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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Dec 10. 2020

5.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아이를 갖고 싶을 때 반드시 이유가 필요하지 않듯이.

아이는 행복이다. 대체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달큰한 냄새에, 보들보들한 볼, 말갛게 웃는 얼굴을 보노라면 근심이 없어진다.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깜찍한 질문이나 답을 할 때엔 어찌나 귀여운지. 심지어 나의 아이가 아니어도 귀엽다. 이게 비단 내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온라인엔 온통 짝사랑 중인 랜선 이모들이 넘쳐난다. 하물며 나의 아이가 아닌데도 이렇게 귀여운데, 내 아이가 있다면 어떻겠는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다가올 테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공기와도 같아서,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아도 둘러보면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스크린 너머 아이에게서도, 어떨 땐 가까운 지인에게서도, 어떨 땐 나를 보는 부모님에게서도, 어떨 땐 이런 모습을 보고 웃는 나 자신에게서도.


출처 : 롯데카드 광고. 유투브 bobaepapa의 첫째딸 예린이는 자다 깨서 웃는 영상만으로 cf 2개와 cnn출연, 2857만회 뷰를 달성했다.


이토록 행복한 일을 대체 왜 하고 싶지 않은 걸까? 오랜 고민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여러 이유를 나열해보았지만, 모두 다 반박 가능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나도 커서 내가 생각한 문제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선뜻 낳겠다는 결정도, 낳지 않겠다는 결정도 하지 못했다. 날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낳기 싫은 결정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야,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아, 나는 진짜 아이를 낳기 싫은 거구나. 왜 못나게도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아챌 수 있는 걸까. 청개구리 같은 나의 마음이 너무나도 미웠다. 남편의 바람처럼, 나도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남은 인생을 함께할 반려자가 꿈꾸는 인생의 기쁨. 그 기쁨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안겨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이를 낳으면 모든 문제가 아지랑이에 눈이 녹듯 사라지겠지. 그런데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상상 속의 나는 항상 울고 있었다. 덩그러니 아이라는 과제를 안은 채로, 엄마라는 역할에 구속되어서 말이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부채의식이 몰려왔다. 당장 이 결정만으로도 아이를 바라는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본인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힘든데,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해명해야 한다. 나야 이 결정을 내가 내렸으니, 해명할 때 화가 나거나 속상하더라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아니다. 또, 사회 분위기는 어떠한가. 고개만 돌리면 연일 들리는 저출산 뉴스는 나를 괴롭게 하기 위한 정부와 언론의 모략인 것만 같다.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난임부부들에게 벌써부터 지탄받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무슨 죄인가. 나와의 결혼으로 아이도 가질 수 없고, 아이를 가진 또래집단과 공감대를 이룰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단 한 명, 내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 발생하는 마음의 빚이다.


때문에 나는 이 모든 부채의식을 떨쳐낼 만큼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도록.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이를 바라는데, 타당한 이유도 없이 거부하다니. 나는 그렇게 잔인하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은 인생 동안 평생 안고 갈 수도 없었다. 그건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타당하고도 결정적인 이유를 찾아서 방패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낳기 싫은 것이 나의 마음이다.’라는 것뿐이었다. 애초에, 싫은데 마땅한 이유가 있기란 어려웠다. 좋은데 마땅한 이유가 있기 어렵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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