적으로 어느 장소에 가면 사진이 가장 잘 나올 수 있는 스팟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그냥 어슬렁어슬렁 걷고, 예쁜 자리가 아닌 가장 편안한 자리에 앉아 그 시간들을 충분히 즐겼다. 다음 사진 찍을 곳, 인증샷 남겨야 할 음식에 대한 압박도 없어졌다. 그저 내가 쉬고 싶은 대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온전히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만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오랜만에 겪어보는 제대로 된 쉼이었다.


 인증샷의 굴레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 스마트 폰 속 내가 찍은 사진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내가 이곳에 있었음을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잔뜩 묻어나는 사진들. 그중 가장 웃겼던 것은 신혼 여행지였던 하와이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처음 가는 휴양지라고, 세상 가장 행복해야 하는 신혼여행이라고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갔는지 모른다. 어쩜 우리나라에서 평소에 입으면 미친년 소리 듣는 옷들만 들고 갔는지, 평생 입어본 적 없는 가슴이 확 파진 끈나시 원피스, 관광객임을 증명하는 꽃 패턴의 향연, 키도 작으면서 질질 끌고 다니던 맥시 드레스를 입고 한껏 예쁜 척한 과거의 나여. 왜 그랬니 정말. 하와이 뽕에 제대로 취해 쇼핑몰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잔뜩 사서 이고 지고 찍은 사진들과 와이키키 해변에 발만 담가 놓고 물놀이하는 척한 사진도 웃겼다. 그중 최고봉은 썩은 표정을 차마 다 숨기지 못한 남편과 그 옆에 행복한 척 가증스럽게 웃고 있는 나의 사진이었다. 


 급하게 한 다이어트, 결혼식 날 딱 겹친 대자연의 날을 피하기 위해 먹은 약 때문에 나는 신혼여행기간 동안 '시방 위험한 짐승', 딱 그 상태였다. 기분은 롤러코스터 뺨치게 오르락내리락거렸고, 조그만 일에도 감정이 터져 짜증을 부리고 또 밤에는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울며 사과했다. 남편은 어느 박자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었는데, 나는  와중에도 SNS 올리겠다고 사진만은 입꼬리를 올리고 남편과  붙어 행복한 척을 하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조금 전까지 핏대 세우고 짜증 짜증을 부리던 여자가 사진 찍어야 한다며 얼굴 부대끼며 행복한 척 하니, 우리 남편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결혼식까지 올려 무를 수는 없고 이 여자가 실은 이런 가증스러운 여자였던가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탄생한 썩은 표정의 남편과 가증스러운 나의 미소 사진은 꽤 오래, 나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웃기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지울까 생각도 해봤지만 덜렁이 두 명이 비싼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와이에서 잃어버리고 온 바람에 남은 신혼여행 사진이라곤 이 몇 장 밖에 없어서 지우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웃픈 나의 인증샷들이었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또 무엇을 인증받기 위해 끊임없이 찍는 걸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냥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간단한데 자꾸 누군가에게 그 행복을 인정받으려 돈을 쓰고 노력을 한다. 그게 다가 아닌 줄 알면서도 남들이 찍은 사진 한 장에 내 삶이 초라해지기도 하고 나 역시도 사진 한 장을 통해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찰나의 보여지는 행복함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기 보단 내가 더 오래 행복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드는 게 훨씬 좋다는 것을. 그곳의 공기, 소리, 냄새를 기억하며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더 여유롭게 그것들을 즐기는 것이 훨씬 내가 행복한 일임을 말이다.


다신 볼수 없는 풍경을 봤는가? 내 생에 최고로 행복한 순간임을 확신하는가? 스마트폰으로  세장의 사진을 남기고  순간을 온전히 즐겨보자. 온몸을 카메라로, 녹음기로 만들어  순간을 온몸에 새겨 보자. 분명   순간을 오래, 그리고  선명히 기억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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