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며느리인 사람도 시어머니인 사람도 없다
보통은 아이가 우리 나이로 8살이 되기 전에 취학통지서가 가정으로 전달되고 그해 12월이나 이듬해 1월이면 예비소집을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학교라는 곳에 처음 입문하게 되는 아이와 학부모를 위한 간단한 소개가 마련되는 자리인데 대부분 형식적인 행사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첫 아이 예비소집에 참여하는 부모들은 사뭇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내 아이가 벌써 이렇게 자라 학교에 들어가는구나, 나도 학부모가 되는구나’ 하는 감정은 묘하고도 뭉클한 것인데 첫 아이라면 더욱 깊고 강하게 와닿는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바라는 부모들의 바람은 그저 소소하다. 아직 아기인 것만 같은 우리 아이가 규칙과 제약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선생님의 눈에 들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고 아니라면 적어도 미움은 받지 않는 아이로 지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어떨까?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도, 아들을 장가보내는 부모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독립된 존재로 부모의 품을 떠나가는 과정에서 내 아이가 기왕이면 시댁에서 처가에서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잘 지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워 결혼시킨 자녀를 내 새끼만큼은 아니더라도 상처 주지 말고 아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늘 노심초사하는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예비 초등, 예비 중등, 예비 고등 심지어 예비 직장인을 위한 가이드나 미리 체험을 해 보는 프로그램들은 많은데 예비 며느리, 예비 사위, 예비 시부모님, 예비 처부모님을 위한 장치는 없다. 예비 신혼부부를 위한 피부과 코스별 치료나 종교 단체에서 이뤄지는 부부교육까지는 존재하는데 그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나 잘 알고 있어서 굳이 따로 교육을 받거나 알아 둘 주의사항이 없기 때문에 그런 과정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괜스레 어쭙잖은 지식을 듣고 서로에게 실수하게 될까 봐 만들어지지 않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참 많이 보고 듣고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는데 마치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모성을 강요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말로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모두가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며느리 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는 없고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살아온 여자도 없다. 그런데 마치 며느리로 맞이했으니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시댁에 누가 되지 않게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시어머니라면 이어온 가풍이나 전통을 잘 지켜 다음 세대인 며느리에게 정확하고 솜씨 있게 전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법 아닌 법이 되어 서로를 옭아매는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생채기를 내고 흉터가 남아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결혼을 결정한 예비부부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상견례를 한 후 다음으로 예단이나 예물이나 기타의 과정을 결정할 때 반드시 ‘예비교육’을 함께 수강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처음이니까 다 같이 교육과정에 수강신청을 하고 일정 기준을 통과할 때 수료증을 주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이를 많이 낳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 세대라 할지라도 형제가 둘 혹은 셋이다. 며느리를 맞이하면 시어머니 교육을 수강하고 사위를 맞이한다면 장모님 교육을 수강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자녀를 출가시킬 때마다 각각의 위치에 맞는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다.
예비 며느리 교육을 수강한 사람이 훗날 예비 시어머니나 예비 장모님 교육을 수강하게 되면 과거에 자신이 들었던 수강 내역을 연동해서 차이점과 변화한 부분까지 가르쳐 주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 식, 주가 아니라 서로 얼마나 준비되었는가 하는 마음가짐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허례허식에 빠져 예단 문제로 갈등하고 집 평수에 집착하고 예물에 집중하면서 정작 중요한 예비 며느리나 예비 시어머니로서의 마음 준비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작을 맞이한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고 교육받은 바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점점 차이를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거부감을 느끼다 결국 갈등이 폭발한다. 그러면서 함께 내뱉는 말은 ‘이럴 줄 몰랐어!! 이런 게 결혼 생활이라면 다시 생각해 봤을 거야!!’이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8살이야 학교 가면 이런 과정이 있고 실내화는 어디에서 갈아 신고 급식실은 줄 서서 차례대로 가야 하고 알림장은 어찌 적는 것이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결정권이 스스로에게 있는 성인에게 일일이 쫓아다니며 너 앞으로 결혼해서 이런 이런 과정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과 네가 미리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 이러하다고 알려주겠는가. 설령 미리 지식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지인을 통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상의 썰에 불과한 것이라 다분히 감정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가짜 정보일 확률이 농후한데 신뢰도 부분에서 믿을 수 있겠는가?
며느리는 며느리가 처음이다. 딸로 태어나 딸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며느리란다. 딸 같은 며느리라며 반겨주는데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호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랑 잘 맞는 시댁을 만나 다행히 조율의 과정이 순탄하면 정말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지만 대부분은 힘든 이야기다. 그래서 미리 예비 며느리 교육을 이수하자는 것이다. 엄마가 알려주는 언니가 귀띔해주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썰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며느리로서의 교육을 받고 결혼 생활에 들어가면 훨씬 적응하기 수월하지 않을까?
시어머니도 역시 시어머니가 처음이다. 며느리는 해 봤는데 시어머니는 처음이라 능숙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다행히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사랑이 넘치고 좋은 분이어서 예비 며느리에게도 좋은 시어머니가 되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름다운 대물림이 일반적이지 않아 늘 문제가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예비 시어머니 교육을 통해 요즘 세대에 대해 정보를 얻고, 고이 키운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진정한 독립을 응원할 수 있는 진짜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시어머니 본인에게 가장 도움이 될 듯싶다.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시작된 관계는 그 어떤 누구라도 당황하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유난히 우리는 고부간의 관계에 있어 예민함이 증폭된다. 작은 실수나 서운함에 크게 반응하고 친정 엄마가 했더라면 넘어갔을 문제도 시어머니 입에서 나오면 곱씹어 되새긴다. 시어머니 역시 딸의 행동이었다면 대수롭지 않았을 것들이 며느리가 하게 되면 눈을 흘기고 괘씸해한다.
이것은 어쩌면 남편과 아들이라는 동시에 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 남자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일 것이다. 결혼한 뒤에도 아들이 전과 다르지 않게 본인의 의지대로 행동해 주었으면 하고 혹시 결혼 전에 문제아였던 아들일지라도 결혼을 하면 며느리를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반대로 며느리는 독립된 주체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성인으로 인정받고자 하는데 자꾸 자신의 삶에 통제와 간섭을 가하는 시어머니가 반갑지 않다.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둘 다 현재의 자리가 처음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고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면 되는 것이다. 알려주고 바로잡아 주었음에도 변화하지 않을 때, 그때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알려주지도 않고 너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비난하고 질책하는 것은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가겠다는 의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담는다. 첫사랑, 첫니, 첫 학교, 첫 직장…. 처음이라는 것은 설렘을 선물하고 기분 좋은 긴장감과 희망도 준다. 며느리가 처음인 여자도 시어머니가 처음인 여자도 처음이 지니는 기분 좋음을 오랜 시간 간직하면 좋겠다. 꼭 누가 알려줘야만 터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예비 교육을 해서라도 알고 있으면 좋을 것들에 대해 미리 말해주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움트기까지 며느리가 힘들어서 시어머니가 괴로워서 고민하는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아들을 결혼시켰고 다른 누군가는 연인과 결혼을 했을 뿐인 두 여자의 인생이 너무 많이 힘들어진다. 그것을 바라고 한 결혼은 없을 텐데 왜 원치 않는 과정에 들어서게 되고 상처받는지 오랜 시간 의문을 가졌다.
‘처음이라 그래’
답이 나왔다. 처음이라 서툰 것이고 실수하는 것이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가 넘어졌다고 혼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일으켜 세워주거나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이라 서툴러서 벌어지는 일들을 질책하고 비난하지 않으며 적응하고 잘 해낼 수 있기를 지지해주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처음인 여자에게,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처음인 여자에게 서로의 처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을 길이며 가족이 되어가는 첫 시작이다. 나의 처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면 아마 미숙하고 서툴고 우습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서툴고 어색함을 잘 지나야만 정말 괜찮은 관계의 정말 좋은 일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만 했지만 시아버지, 장인과 장모, 사위까지 모두가 처음인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어쩔 수 없이 혈연에 의해 선택지 없이 가족이 된 사람들도 부대끼며 갈등하고 미웠다 좋았다를 반복한다. 하물며 법적으로 가족이 된, 남남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좋은 관계를 잘 가꾸는 것이 결국은 내 아들과 딸을 위한 길이고 내 부모를 위한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시어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어떤 처음의 기억을 갖고 있을까? 친구의 엄마로, 아들의 친구로서가 아니라 며느리와 시어머니로서 마주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기억을 남겼는지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적어도 우리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될 나를 위해 많이 공부하셨고 배려하셨고 고민하셨다. 거기서 나오는 말씀과 행동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어 나 역시 시부모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공경하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자식은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시부모님에 의해 잘 길러지고 있는 자식이라 생각한다. 불혹을 앞둔 아들과 며느리가 늘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시부모님은 아마도 두 분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시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리 역시 좋은 아들 며느리가 되기 위해 닮고자 애쓰며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좋은 영향력은 보이지 않는 사랑과 배려와 믿음에서 나온다. 서툴지만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