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소녀’와 ‘소년’
원우에게 언젠가 한 번은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고 고른 곳인데, 생각보다 별로네. 작업실로 쓰기에도 너무..., 좁아.”
“......”
“도시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냐고.
“잘 지낸 것 같구나. 도피처를 잘 골랐어. 기자들도 여기라면 절대로 못 찾겠네.”
아직 어리기만 했던 그때의 넌 도대체 어떻게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떠나보낼 수 있었냐고. 아니, 그 보다.
“오랜만에 본 건데, 반가운 얼굴은 아니구나. 해리 말로는 걱정했다고 하던데.”
“걱정..., 했어. 갑자기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으니까.”
그 부모라는 존재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느냐고. 자신처럼 이렇게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고, 서글프지만 지울 수도 없는 존재였느냐고, 그렇게 묻고 싶었다. 물론 원우에게 부모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그런 질문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온 제인을 마냥 반갑게 맞이할 수 없는 자신을 알게 된 순간,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끌려가지 않으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재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어른이 된다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걱정이 현실이 될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어디서 지냈던 거야? 같이 갔던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지금도 자기 요트를 타고 지중해 어딘가에 있겠지. 알잖아, 통신 상태도 좋지 않았어. 무엇보다 전시회를 앞두고 그런 사건이 터졌는데, 그럴듯한 핑계 정도는 있어야지. 도피해서 연락이 닿지 않는 것보다 실종 정도면 괜찮잖아. 안 그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제인의 최근 애인은 결국 헤어진 모양이다.
제인은 그림을 가지고 부자들과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다. 자세히는 몰라도 그 사업이라는 것이 완벽하게 합법적이며 우아하기만 한 사업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주 열리는 파티와 경매 그리고 얼마 후면 다시 되돌아오는 작품들까지.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이제 재희는 마냥 어리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작품이 많이..., 바뀌었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재희가 모를 수 없는 사실은, 제인의 작품이 진짜 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희가 구석에 세워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림을 한참 바라보던 제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작품을 감상하는 듯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림 속에는 지는 노을이 떠오르는 색감과 함께 아주 작게 사람 그림자가 나란히 있었다.
“뭐, 괜찮아. 잠적했던 동안 심경의 변화가 작품 세계에 변화로 이어졌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네.”
“.......”
“완성은 아직이구나. 그렇지? 사인은 그럼 그때 할게.”
늘 완성된 그림의 아래에 사인을 하는 것은 제인이었다. 이니셜 ‘J’를 쓰는 것으로 제인의 작품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정확하게는 제인의 작품인 ‘척’하는 재희의 작품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자는 거였어? 난 작업만 여기서 하는 줄 알았는데. 호텔이 더 편하지 않아? 한국도 좋은 호텔이 많을 텐데.”
“여기가 편해.”
“그래, 네가 편한 대로 해. 그런데 난 여기서는 못 지내겠어. 침대도 불편하고. 일단 너도 불편해하는 것 같으니까.”
재희의 기억에는 제인과 한 번도 같은 침대에서 자거나, 같은 방에서 잔 적이 없다. 어릴 적 다정한 얼굴로 머리를 빗어주거나 책을 읽어주었던 기억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재희가 요청할 때뿐이었다. 재희가 가끔 그런 요청을 하면 할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거실의 소파나 주방의 테이블에서 함께했던 기억이 전부다.
제인은 떠나려는 듯 작은 가방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걸어두었던 머플러를 챙겼다. 재희는 가만히 그런 제인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거, 머플러....”
“아, 여기 있던데, 포장도 곱게 되어있고 말이야. 내 거 아니었어?”
“........”
“아니었나 보구나. 이런, 어쩌지. 그럼 새로 구입하도록 해. 생각보다 밖이 너무 추워서 나도 지금은 필요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며 머플러를 두르고 나갈 준비를 하는 제인을 보던 재희는 낮은 한 숨을 삼켰다. 그리고 곧 자신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깊은 감정을 결국 깨닫게 되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놓는다.
“해리에게 내 새 번호는 알려뒀어. 연락할 일 있으면 그쪽으로 해.”
“언제까지..., 있을 거야? 돌아가야 하지 않아?”
“온 김에 혜숙도 만나야지. 현우 씨랑. 너무 오래간만이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에 너도 신세 진 것 같으니까. 그 옷도 혜숙이 만들어준 거니?”
“...., 응.”
“그래, 여전하네.”
“.......”
“갈게. 너도 불편하면 언제든 호텔로 오렴.”
재희의 재킷을 유심히 보던 제인은 한 톤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곧 현관문을 열고 나가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제인이 나간 후, 재희는 자신의 방에 있는 그림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노을의 색 앞으로 길고 작게 그려진 네 개의 그림자를 보며 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라도 자신의 마음을 엿본 것은 아닐까. 제인이 돌아왔을 때 기뻐하지도, 반가워하지도 않은 자신의 표정에서 깊은 마음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사실 자신은 그녀가 정말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동안 묻어두었던 수많은 사실들이 물음표를 가장해서 재희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사실은 그녀의 존재가 재희의 옆에 없었던 몇 달 정도의 시간은 걱정보다 편안함이 앞섰다. 제인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 순간, 멀쩡한 그녀를 보고 나서야 재희는 자신이 그녀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순간이 오기를 조금은 바라고 있었던 자신을....
그런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자, 재희는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결국 깨달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원우야....”
난, 정말 나쁜 어른이 될 건가 봐.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했었어.
이제는 스스로 속일 수도 없게 되어버렸어. 그런 말도 안 되는 몹쓸 기대를 하면서 어떻게 내가 멀쩡하게 너랑 함께 웃고 숨 쉬며 네 옆에서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여기 이곳에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내가, 고작 이런 내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다가 결국 재희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구역질이 났다. 스스로를 경멸하고 또 경멸했다. 결국은 그토록 싫어하던 그녀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원우는 이런 자신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까? 혜숙은? 현우는?
한참을 욕실에 주저앉아있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한 편을 차지한 그림 속에는 자신에게 등 돌리는 소중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재희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결국 휩쓸리듯 끌려 들어가 버렸다. 피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이 재희를 몽땅 집어삼켰다. 천천히 모든 것이 가라앉고 있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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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사라지는 재희의 뒷모습을 보지 말걸 그랬다. 갑자기 따뜻했던 집안에 바람이 부는 듯, 원우는 온몸을 감싸는 추위를 느꼈다.
“그냥 같이 갈걸.”
다시는 오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같은 시간도 두 번 다시없을지도 모른다. 재희가 다시 나타난 후 아슬아슬하기만 뭔가가 항상 존재했다. 재희를 감싸고 있던 위태로움, 그것의 실체를 재희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만날 때,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할 때면 편안해 보이는 것을 다행이라 여길뿐이었다.
결국 편의점에 갔다. 그리고 재희가 말했던 바나나우유를 사서 재희의 걸음을 뒤쫓아 오피스텔로 향했다. 건물 앞으로 도착했을 때, 거친 바람이 불었다. 옷깃을 여미며,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로비에서 나오던 여성과 부딪칠 뻔했다. 원우가 얼른 피하자, 살짝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목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선물하지 못한 스카프는 이미 누군가의 목에 걸려 있었다.
원우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머물다가, 천천히 비상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주의 깊게 내딛으며 한층씩 시간을 죽여 나갔다.
그렇게 겨우 재희가 있는 그 시간의 층에 다다랐을 때, 원우는 복도 끝까지 닿지 않는 누군가의 슬픔을 들어버린 기분이었다.
“나야, 줄게 있어서.”
재희의 오피스텔 앞에서 벨을 누르자,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스피커가 열리는 달칵 소리만 들렸다.
“문 열어봐.”
“그냥 돌아가....”
역시. 한참 후에 돌아온 대답 끝에는 슬픈 재희가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원우는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바나나 우유 사 왔어. 문 열어봐. 이거만 주고 갈게.”
“... 미안한데... 그냥, 가줘.”
“열어줘.”
“........”
“윤재희, 듣고 있어?”
“제발 좀....”
“재희야.”
“너 정말....”
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재희가 보였을 때, 원우는 바나나 우유만 주고 돌아갈 거라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행복하고 싶다,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던 소녀는 지금 울고 있었다. 모든 시공간을 끌어당겨 버릴 것 같았던 저 큰 우주는 지금 가라앉고 있는 조그마한 조각배 같았다. 거친 풍랑이 지나고 난 후, 금방이라도 가라앉아버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유약하기 이를 데 없는 위태로운..., 소녀.
“들어가도 돼?”
“... 싫어. 들어오지 마.”
어떻게든 자신을 들이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문을 부여잡고 있는 위태로운 소녀를 원우는 보았다. 천천히 그 손을 잡고 다시 천천히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였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재희의 어깨를 잡았을 때, 원우는 이미 커져버린 그 슬픔의 무게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도 싫어.”
“가, 제발..., 그냥 가 줘.”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는 재희에게 원우는 조금 더 다가섰다.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두고 그런 소녀의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았다.
“어떻게 그냥 가라는 거야.”
“.......”
“울지 말던가.”
이대로 가라앉지 말아 줘.
그 끝없는 슬픔에 너를 던지지 말아 줘.
말할 수 없는 그 고통의 바다에 너를 내몰지 말아 줘.
부탁이야, 재희야.
“이제 말해 줘. 네가 슬픈 이유, 아픈 이유, 한국으로 온 이유.... 뭐든, 뭐든 말해줘.”
그 순간,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는 재희의 손이 애처로웠다. 겨우 자신의 부탁을 알아들은 듯, 고통과 슬픔의 바다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쓰는 소녀를 원우는 더 조심스럽게, 꼭 끌어안아주었다.
“말하기 싫으면, 지금은 그냥 들어줘.”
깊은 바다에서 헤엄쳐 나온 듯 가쁜 숨을 내쉬는 재희를 조심스럽게 다독이며, 원우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 기억은 잘 안 나.”
사고 직후에 상담도 했지만, 그때의 몇 장면들만 기억이 날 뿐이야. 그런데 아무도 그 사고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더라.
난 사실 그때의 일은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말이지. 엄마랑 아빠가 심하게 싸우고 있었던 그 날을 말이야.
나를 태우고 어딘가로 가면서도 엄마는 아빠랑 심하게 다투고 있었어. 운전대를 잡았던 아빠와 조수석에 있던 엄마가 서로에게 던지던 욕설을 아직도 기억해. 아빠는 그때 실직 중이었고, 엄마는..., 엄마는 나를 낳은 후에 우울증이 조금 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그 때 이모가 자주 와서..., 나를 돌봐줬거든.
우리 가족은 행복하지 않았어. 모르겠어. 그때 만약 사고가 나지 않았고,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잘 견뎠다면, 그랬다면 뭔가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었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사고 이후 이모집으로 입양이 되고, 그래서 예전보다 평온한 생활을 하게 된 편이 나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함께 이 모든 순간을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그래서 네가 아빠도 엄마도 빼앗겠다는 그 말을 했을 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어.
마냥 행복하지 않도록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 것 같기도 했고. 이상하지? 맞아, 참 모순된 감정이었어.
행복하고 싶지만, 마냥 행복할 수도 없는 그 위태로움. 어릴 때는 그래서 널 많이 미워하고 싶었어.
빼앗기고 싶지 않은 행복을 깨닫게 하는 네가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정말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어린애였으니까. 너도 고작 어린아이였을 뿐인데....
“그래서 널 미워해야 했을지도 몰라. 실제로 난 속이 깊지 않은 아이였으니.”
“원우....”
이제 겨우 깊은 슬픔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온 주제에 눈 앞에 있는 자신을 걱정하는 소녀가 보였다. 간이침대에 걸터앉은 재희 앞으로 스툴을 당겨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작게 속삭이듯 말하던 원우는 눈물자국이 남은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난 아직도 가끔 어린아이가 되고 싶을 때가 있어.”
너만 생각하면 그래.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의 저편, 어릴 때의 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너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굴었을 텐데.
“우린 곧 어른이 되겠지.”
“.......”
“난 계속 슬픔 속의 어린아이로 남아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
“행복해져.”
..., 내 옆에 있어.
행복해지라는 그 말 끝에..., 원우는 천천히 눈물자국을 닦아주며 자신의 마지막 마음을 숨겼다.
창밖은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둡기만 한데, 구석에 놓여있는 재희의 그림 속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원우는 천천히 그 속을 함께 걷는 네 명의 그림자를 보며, 재희의 행복에 자신이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 행복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쉽게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노을이 지는 그림을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동이틀 때쯤, 그렇게 서로의 손을 소중한 구명줄처럼 잡은 채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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