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경제성장률이라는 지표를 신성시하는 것은 진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률이 높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경제성장률만 보고 경제가 좋다 안좋다를 평가하는 경향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 나아진 편이지만 가까운 과거에만 해도 경제성장률만 중시하는 분위기가 주류여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였다. 경제성장률이 전년도에 비하여 10% 성장해도 그 혜택 대부분을 소수가 독점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가 좋아 살기 좋아졌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으냐 안 좋으냐의 평가는 경제성장률과 그 분배 수준을 함께 평가해야만 정확한 평가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주된 잣대로 경제를 평가했고 언론도 이에 편승하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경제 관련 평가자료를 발표 시 경제성장률과 함께 분배수준을 같은 비중으로 발표해야 한다. 언론도 변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자. 그동안 정부가 경제성과 평가 시 소득분배 현황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소시민인 나도 아는데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전문가 집단이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정부가 소득분배에 대하여 등한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소시민 편이 아닌 재벌 등을 포함한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하여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펼치기 때문이다. 이를 정경유착이라고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도 서민의 편이 아닌, 기득권의 입장에서 여론을 형성시키고 있다. 정부와 기득권, 그리고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일반 소시민들을 현혹시키고 희생을 강요하고 착각에 빠지게 하였던 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역사인 것이다(사실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흐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는 기득권층과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왔던 경제성장률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단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경제성장률을 계산 방식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경제성장=△민간소비+△기업투자+△정부지출+△순수출(△은 증감분을 의미한다)
경제성장률을 올리려면 공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민간소비, 기업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을 증가시키면 된다. 보통 정부에서 좋아하는 경제성장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기업은 투자를 늘려서(기업투자 증가) 생산을 늘리고, 민간은 그 생산품을 구매하고(민간소비 증가), 그 생산물이 국제경쟁력이 높아 해외에 수출되어 수입이 수출보다 크게 되는 경우(순수출 증가)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 기업투자의 증가를 유도하고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게 되어 민간소비를 촉진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는 조세수입이 늘어나 재정건전성이 향상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경제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경제성장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경제성장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좋다면 누구에게 얼마나 좋고 어떤 점이 좋은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률이 증가했다는 것은 한 경제권 내의 총생산이 전년도보다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생산을 주로 담당하는 기업들은 어떤 부문에서 총생산을 어떻게 늘릴까 생각해 보자. 기업들이 생산하는 품목을 크게 구분하면 ‘생활유지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이하 필수재)’와 그렇지 않은 재화와 서비스(이하 기호품)로 나눌 수 있다. 필수재는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 수요는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하루에 세끼를 먹으면 충분한데 네 끼를 먹겠다고 식료품을 더 구매하지는 않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필수재의 생산을 통하여 총생산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기업들이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기호품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LTE핸드폰을 단종하고 대신 좀 더 가격이 비싼 고사양의 5G 핸드폰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또는 기존에 없던 신제품인 갤럭시 기어/와치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고, 또는 3G 통신서비스를 LTE 통신서비스로 업그레이드시켜 가격을 올려서 받는 것이 기업들이 생산을 전년도보다 늘릴 수 있는 방법들이다. 이런 사례처럼 기업들은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필수재에 주력하기보다는 기호품이나 새로운 산업에 집중해야만 한다.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증대를 통해서는 어렵고, 삶을 조금 편리하게 만들고 조금 멋있게 만들기는 하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를 늘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성장은 대부분의 국민들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잘 팔렸다고 해서, 갤럭시7을 쓰다가 갤럭시8을 쓴다고 해서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더 살기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정도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이 소득이 3% 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기업들이 새로운 기호품을 출시해서 성공적으로 판매했고 이를 통해서 기업의 이익이 3% 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면 고용이 늘게 되어 국민들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고용증대 효과는 그리 크지 않고, 새로운 산업이나 상품으로 인하여 소멸되는 산업이 있기에 전체적인 고용은 크게 차이가 없다. 따라서 경제성장으로 생긴 과실의 대부분은 자본&기업가들이 차지한다. 복잡한 통계자료를 몰라도 이러한 사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약 35,000달러라면, 4인가족인 가계는 연 소득이 1억 4천만 원 정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 집의 총소득이 7천만원이라면 나머지 7천만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머지 7천만원은 소수의 자본기업가들이 가져갔다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경제성장률의 의미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 시민의 생활에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조금 편리하고 조금 멋을 부릴 수 있는 신상품을 기업이 개발 생산하여 시장에 판매한 결과를 전년대비 증가율로 표시한 지표.'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상승했다고 하면 우리는 ‘기호품을 생산하는 기업(esp. 재벌기업)들이 전년도보다 돈을 많이 벌었구나’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의 생활이 좀 더 나아졌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경제성장률이 줄게 되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마도 언론에서는 난리가 날 것이다.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과연 경제성장률이 감소하면 나라가 망가지고 국민들이 노숙자로 나앉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의 이익이 감소하는 수준일뿐이다. 일부 유럽 선진국에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에게는 마이너스 성장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2~3%의 성장을 하는 경우가 그들에게 놀랄 일이다.
경제성장률이 감소한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기업들의 생산 판매가 전년도보다 감소했다는 것이고 이는 기업의 이익을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기업들의 투자활동은 위축될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비용을 줄이고 고용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고, 불황시기를 견디어내지 못하면 파산에 이르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큰일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하는 주된 주장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실업률이 높아져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여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정책을 통하여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을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정부가 세금으로 가지고 기업이 생산하였으나 판매를 못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대신 구매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을 걱정하여 경기부양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 자신들이 파산당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여 경기부양에 나서면 당연히 경제성장률은 상승한다. 앞의 경제성장률 공식을 보면 정부지출이 늘면 그만큼 경제성장률이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경제성장률이 국민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 돈은 기업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데 파산을 막아주는데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자본기업가들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경기부양책을 써서 정상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경기부양책에 쓸 돈이 있으면 기업을 파산을 막는데 사용하면 안되고, 나중에 기업의 파산으로 실업자가 생겨나면 그들에게 공적 부조금 형식으로 소득을 보장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국민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기부양책을 쓰면 그로 인한 대부분의 이익이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공적부조에 사용하면 다수의 국민들에게 효과가 골고루 돌아가기 때문이다.
기업이 파산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경기를 이겨나갈 수 없는 기업이 있다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문을 닫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업을 한계기업이라고 한다. 이런 한계기업들의 생존을 위하여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은 낭비이고 정의롭지도 않다. 물론 국가기간사업이나 국방, 에너지 식량안보 등에 관련된 기업은 별도의 고려사항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야만 우리의 삶이 좋아진다고 주장하는 정치세력과 경제학자들, 그리고 기업단체들을 우리는 경계를 해야 한다. 경제의 규모가 성장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경제성장률이 좋아지면 그 혜택을 모든 국민들이 볼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을 올려야 한다는 미명하에 국민의 세금을 일부 기업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거나 기업의 파산을 모면하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무수히 보아왔다. 그런 세금 도둑들을 우리가 막지 못하면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과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는 없다.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