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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Mar 28. 2016

자전거 탄 소년들

이런 이야기 하나쯤 존재하는 세상

 동네 카페에 갔다.

 이 카페는 동네 한 가운데 있어서, 동네 강아지, 동네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총각 아이들이  왔다가는 곳이다.

그 날은 날씨 좋은 주말이라,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아서 괜히 심술이 났다. 지친 몸과 마음을 하고 찾아간 그 동네 카페에도 역시 자리가 없어 심술이 나려는 차, 카페 앞 길거리, 주인장이 가끔 담배 피우느라 앉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겨우 앉아서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커피 위에 하트는 정성껏 얹되, 커피 잔은 투박하게 내려놓는 주인장의 스타일이 좋다. 역시나 투박하게 가져다준 시나몬가루 한 통에서는 그만, 피식하고 웃음이 난다.


 오늘따라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다. 카페 앞 철물점에는 툭하면 짖어대는 강아지가 두 마리 있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한국어가 유창한 아이들이 과일가게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아이들은 과일가게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놀고 있었다.

"뭐? 너 중국사람이었어?"

라고 흑인 아이가 배신이라도 당한 듯이 한국 사람인 줄 알았던 중국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더니 모두 와르르르 웃는다. 모두 신이 나서 큰소리로 장난치고 웃으면서 자전거로 왔다 갔다 한다. 모두 많이 다른 외모의 아이들이 같은 말을 하면서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과일 가게 아저씨가 큰소리로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 말고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 두리번 거렸더니, 아까 그 자전거 탄 아이들에게 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꺼지라고, 다신 이 앞에 오지 말라고.

 꽤 조용하다가 갑자기 쏟아진 욕 세례라, 그리고 아이 중 몇몇은 씩씩 거리며 같이 욕을 하고 있는 터라, 아이들이 무슨 잘 못을 한 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들썩들썩했다. 어정쩡하게 앉을까 설까 하는 자세로 그쪽을 바라보는데, 아이들은 내가 있는 방향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오고 있어서 그 과일가게 아저씨는 더욱 본격적으로 나에게 욕을 하는  모양새가 된다. 아이들은 억울한 모양인지 욕을 중얼거리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전 다시 본 다르덴 형제의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이 떠올랐다.

 영화 속 자전거 탄 소년인 시릴은 마음이 넓고 사랑이 많은 아이다. 나 같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아빠를 그렇게 자꾸 믿고, 용서하고, 찾아간다.  어쩌다 부딪힌 사만다 아줌마를 갈비뼈가 부서져라 꼭 껴안고난 후, 시릴은 그제야 당연한 관심과 친절을 받기 시작된다.


"주말에 아줌마네 가도 돼요?"

"지금은 바쁘니까... 다음에 전화할게"

"말은 그렇게 해도, 전화 안 할 거잖아요."

"아니야 할 거야."

이 영화는, 말도 그렇게 하고, 전화도 진짜로 했을 때 일어난 사랑 이야기이다.




 그 과일가게 앞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르덴 형제라면 무슨 일인지, 왜 그 아이들이 억울해했는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는지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제대로 이야기해줄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자전거 탄 소년'같은 이야기가 이 세상에 꼭 하나쯤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기댈 장소는 고사하고 기댈 어깨 하나 없는 내가, 하릴없이 자꾸 나 자신을 할퀴고만 있을 때, 밤새 내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사람. 내가 내 몸에 난 가시로 찌르고 쑤셔도 다시 날 안아주려는 사람. 그런 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그런 사람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억울해서, 길거리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화가나고 서러울지라도 집에 돌아가면 얼굴이라도 묻고서 위안 받을 따뜻한 가슴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 하나쯤 존재하는 세상.

그것이 내가 영화를 찾아보고, 책을 뒤져 읽는 이유다.

오늘도 글을 지웠다가 결국 다시 쓰는 이유다.


오늘의 커피는 뒷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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