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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4. 2023

2023년 4월 일기모음 1

4월 1일 토요일


퇴근하고 곧장 3호선을 타고 북성로에 갔다. 혼자서 산책을 조금 했다. 길을 걸으며 풍경 사진을 찍으니 한 아저씨가 나더러 "아가씨 아파트 사진 찍어요?" 라며 말을 걸어온다. 대충 대꾸해 주고 그 길을 따라서 모임을 하러 쭉 걸어갔다. 평소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책, 양자역학, 심리학, 영성 등에 관심이 많은 모임원이 뭔 특강을 한다기에 들어보기로 했다. 내용은 취향에 안 맞는데 사람 구경이 재밌다. 필기까지 하면서 듣는 사람들이 다 있네. 인생그래프 그리기도 했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내 인생 진짜 별 볼 일 없다.


4월 2일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대구국제마라톤 건강 달리기에 참가했다. 내가 참가한 코스는 기록측정을 따로 안 하는 코스고, 키로수도 얼마 안 된다. 시작 전에는 4.6킬로로 알고 갔고, 안내에 의하면 5킬로라고 했다. 사람이 많아서 사람을 뚫고 지나가려면 지그재그로 달려야 했기에 어쨌든 5킬로는 충분히 달린 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도 보이고,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좋다. 4년 만의 정상개최라더니 과연 사람이 미어터진다. 아니면 원래 마라톤이라는 게 이런 분위기일까. 코로나 시국에 맞춰서 축소 운영되던 마라톤에만 참여해 본 입장에서 이번 마라톤 대회는 정말 사람이 많게 느껴졌다.


따뜻한 날씨,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치는 경쾌한 소리, 건강하고 즐거운 사람들,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괜히 마음이 들뜬다. 뜨거운 태양 따위는 별 거 아니게 느껴진다. 대구 시청 앞에서는 마라톤 참가자들에게 술과 음식을 나눠준다. 하와이에서 물 건너온 수제맥주와 즉석에서 구워주는 곱창과 납작 만두와 도토리묵국수까지, 세상에 마라톤 대회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재밌네 이거. 혼자 와도 이렇게 들뜨는데 같이 올 사람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긍정적인 기분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다음 일정으로 국일따로국밥에서 식사약속이 있어서 양껏 먹을 수가 없어서, 간단히 납작 만두 세 점과 맥주 두 잔만 마시고 자리를 옮겼다. 맥주의 경우 한번 시음해 보니 너무 맛있길래 약간의 고민 후 다섯 캔을 구입해 버렸고 구입하면서 슬쩍 한잔 더 받아마셨다. 다음 일정이라고 해봐야 결국 또 모임이다. 모임 사람들과 국일따로국밥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처음 먹어보는 선지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선지는 마치 곤약처럼 특별한 맛도 냄새도 없이 식감만이 살아있는 식재료 같다. 예상외로 누린내가 나거나 비리거나 하지는 않는다마는 식감이 별로다. 혀에서 상당히 거슬리는 느낌이다. 납작 만두와 맥주로 배를 약간 채운 상태에서 먹는 탓에 본연의 맛을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보드게임을 했다. 카페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코스로 동명저수지에 간다기에 더 함께 하기에는 피곤해서 적당한 핑곗거리를 대면서 빠졌다.


집에 오기 전에 텃밭에 잠깐 들렀다. 땅을 네 등 분해서 퇴비를 뿌리고 삽을 이용해서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마지막에 물을 뿌리고 귀가했다. 몸 쓰는 일은 의외로 재밌었고, 씨앗 뿌리는 일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어설펐다. 상추의 경우 과밀이 우려된다마는, 이미 씨를 뿌리고 덮은 거 다시 손 보기 번거롭다.


어느 정도 싹이 올라왔을 때 솎아내기, 옮겨심기 등으로 해결하면 되겠다. 굳이 장갑을 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흙을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좋다. 주말에 가서 씨를 더 뿌리고 물도 더 줄 예정이다. 주 2회는 물을 줘야 해서 주중에 한번 가야 할 것 같은데 때마침 이번주 수요일 (식목일) 에 비소식이 있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토마토, 고구마를 시작할 계획이다. 씨앗은 다이소에서 구입했다.


4월 3일 월요일


오랜만에 퇴근길에 헬스장에 갔다. 3D스미스머신에서 데드리프트 60kg 10개 5세트를 하고, 천국의 계단을 대략 1시간 밟았다. 2,000 스텝을 밟았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하루가 끝난다. 대충 챙겨 먹고 일기 쓰고 잔다.


4월 4일 화요일


화요일은 산부인과 야간진료가 있는 날이다. 퇴근길에 병원에 잠깐 들렀다. 지난번에 받은 질염검사 (+성병검사), 소변배양검사, 자궁경부암검사의 결과를 듣기 위해서이다. 딱히 걱정할 일은 없어서 너무 당연하게도 성병은 없었고 소변에서도 특별히 균도 발견되지 않았다마는 자궁경부에서 약간의 염증소견이 나왔다. 진료하시는 의사 선생님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시고 염증과 관련된 별도의 약도 처방해주시지 않는 걸 보니 심각한 상태는 아닌가 보다. 원인은 스트레스 같다. 단순 감기 같은 느낌이다. 성병검사에 대한 리스트를 쭉 살펴보니 종류가 꽤 다양했다. 여성의 질에서 발견될 수 있는 병균이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자궁경부암검사는 30세 이상 여성이라면 2년에 한 번씩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국가무료암검진인데 나는 이번에 첫 검진 이후 2년을 훌쩍 넘겨서 받는다. 하의를 모두 벗고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 민감한 질 속에 가늘고 긴 플라스틱 막대기를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젓는 방식의 검사에 대한 거북함 때문에 도저히 검사받기가 싫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최근에 간신히 용기를 냈다. 작년 말에 한번, 살면서 처음으로 방광염에 걸려서 고생한 일을 떠올리며, 건강문제는 일이 터지고 난 후에 고통받으며 부랴부랴 수습하지 말고 멀쩡할 때 지키자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위생에 유의하자.


집에 오는 길에 닭똥집을 포장해 와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보면서 먹었다. 닭똥집은 맛있었고 길복순은 재미가 없었다. 닭똥집은 혼자 먹기에 양이 많았는데도 남기기가 애매해서 한꺼번에 꾸역꾸역 다 먹었다. 길복순은 평점이 엄청 낮던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킬러에 관한 이야기인가. 혹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편모가정, 엄마와 딸,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하는 여자, 논개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기생), 레즈비언 등이 소재로 쓰인다. 소재는 나쁘지 않은데, 이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닌 걸로. 구구절절 얘기할 것 없이 일단 재미가 없다.


4월 5일 수요일


퇴근 후 헬스장에 가기 앞서 저녁식사 겸 잠시 앉아있고 싶어서 카페에 들렀다. 갈릭베이글과 커피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양이 적어서 잠봉베이글을 하나 더 시켜서 먹었다. 카페빵은 비싼 편인데 참 사치스럽다. 반 개를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서 남은 반은 테이크아웃했다. 한 개는 양이 적고 두 개는 양이 많고 한 개 반이 적당하다. 식사로는 양이 좀 애매하다.


천국의 계단 94분 2,000 스텝 (400키로칼로리)
20분 1,000 스텝 (소모칼로리 확인 못함)
17분 1,000 스텝 (소모칼로리 확인 못함)
랫풀다운 패러럴그립 30 킬로그램 12개 5세트


유산소를 정말 많이 했다. 2시간을 넘게 했다. 밟은 계단수만 자그마치 4,000개다. 이후 데드리프트를 하기에는 너무 지친다고 느껴져서 하지 않았는데, 막상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쩐지 쌩쌩했다. 힘이 남아도는 느낌이랄까. 운동을 더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다음날 몸상태를 봐야 한다. 당일에는 멀쩡해도 그다음 날 근육통으로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운동 후 집에 와서 봉베이글 반을 마저 먹었다. 양이 안 차길래 우동도 삶아 먹었다. 새송이버섯과 파를 살짝 구워서 올렸더니 식감이 좋다. 배불러서 잠 잘 오겠다.


내일은 치과 가는 날인데 벌써부터 가기 싫다. 퇴근하고 가려니 빠듯하다. 거리가 애매한데 그냥 편하게 택시라도 탈까보다. 일기를 쓰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트롤리를 본다. 현재 12화를 보는 중이고, 총 16부작이다. 이번주 토요일이 넷플릭스 이용권이 만기 되는 날이니까 금요일까지 다 보고 싶다.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김현주가 너무 예쁘다. 내가 아는 여자연예인 중에서 제일 예쁜 것 같다. 어릴 때는 임수정처럼 동안에 소녀느낌이 나는 여자가 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김현주처럼 살짝 각진 상이 좋아 보이네. 단발머리도 예쁘다.


4월 6일 목요일


내가 다니는 치과 카운터에서 언제부터인가 자꾸 실수를 한다. 문제는 치과 측의 실수가 아닌 내 억지 혹은 기억의 오류가 되어버리는 분위기다. 사실 이곳에서 하는 스케일링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치과는 많으니까, 이번까지만 가고 다른 곳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다음 예약 때는 시간이 굉장히 빠듯하다. 아무리 늦어도 5시 50분까지는 가야 한다. 퇴근이 5시 30분이고, 경우에 따라 10분까지 늦춰질 수 있다고 친다면, 이동수단이 필요하겠다.


분명 한 달 전에 전화예약을 했는데 당일이 되어서 예약이 안 잡혀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목요일 예약을 잡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그날 진료를 할 수 없으니 그다음 날 6시에 하자고 했다. 다시 예약 확인을 하니 자기네들이 6시에 마감하기 때문에 6시에 오면 진료를 받을 수 없으며 5시 30분에 예약이 잡혀 있다고 한다. (재차 확인하고 메모까지 한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메모가 남겨져있다.)
현금결제 시 50만 원에서 5만 원을 뺀 45만 원으로 안내받았는데 막상 결제를 할 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번 모임에서 한 모임원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번 신뢰가 깨지면 회복이 어렵다. 신의를 어긴 관계는 구겨진 종이와 같다. 종이는 한번 구겨지면 다시 펴도 구김이 남는다."


4월 7일 금요일


퇴근 후 곧장 귀가해서 내내 집안일을 했다.


4월 8일 토요일


8시 30분 출근, 1시 30분 퇴근, 2시 미용실 입성, 4시 미용실 퇴장, 4시 카페 해피띵스 입성, 6시 카페 해피띵스 퇴장, 6시 대중교통 탑승, 7시 칠성시장역 하차, 7시 칠성야시장 방문, 어쩌고 저쩌고 해서 11시 귀가, 대충 요약하자면 이런 하루였다. 해피띵스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나온 이후부터 칠성시장에 가기 전까지 비는 시간을 혼자서 적절하게 보내기 위해서 잠시 방문한 쌀디저트 카페이다. 칠성야시장의 경우 모임을 통해 가게 됐다.


그동안 서문야시장만 와봤지 칠성야시장은 처음 와본다.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 맥주를 시켰다. 역시 맥주는 맛있고 내 얼굴은 금세 익는다. 기분내기 위해 줄 서서 먹는 평범한 맛의 비싼 음식들. 경험 삼아 한 번씩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애석하게도 모임은 매우 몹시 재미가 없다. 매번 뭘 기대하면서 모임에 참석하는지 모르겠다.


야시장이 개장했단다. 나도 가고 싶다. 혼자서는 가기 싫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다. 그럼 어떡해. 모임을 통해서 같이 가는 수밖에. 대충 이런 생각인 것 같다. 야시장에서 그치지 않고 칠곡에서 무슨 2차를 한다기에 적당히 둘러대고 귀가했다.


4월 9일 일요일


텃밭에 갔다. 수요일에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이 굳었다. 단단한 흙 사이로 싹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단 한주만에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다니 재밌다. 씨앗을 조금 더 뿌리고 물을 주고 왔다. 낮시간대에 갔더니 햇빛이 따가워서 작업하는 게 힘들었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현기증이 났다. 다음 주에는 해 질 녘에 가거나 아니면 아예 새벽에 가야겠다.


친구가 내 텃밭농사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나도 친구네 텃밭농사일을 도와줬다. 작년에 농사짓고 남아있는 비닐멀칭을 제거하고, 퇴비를 뿌리고 흙 위에 감자를 올리고 감자 위로 흙을 두둑하게 쌓아서 올렸다. 퇴비더미에서 두더지 새끼 (추정) 를 발견했다. 친구가 퇴비를 얻는 과정에서 삽질을 하다가 흙 속에 있던 두더지 새끼를 흙 밖으로 나오게 해 버린 것이다. 그대로 두자니 밤 사이에 얼어 죽을 것 같고 그렇다고 다시 흙으로 덮자니 뭔가 압사할 것 같아서 일단 마른 잎들로 지붕을 만들어줬다. 자칫 잘못하면 고양이가 물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검색을 해봐도 알 길이 없다. 데리고 가서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키우다가 죽으면 죄책감이 들 것이고, 설령 안 죽고 무럭무럭 성장한다고한들 그것 또한 곤란한 일이다. 두더지 따위를 키워서 도대체 뭐 어쩌자는 건가. 어느 정도 생존할 수 있겠다 싶을 때까지 키워서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건가. 뭐 어쨌거나 사람의 실수로 인해 억울하게 죽으면 안 되는데 걱정된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음식물이 썩고 있는 퇴비더미 사이에다가 두더지가 새끼를 낳아놨을 거라고. 그래도 삽으로 자르거나 뭉개지 않은 것만으로도 일단 안도하기로 한다. 새끼들 크기는 대략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의 크기다.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실물이 훨씬 더 작고 앙증맞다.


처음 본 두더지 새끼는 뭔가 너무 귀여웠는데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보니까 살짝 징그럽다. 사실 나는 쥐과를 굉장히 싫어한다. 일부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는 햄스터도 싫어하고 미키 미니 등의 쥐캐릭터도 싫어하는데, 두더지새끼를 보고는 순간적으로 귀여움과 불쌍함 등의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어릴 때 모친이 종종 하던 '모든 동물들이 새끼 때는 다 귀엽지' 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알보보니 두더지는 농사의 천적이요, 일부로 퇴치기까지 설치해서 죽이는 동물이라고 한다. 저녁에는 배가 안 고파서 굶고 유튜브를 보다가 일기를 쓴다.


4월 10일 월요일


점심 식사로 직장 부근에 생긴 카페에서 커피와 떡볶이를 사 먹었다. 퇴근하면 집콕이다. 유튜브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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