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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4. 2023

2023년 4월 일기모음 3

4월 21일 금요일


퇴근 후 어둑해질 무렵에 텃밭에 다녀왔다. 일교차가 심하다.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밤이 되니 날이 차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온도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체감온도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분다. 찬바람을 쐬니 눈, 머리, 피부, 목 등 안 아픈 데가 없다. 몸이 안 좋은가보다. 대충 물을 주고 귀가했다. 싹이 뭉쳐서 올라오는 걸 보니 확실히 씨를 잘못 뿌린 게 티가 난다. 뿌리가 다치지 않게 살살 파서 분산시켜주어야 할 것 같다. 내일 가서 하던가 다음 주에 하던가 해야겠다. 벌써부터 귀찮아서 큰일이다. 집에서 텃밭까지 오고 가는 게 너무 수고스럽다. 일단 날씨 탓으로 돌려본다.


4월 22일 요일


퇴근 후 카페에 다녀왔다. 바닐라밀크를 2,500원 주고 사 마셨다. 쫀득한 우유거품과 적당히 단맛이 좋다. 카페가 시끄러워서 글이든 책이든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저녁식사로 마트에서 사 온 고기를 구워서 양껏 먹고 키딩을 봤다. 저녁에 모임에서 칠곡3지구 치맥킹에서 모임 중이니 나오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는데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라 뭘 더 먹기가 힘들어서 거절했다. 배가 고팠으면 나갔을 것 같다.


4월 23일 일요일


낮에 모임사람들과 막국수를 먹으러 다녀왔다. 막국수를 먹고 카페에서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하산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나 보다. 일단 혼자 있었으면 가지 못 했을 맛집에 갈 수 있는 게 좋다. 그리고 적어도 하루종일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다. 적당히 기분 전환하고 귀가했다. 저녁에 집에 와있는데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모임원분이 친구랑 셋이서 갈비를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지만 배가 불러서 거절했다. 사실 그 친구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인데 오늘 만나게 되면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거고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서 갑자기 보기가 어색하다. 내심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역시 배가 부르다.


저녁에 집에 와서 내일 먹을 치아바타샌드위치를 미리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잔다. 치아바타는 어제 레이지모닝에서 샀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 중 햄과 치즈와 양상추와 방울토마토는 어제 마트에서 샀다. 미리 만들어두면 눅눅할까 걱정되지만 아침에는 절대 안 만들 거 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예전에도 한번 샌드위치를 미리 만들어놔 봤었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속재료가 남아서 빵을 더 사 와서 또 만들어먹어도 좋을 것 같다. 샌드위치 외에 토스트도 미리 만들어서 냉동보관해 뒀다. 식빵 안에 치즈와 햄을 넣었다. 하나씩 꺼내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먹으면 맛있다.


4월 24일 월요일


데드리프트는 머신으로 고작 60kg 드는데도 너무 무겁고 힘들다. 유산소는 30분 이상을 못 하겠다. 현재 6월 마라톤과 9월 마라톤, 이렇게 마라톤 대회를 두 개나 신청해 놓은 상황인데, 어떻게든 체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퇴근하고 헬스장 가서 깔짝대다가 귀가했다. 하루가 짧다.


4월 25일 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맥도날드에 가서 맥모닝 맥그리드를 먹었다. 달아서 입에 안 맞다. 오후부터 비가 왔다. 퇴근하고 모임사람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해서 잠깐 만났다. 김태주 곱창전골에서 식사를 하고 라심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4명이서 만났는데 어쩐지 만남에 아무런 소득이 없게 느껴진다. 사실은 1대1 대화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단체대화에서는 나눌 말에 한계가 있다.


4월 26일 수요일


닥터유와 함께, 유튜브 건강강의를 봤다. 우울증 완치훈련에 대한 영상을 봤다. 목소리가 듣기 편하고 강의 내용이 좋다. 닥터유는 아토피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다가 처음 알게 됐기에 처음에는 닥터유가 피부과 의사인 줄 알았다. 여러 영상을 보니 이분은 내과, 정신과, 신경과를 모두 섭렵했다. 아무튼 나한테 도움 될만한 정보가 많다. 오늘도 퇴근 후 집에 와서 유튜브만 보다가 저녁시간을 보낸다.


4월 27일 목요일


퇴근하고 6시 30분에 맞춰서 상담 2회기를 들으러 갔다. TCI (성격-기질) 검사결과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데 한 시간이 짧다. 상담자나 내담자 (나) 나 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가 다음 순서 내담자가 밖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초과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상황을 파악하고 급하게 상담을 끝냈다. 아직 검사 결과지도 끝까지 다 못 들어서 다음 시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기질은 선전적으로 타고나는 거고, 성격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한다. 나는 의외로 타고난 기질이 굉장히 역동적이다. 하지만 현재 정적인 일을 하고 있어서 되려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몸을 써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기질이다. 몸을 쓰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일이 아니라더라도 여가시간에 몸 쓰는 취미생활, 즉 운동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울-불안 수치가 최대치다. 완전 환자네 이거. 충동성도 강한 편이다. 그런 것 치고 절제력은 높다. 그래서 그나마 이 정도 삶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거구나 싶다. 개인주의, 독립성향이 강하다. 대충 이런 결과가 나온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얘기를 더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첫회기에 내준 숙제 (매일 나 자신 칭찬하기, 매일 감사 일기 쓰기)는 결국 하루만 하고 안 했다. 숙제를 했는지 딱히 물어보지도 않으셨다. 또 새로운 숙제 두 가지를 내주셨는데 놀랍게도 기억이 안 난다. 일단 하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힐링 포인트를 한 가지 만들라고 하셨고, 또 하나는 뭐였더라.


일기를 쓸 때 가급적 긍정적으로 바꿔쓰라는 말, 운동을 시작하라는 말,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각각의 장단점을 나열하고 비교해 본 후 결정하라는 말, 사람 만나는 모임활동을 지속하라는 말, 뭐 이것저것 많은 과제를 내주시기는 했는데, 저 두 가지 숙제 중 하나는 뭐였는지 진짜 기억이 안 나네. 사실 약물상담을 좀 받아보고 싶은데, 마지막 시간을 노려봐야겠다. 뒤늦게 메모를 발견했다. 숙제 2가지, 힐링 포인트 만들기, 단기 목표 설정하기.


4월 28일 금요일


퇴근 후 또 곧장 집이다. 근데 나 왜 운동 안 가니?


4월 29일 토요일


퇴근 후 3호선을 타고 북성로 어울리커피클럽에 갔다. 그곳에서 라이팅클럽이라는 글쓰기모임에 첫 참석했다. 라이팅클럽은 예전부터 계속 진행되어 오던 모임이고, 매 시즌마다 신규멤버를 모집한다고 한다. 지난 시즌 같은 경우 신규멤버들이 초반에만 잠깐 나오고 전원이 다 나가버려서 최종적으로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했다. 2주에 한 번씩 글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5,000원의 벌금을 물 것이며 그렇게 모은 돈을 회식비에 쓰겠다고 한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다 나갔구나. 내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툭 던진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기존 멤버와 신규 멤버가 대략 3대 2 정도로 시즌 첫 모임이 진행됐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내 첫 느낌으로 봤을 때 끝까지 남아있을 신규멤버는 안 보인다. 단톡방에 입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 참여한 신규멤버 중 나 외에 아무도 단톡방에 입장하지 않았다.


모임장을 맡은 사람이 간단한 모임 소개를 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간략한 자기소개와 모임 참여 계기 및 글쓰기 계획 등을 밝히고, 모임활동을 오래 한 기존 멤버 중 두 명이 각각 에세이 쓰기와 소설 쓰기에 대한 짤막한 강좌를 해줬다. 그리고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각자 글을 쓰다가 하산했다. 3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났다. 글쓰기모임은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 동안 진행된다. 격주로 에세이 한편을 써서 총 6편의 에세이를 완성할 거고, 한편당 분량은 최소 500자 이상이다.


중간중간에 합평하는 시간과, 마지막 최종 합평 시간도 가질 거라고 한다. 모임에 매주 나갈 생각은 없고, 혼자 있기 심심할 때나 가끔씩 나가고, 합평 때나 나가면 될 것 같다. 혼자 하는 것보다 이렇게 강제성이 부여되면 안 쓰래야 안 쓸 수가 없지. 석 달 동안 최소 500자 이상의 에세이 6편 제출이라, 일단 나는 지금 마음 같아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열심히 한번 써봐야겠다.


저녁에는 친구가 다운로드해 준 전장의 크리스마스 (영어제목 :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를 봤다. 오래전부터 꼭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네이버에도 안 올라와있고 여러 가지로 구하기가 힘들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구태여 찾아야만 볼 수 있는, 만들어진지 대략 40년 된 정도 된 오래된 고전 영화다.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 처음 알았다.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의 인생곡이라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라는 곡을 알려줬다. 그리고 이 음악이 어떤 영화의 메인곡이라고 했다.


영화는 대충 찾아보니 전쟁영화라 내 취향도 아니고 딱히 재밌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어서 오랫동안 괜한 궁금증만 키워나가다가, 오늘 드디어 봤다. 영화가 대단히 재밌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역시 재미는 없다. 진짜 순전히 음악 때문에 본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데 도대체 누가 류이치 사카모토였지. 얼굴을 못 알아보겠다. 영화포스트를 검색해 보니 포스트에 전범기를 쓴 버젼이 여러 장이고 전반적인 느낌이 무서워서 이미지 첨부는 생략하기로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역시 전쟁은 무섭다.


4월 30일 일요일


아침 일찍 텃밭에 다녀왔다. 상추가 너무 과밀하게 자라서 삽으로 파서 옮겨심기 작업을 했다. 처음 보는 아저씨 한분이 본인밭에 심고 남은 고구마순을 무료 나눔 해주셨다. 아침 일찍 왔더니 이런 행운이 다 따른다. 사실 텃밭농사를 시작할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게 고구마농사였다. 집에서 직접 고구마순을 키워서 밭에다가 심으려고 마트에서 고구마를 사서 수경재배를 하다가 실패했다. 고구마순을 사야 하나 알아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잘됐다.


내가 심은 적이 없는 깨와 토마토 싹이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일단 놔둬보기로 하고, 잡초도 올라오길래 잡초는 뽑았다. 집에 와서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만들어먹고 커피를 내려서 과자와 함께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일기를 쓴다. 남은 하루동안 할 일은,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폰만 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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