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볼 』실패해도 도전할 권리

꽃을 피우지 못한 1093일간의 뜨거운 스윙

by 최종병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든, 또는 그냥저냥 식상한 영화라도
과거 OTT 영화 담당자로서 지난 영화를 돌아보며 가볍게 읽을만한 글로 소통합니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펴고 초록빛 그라운드에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지는 프로야구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선수들 뒤편에서, 다시 한번 타석에 서기 위해 묵묵히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방울을 흘렸던 이들의 뜨거운 9회 말 투아웃이 궁금하다면.


또 한 번의 기회, '파울볼'




1. 파울볼 (Foul Ball) 영화 정보


★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기적 같은 1093일의 실화


◎ 감독 / 장르 : 조정래, 김보경 / 다큐멘터리

◎ 주연 : 김성근 감독, 고양 원더스 선수들 (내레이션: 조진웅)

◎ 개봉일 : 2015년 4월 2일

◎ 스트리밍 : 웨이브, 티빙, 왓챠, 넷플릭스 등

◎ 한 줄 평 : 스트라이크 아웃 직전, 포기하지 않고 쳐낸 절박하고도 뜨거운 인생의 파울볼.


※ 제목의 숨은 의미:

야구에서 '파울볼'은 타자가 친 공이 파울 라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짐을 뜻하죠. 프로 무대에서 지명받지 못하거나 밀려난 선수들에게 주어진 패자부활전, 혹은 다시 주어질 내일의 희망을 은유합니다.




2. 파울볼, 아웃되지 않을 마지막 권리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냉대를 받는, 이른바 거들떠보지도 않는 '루저'들이 모여 이를 악물고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는 비장함으로 최선을 다해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는 서사는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두 다리로 서는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드라마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고양 원더스'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코치들도 모두 왕년에 한가닥 했던 선수들이지만(이상훈 코치 같은 경우는 다승왕까지 차지했던) 프로 구단에 부름을 받지 못한 잉여 인력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성공한 천재들을 보며 환호하고 갈채를 보냅니다. 수많은 연습생과 연예인 지망생들이 부나방처럼 뛰어들지만 그중 우리가 이름이나 아는 연예인은 1%도 되지 않겠지요.


전국 유소년 야구선수 5천 명

> 프로구단 지명 드래프트 신청 참가 선수 700명(유소년 5천 명 중 14%)

> 한해 프로야구 입단 선수 110명(드래프트 참가자 700명 중 다시 15%).


유소년 5천 명 중 110명이라면 프로 입단까지 2%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바늘구멍입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프로 입단 선수들이 쌓인다고 하면 무려 1천 100명이고, 팀 주전은 단 9명(10개 구단이라고 해도 100여명). 입단까지도 2%인데, 입단을 한다고 해도 1군 무대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보장이 없는 치열한 정글의 세계. 그 속에서 성적을 내어 대중의 이름에 오르내리는 선수가 되는 것은 선택받은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따르지 않아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 지점에서 고양 원더스의 서사는 시작됩니다. 헬스 트레이너, 대리 운전기사까지 야구의 꿈에서 멀어졌던 이들은 이미 한차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열정이 부족해 나태했을 수도 있고, 열심히 했지만 재능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운이 따라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리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누구나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한들 누구나 '박지성', '류현진'이 될 수 없겠죠.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각자의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성공한 이들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 그리고 패배자들의 끝없는 열등의식과 부러움을 밟고 올라온 사람들입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 체 게바라


현실에서 누구나 스크린 속 주인공인 송강호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름을 가진 내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결국 내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실패하여 다른 길을 걷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미련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건전한 '체념'은 지나간 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내 인생을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끌 것입니다.




타자가 친 '파울볼'은 필드 밖으로 나가 결코 안타가 될 수 없는 실패한 타격이지만 계속해서 타자에게 타격을 할 '기회'를 줍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몇 번 반복되더라도 못난 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패자부활전이 언제든지 가능한 사회 말입니다.


그저 '노력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합지졸 선수들이 모인 창단부터 90승 25무 61패의 5할이 넘는 승률 기록을 남기고 해체되기까지,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1,093일간의 도전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실패하여 낙오되고 소외되는 이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고양 원더스'도 만 3년의 짧은 여정을 남기고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고양 원더스'를 열렬히 사랑했던 어느 10살 어린 팬의 오열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제 10여 년이 인생의 전부인 그 어린이는 이 일을 통해서 처음으로 인생의 실패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절박한 노력,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어렴풋이 깨달았겠지요.


인생의 황혼기에 섰던 김성근 감독 역시 75년 인생과 60년을 넘게 했던 야구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3년간의 실험은 비행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시행착오를 겪은 아기 새는 다시 힘차게 날갯짓해서 저 높은 하늘을 비상할 날이 오겠죠. 결국엔.


이들의 1,093일이라는 서사 뒤에 흘러 나오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 2010년 37살의 나이로 요절한 음악인 '이진원'의 긴 이름의 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라는 곡입니다. 야구를 사랑했던 이진원이라는 청년은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힘든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상황과, 빈곤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다 자취방에서 뇌졸중으로 홀로 쓰러져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생전 그가 만든 가사에는 패배자의 아픈 심정과 좌절, 체념의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괜찮다'는 '희망'과 '사랑'을 사람들에게 노래해왔습니다.


이진원(좌)와 '절룩거리네'가 실린 2집 앨범 '스코어링 포지션'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께서 만약 지금 처한 현실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지치고 쓰러져도, 설령 실점을 많이 해서 승부를 뒤집을 수 없는 9회 말 투아웃의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끝까지 공을 보고 배트를 힘차게 휘둘러 역전 만루 홈런을 날리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두 팔 활짝 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팔짝팔짝 뛸 그날, 그 순간이 여러분에게 반드시 오기를 말이에요.


p.s.
한국 프로야구 한 타석 최고 투구 기록은 2010년 15개의 파울을 때리며 투수에게 무려 20개의 공을 던지게 한 당시 기아 타이거즈의 '이용규' 선수의 기록입니다. 결국 이용규는 20구째에 친 공이 우익수 쪽으로 높게 떴고, 당시 넥센의 우익수 유한준 선수가 잡아내며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습니다.

비록 이용규 선수는 아웃되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지만, 한 타석에서 무려 20개의 공을 던지며 진을 다 뺀 상대 투수 박준수는 그 직후에 급격히 흔들렸고, 결국 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바로 강판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용규 선수의 그 끈질긴 '파울볼'들이 결국 상대 팀의 마운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죠.




3. 이 영화, 볼까 말까? (관람 가이드)


이 영화는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창단부터 해체까지 1093일의 여정을 아주 담백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① 실패한 이들을 위한 찬가:

이 영화는 화려한 승리와 우승 트로피를 조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끝없는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땀방울에 주목합니다. "세상에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메시지는 야구를 넘어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건넵니다.


②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담백한 시선:

보통의 스포츠 영화가 감동을 쥐어짜기 위해 사용하는 화려한 BGM이나 작위적인 신파 코드가 없습니다. 묵묵히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배트를 휘두르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투박한 일상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어, 오히려 더 깊고 먹먹한 여운을 남깁니다.


③ 기적 같은 1093일,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고양 원더스는 창단부터 해체까지 불과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존재했지만, 몇몇 선수들을 프로 무대로 진출시키는 기적을 썼습니다. 결과보다 그들이 지나온 과정 자체가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증명해 냅니다.




영화 <파울볼>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그래서 홈런을 쳤는가'가 아닙니다. '아웃 카운트가 꽉 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방망이를 고쳐 쥐고 한 번 더 스윙할 용기가 있는가'에 대한 뜨거운 질문입니다. 배트 중심에 맞지 않아 빗맞은 파울볼일지라도, 아직 타석은 끝나지 않았다는 뭉클한 응원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이런 분들에게 강력 추천 (O)


① 프로야구 개막의 열기를 진하게 느끼고 싶은 분

야구의 진짜 묘미는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뿐만 아니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뛰는 간절한 땀방울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최고의 선택입니다.


② 지금 삶의 타석에서 좌절하거나 지쳐있는 분

실패를 딛고 묵묵히 스윙을 이어가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나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부여와 가슴 뜨거운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③ 다큐멘터리 특유의 날것 그대로의 감동을 사랑하는 분

작위적인 연출 없이 땀과 눈물로 빚어낸 진짜 인생 드라마를 만끽하고 싶은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 이런 분들은 패스하세요 (X)


① 극적인 역전승이 있는 통쾌한 상업 영화를 기대하는 분

이 영화는 픽션이 가미된 짜릿한 할리우드식 기적의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담담하고 때론 가슴 아픈 현실 다큐멘터리입니다.


② 스포츠 룰을 전혀 모르거나 야구에 아예 관심이 없는 분

야구의 기본적인 규칙(파울, 스트라이크 등)과 프로/독립구단의 차이를 전혀 모른다면 감동과 몰입의 깊이가 조금 덜할 수도 있습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