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박살 나도 '주주 가치'는 실현되어야 하니까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코미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저질스러운 자세

by 월하문

1. 프롤로그: 99.78%의 확률과 0%의 지능


에베레스트산만 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6개월 뒤면 인류는 전멸이죠. 천문학자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민디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사실을 알리려 백악관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중간선거 지지율'입니다.

이 영화는 인류 멸망이라는 거대 서사를 '시청률 점유율'과 '기업 시가총액'의 관점으로 치환해버립니다. 환경 위기를 대하는 현대 사회의 태도를 이보다 더 투건방지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2.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짤(GIF)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파생 실재, 즉 '시뮬라르크(Simulacre)'를 말했습니다. <돈 룩 업> 속 세상은 바로 이 시뮬라르크가 실재를 잡아먹은 상태입니다.

지구가 쪼개지느냐 마느냐 하는 순간에 대중은 민디 교수가 '섹시한 과학자'인지에 열광하고, 케이트가 방송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을 '짤'로 만들어 조롱합니다. 혜성이라는 '물리적 실재'는 사라지고, SNS상의 '디지털 이미지'만 남는 거죠. 환경 위기 또한 마찬가지 아닙니다? 북극곰의 눈물은 인스타그램 '좋아요'를 위한 배경화면으로 소비될 뿐, 우리의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실질적인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3. 노동의 종말: 혜성조차 '자원'으로 보는 자본의 광기


자, 여기서 재무적 관점을 대입해 봅시다. 혜성을 파괴해 인류를 구할 기회가 왔을 때, IT 재벌 피터 이셔웰은 이를 중단시킵니다. 왜냐고요? 혜성에 140조 달러 가치의 희토류가 묻혀 있다는 '자산 평가'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노동은 의미를 잃습니다. 혜성을 쪼개서 자원을 채취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감언이설이 횡행합니다. 이것은 지독한 신자유주의적 광기입니다. 환경 파괴조차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해석하는 자본의 논리는, 결국 인류라는 노동력 자체를 소멸시키는 결말로 치닫습니다. 혜성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수익성 분석'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인류가 도달한 지적 파산 상태를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의 정점입니다.


4. 심리적 방어기제: '돈 룩 업'이라는 집단적 회피


심리학적으로 볼 때, 대중이 "위쪽을 보지 마(Don't Look Up)"라고 외치는 것은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 해결 방식입니다. 뻔히 눈앞에 혜성이 보이는데도, 그것을 인정하면 삶의 기반이 무너지니까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죠.

낙관주의는 때로 독이 됩니다. "다 잘 될 거야", "기술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은 파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됩니다. 영화 속 대중이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집착(아이돌의 스캔들 등에 열광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할 일이 없어진 인류가 고통스러운 진실을 잊기 위해 선택한 '마약 같은 문화 소비'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5. 에필로그: 마지막 만찬의 메뉴는 '애플파이'


결국 혜성이 충돌하기 직전, 주인공들은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합니다. 거창한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우리는 정말 모든 걸 가졌었어, 그렇지?"라는 소박한 회한을 나눕니다.

반면, 냉동 수면을 통해 탈출한 권력자들은 수만 년 뒤 외계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기괴한 생물에게 잡아먹힙니다. 인과응보라기엔 너무나 허무하고, 냉소적이라기엔 너무나 통쾌한 결말이죠.


[오늘의 인사이트]


환경 위기는 과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철학적 가치'의 문제입니다. 140조 달러의 희토류가 박힌 혜성을 기다리다가 내 앞마당에 떨어지는 운석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고개를 들어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물론, 주식 차트를 보느라 고개를 들 시간이 없으시겠지만... 적어도 혜성이 충돌할 때 '매수' 버튼을 누르는 실수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때의 화폐 단위는 '먼지'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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