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을 읽고
입시 준비를 할 때 과외 선생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글을 읽어도 똑같이 적어내지 말고 네 언어로 바꾸어 보라고. 고등학생인 나에게 그것은 어려운 지시였다. 우선은, 글쓴이는 논문이나 책의 집필을 위해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쳤을 것이며, 그렇게 깎이고 깎인 문장이 내 앞에 주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내 언어로 만들어라’는 말을 ‘정답을 쓰라’거나 ‘글쓴이보다 더 논리적으로 쓰라’는 뜻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깨달았다. '내 언어'라는 것은 정답도, 수준급으로 잘 써야한다는 강박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내 언어였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더리도 스스로가 느끼고 이해했던 방식을 적어내려갈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내 언어였다.
흐릿히던 입시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그림 읽는 밤〉 덕이었다. 이 책을 덮고 느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자신의 언어라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ㅡ라고.
〈그림 읽는 밤〉은 저자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밤 읽어내던 명화들과 책을 읽으며 접어두었던 문장들을 저자만의 방식대로 엮어낸 책이다. 총 1장, 2장, 3장으로 나뉘는데 1장은 '읽고, 놀고, 사랑하라 : 일상의 발견', 2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법', 3장은 '예술과 예술가, 그들이 건네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순서는 night으로 표기해, 저자가 명화와 함께 지새우던 밤을 독자들에게도 간접적이게 느끼도록 도와준다.
책은 그림 해설과 함께 작가의 생애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해설과 생애를 분리시켜 놓지 않고, 작가의 삶을 통해 이 그림이 작가에게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혹은 작가의 삶이 그림에 투영되어 있는지와 같은 연결고리를 엮어낸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며 작가 소개를 읽고 나니 그림의 해설이 더 잘 이해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그림 읽는 밤〉은 미술사에 무지한 사람도 미술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리를 이어주는 책 같았다.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고도 저자 자신만의 감상으로 그림의 해설을 담아냈으며, 독자가 스스로 해설할 수 있는 공간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night 36,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라는 작품이다. 평범하게 아름다운 꽃 그림 중 하나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리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꽤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흐가 정신병원에 머물던 시절,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정원과 그곳에서 피어난 꽃들, 고요하고 닫힌 세계에서 그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행위는 붓을 드는 것 뿐이었으며, 그 상황 속에서 탄생하게 된 작품이다.
"그림 속 아이리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흐의 고통과 열망이 캔버스를 뚫고 다가오는 듯하다. 왼편의 유난히 도드라진 보랏빛 아이리스 한 송이는 주변의 풀잎들 사이에서 고독하게 홀로 서 있다. 그 모습엔 위축됨이 없다.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존재 자체로 강하게 빛난다. 마치 세상 한복판에서 외로움에 잠긴 화가 자신처럼, 그러나 끝내 꺾이지 않은 불굴의 영혼처럼. 놀라운 것은 이 그림이 지닌 생명력이다. 정신병원이라는 닫힌 공간, 외부와 단절된 세계 안에서 탄생한 이 장면은 오히려 폭발하듯 살아 숨쉰다."
해설을 읽고 다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갑작스럽게 이 작품을 가져온 것은, 작품만이 아니라 저자의 언어가 내 가슴에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꽂혔기 때문이다. 해설을 읽고 어쩐지 난 안심했다. 그리고 나의 언어로 여백에 답장했다. 당시의 고흐는 마음 한 구석에 살아가고픈 욕망이 깅했으리라고 확신이 들었음을. 푸르게 펼친 잔디들 사이로 뻣뻣하게 홀로 고개를 든 아이리스는 바람에 휘청일지라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생명력은 너무나도 질기기에, 무너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가슴 한 켠 속엔 다시 일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꽃 그림 같기도, 배경을 안다면 우울한 그림같기도 한 이 작품은 저자의 해설로 잔잔하면서도 생동적인 감각을 일으켜주었다.
예술은 때때로 쓸모없어 보인다. 그림을 본다고 해서, 좋은 문장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무용한 시간들이 우리의 내면을 더 깊고 넓게 만든다. 효율과 생산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이 예술에 있다. 이 책과 함께하는 밤이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프롤로그 중
이 책에 여백을 두었다. 당신이 직접 쓰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쓴 그림 해설을 읽고, 당신이 느낀 것을 그 빈 공간에 써 보길 바란다. 얼마든지 나의 해설을 지우고 당신만의 언어로 그림을 다시 읽어도 좋다. 그렇게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 주길 바란다.
- 프롤로그 중
저자는 마흔 여덟 번의 밤을 함께 한 명화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엮어냈다. 이는 우리에게 해설로 다가온다. 보통의 해설은 해설에서 그친다. 그러나 작품이 '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해설을 이해할 때가 아닌 내 언어로 읽어낼 수 있는 순간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작품을 내 언어로 정립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작품은 영원히 내 삶 속에 남게 된다. 저자는 여백으로써 독자에게 그 기회를 준다. 우리에게 권유를 할 뿐이고, 독자는 다음 장을 넘김으로 거부할 수 있다. 허나, 여백에 적어낸 나만의 언어가 살아가면서 한 번씩 꺼내볼 수 있는 작지만 올곧은 심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예술은 그런 것이니까. 뛰어난 글솜씨? 오답과 정답? 중요치 않다. 작품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 들어왔는지, 그 순간이 나에게 어떠했는지ㅡ그 뿐이다. 그게 나의 언어다. 그리고, 저자 역시 독자들에게 그것을 원했으리라고 감히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