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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Aug 14. 2024

아베키

음악일기 / 2018. 1.30 / 후쿠오카

야쿠인 역에서 니시테쓰히라오 역 방향으로 내린천을 쭉 따라가다 보면, 스틸 기타를 바깥에 장식해 놓은 우동집이 있다. 에미우동.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믿음 때문일까.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둥둥. 어딘가 숨겨진 실내 스피커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열심히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고, 가게 한쪽 구석에는 오래된 야마하 기타 엠프가 보였다. 700엔 정도의 대표 메뉴로 보이는 우동을 시켰다. 큼직하게 방금 튀긴 야채와 새우가 올라간 진한 가쓰오부시 국물의 간장 우동이었다. 면은 늘 우동이라 생각하고 먹은 면보다는 넓고 가는, 거의 칼국수에 가까운 수타면이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나는 궁극적 목적지인 아베키로 향했다.


아베키의 실내공기는 고요함과 무거움을 머금고 있었다. 가게 통창으로는 갓 오전을 넘긴 신선한 햇살이 들어와 실내의 고요에 신성함을 더하는 중이었다. 손님은 방금 들어온 일본인 커플이 전부였다. 가로 세로 30센티 정도의 2인용 테이블이 다섯 개, 그리고, 통창이 있는 쪽에 3명 정도가 간신히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고, 그 앞에서 아베키(내 맘대로 집주인 이름)는 커피를 만들고 치즈케이크를 잘랐다. 테이블 위에 곱게 접힌 갈색 메뉴판 안에는 영어 따윈 없었다. 젠장... 코히 앤 치즈케이크. 이 두 단어만 알면 된다. 아 핫또도... 카페 안에 울리는 가사 없는 가스펠 음악을 들으며, 신성한 마음으로 주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우당탕하며 가게 내부의 고요을 망가뜨렸다.


저벅저벅, 쿵, 탁. 같은 소리들이 가게 내부의 정적에 힘입어 두드러지게 고막을 자극했다. 아베키는 살짝 뒤를 돌아봤다. 두 남녀는 가게의 고요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메뉴판을 펼치고, 한국어를 내뱉고, 아마 여자가 일본어를 좀 아는 듯, 가타카나, 히라가나, '여긴 좀 어렵다. 나가자.'라고 하면서, 다시 저벅저벅, 쿵. 하면서 가게를 나갔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고 5분쯤 지나자, 일본인 커플이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다섯 테이블 중, 내가 첫 번째라면, 세 번째, 다섯 번째 자리에 앉았다. 2번, 4번 테이블은 바리케이드처럼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이 돼버렸다. 하지만, 곧, 2번 테이블이 찼고, 바 테이블도 찼다. 여전히 가게 안에는 고요가 유지된 채로. 나는 코히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고, 흰 수도복(처럼 보이는 원피스)에 삭발을 한 아베키는 고개를 간단히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부터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삼십 분(일본어로) 다이조브라고 묻기 시작했다.


간간이 들리는 그라인더 소리가 타악기 없는 배경음악에 세이커처럼 들렸다. 가스레인지 위의 스테인리스의 매끈한 주전자에서는 부지런히 물이 끓고 있었고, 주전자 위에는 사기로 된, 역시 매끈한, 드리퍼가 데워지는 중이었다. 아베키는 고요한 뒷모습으로 커피를 내렸다. 드립을 하는 중간중간 그의 등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 서는 굵은 계란말이처럼 보이는 치즈케이크를 날카로운 칼로 절도 있게 잘라 곧 나에게 가져다줬다. 바 테이블 사람들이 앉은 의자를 유심히 봤더니, 등받이 뒤로 성경을 꽂을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그런 종류의 의자는 유럽의 성당에 가면 볼 수 있다고 친구에게서 들었다. 내가 아베키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나는 태어나서 가장 신성한 커피를 마신 듯한 기분을 간직한 채,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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