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장미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면 경리단 길 입구에는 어김없이 트럭이 하나 선다. 그 트럭에는 로즈메리, 바질, 타임, 애플민트 같은 허브 화분이 가득하다. 퇴근길이나 찬거리를 사 오는 길, 그 트럭을 그냥 지나치기는 나에게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 트럭에서 산 로즈메리 화분이 금세 죽어버린 것이다. 새로 사고 또 죽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후 양재동 꽃시장까지 가게 된 것이고 말이다.
양재동 꽃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싱싱한 로즈메리 화분을 하나 사고 여유롭게 시장 구경을 했다. 파릇파릇 알록달록한 갖가지 화분이 거기에 다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장미 화분이었다. 사계절 피는 장미라 했다. 절대 지지 않는 장미라는 뜻은 아닐지라도, 며칠 내로 시드는 것이 아니라, 화분에서 오래오래 피어있을 거란 뜻이겠지. 한 단 , 한 송이씩 사는 장미가 아니라, 뿌리째 살아있는 장미여서, 보고 있자니, 정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화분을 사서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그 시간 햇볕이 제일 잘 드는 곳, 주방 창가로 내놓았다.
일주일에 3번 정도 종이컵 한 컵 정도의 물만 주면 된다고 꽃집 언니가 친절히 말해주어서,
그래, 너무 많이 주지도, 너무 조금 주지도 말자. 사랑. 아니, 물. 하고 다짐했다.
그동안 죽인 로즈메리 화분들은 물을 너무 팡팡 주거나, 줄기를 잘라주지도 않고 그냥 방치하거나,
어쩔 땐 아예 잊어버려서 그랬던 것 같다. 꽃집 언니와의 상담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이거 왠지 그동안 죽인 연애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한 남자는 나한테 처음 준 선물이, 대단하게 준비했다고 준 선물이 화분이었다. 무슨 이런 까다롭고 귀찮은 선물을 주나. 물도 줘야 하고, 햇빛도 쬐어 줘야 하고, 시들진 않았나, 잘 살아있나 계속 신경 써야 하는 화분을. 사실, 반갑지도 좋지도, 물론 감동스럽지도 않았다.
난 결국 그 화초를 죽여버렸고, 볼 때마다 내내 죄책감이 들었다. 그것 봐, 난 결국 안 되는 거잖아라는 이상한 심술이 났고, 내게는 없는 꼼꼼함과 꾸준함을 그 마른 화분이 자꾸 꾸짖는 것 같았다.
그런데, 꽃집 언니 말이, 꽃이 져도 다시 피고 그러는 거라고. 물 잘 챙겨주고 햇볕 쬐고, 잊지 않으면 4계절 내내 지고 피고 그러는 거라고. 음악도 들려주고 좋은 말도 해주고 예뻐해 주면 더 잘 자란다고.
언니의 그 말을 듣는데, 와락 눈물이 날뻔했다.
난 화분형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물도 주고, 햇빛이 어디가 잘 드는지 요리저리 살피는 마음이 드는 게 재밌다. 어쩔 땐 정말 말도 붙여보고, 좋아하는 노래도 추천을 해주니 홀로 있는 방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