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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6. 2023

2023년 5월 일기모음 1

5월 1일 월요일


저녁에 모임사람들이 내가 사는 동네에 저녁 먹으러 온다고 나더러 나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나가서 같이 식사하고 왔다. 혼자 밥 먹기 적적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나를 제외하고 총 4명의 인원이 왔고, 다들 한시부터 여태껏 쭉 같이 있다가 오는 길이라고 한다. 저녁을 먹으러 만난 시간은 대략 6시 40분쯤이었다. 딱 한 시간 동안 깔끔하게 밥만 먹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홈플러스에 들렀다가 필요한 것들을 사고 집에 도착하니 열 시가 훌쩍 넘었다.


대형마트 쇼핑은 재밌는 것 같으면서도 진이 빠진다.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손에 쥘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요즘 물욕이 너무 심해졌다. 정신적 공허와 외로움이 원인인 것 같다. 물건을 사봐야 만족감은 잠 깐 뿐이지 또 새로운 물건이 가지고 싶어 진다. 가지고 나면 끝난다. 그냥 돈을 쓰고 손에 넣게 되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 같다. 특히 주방용품 코너 앞에서 심한 허기를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여자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그릇에 탐을 낼까. 나도 그런 편인데 내가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기껏해야 그냥 예뻐서 가 그 이유다. 그릇이 있다 못해 안 써서 처박아두는 것도 있다. 그런데도 또 사고 싶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 작년에 읽었던 후데코의 '사지 않는 생활' 독후감을 다시 읽어보고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5월 2일 화요일


퇴근 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무료강의가 있어서 들으러 갔다. 소통기술을 알려준다나 뭐라나. 교육장소가 반월당역 10번 출구로 나가서 대략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위치에 있다고 했다. 동천역-명덕역-반월당역 코스로 교육장소까지 가는데 마지막 반월당역에서 10번 출구를 쉽게 찾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대중교통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이후 (사실 이건 대중교통에서 늘상 있는 일이긴 하다. 남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 욕하는 사람,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지 않고 스피커폰으로 크게 틀어놓고 듣는 사람 등등) 기분이 가라앉았다. 길을 헤맬 때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교육장소에는 늦지 않게 잘 도착했다. 대략 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나 늦는 사람들이 있다. 길 찾기가 힘들어서 헤매다가 늦는다는 게, 연락받은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하긴 나도 조금 헤매긴 했다. 늦게 오는 사람들에 맞춰서 강의시작이 지연됐다. 지금껏 이런 종류의 여러 강의와 모임 등에 참석하면서 지각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반드시 한 명 이상은 지각을 한다. 이제는 익숙하다.


강의는 재미가 없어서 집중이 안 됐다. 하긴 내가 처음부터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긴 했나. 무료라니까 굳이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교육을 들으면 다과도 제공한다고 하니까 공짜 음식이 탐난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남의 기회 뺏지 말고 조용히 집에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육에 의하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항상 눈을 쳐다봐야 한다고 한다. 눈만 제대로 쳐다봐도 호감도가 상승한다. 기본적인 것이지만 잘하지 않는다. 특히 일할 때.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싫다. 말을 하면서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다. 겪어보니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던데, 나도 다른 사람들 눈에 저렇게 보이겠구나 싶다. 표정이 어두운 손님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렇겠지. 몇몇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나있는 것 같다. 미간에 11자가 깊게 파여있는 걸 보며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묻어있음을 느낀다.


말을 할 때마다 말 끝에 묵음으로 이- 를 붙이라는 건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이것만으로도 표정이 밝아져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 보인다고 한다. 승무원들이 받는 교육이라나 뭐라나. 일할 때 항상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까 크게 도움은 안 될 것 같다. 인위적으로 웃다 보면 어떻게든 입은 웃어도 눈은 웃기가 힘들다. 요즘은 내 모습을 내가 보는 것도 힘들다.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싶다. 집에 오면서 또 길을 헤맸다. 지능이 점점 갈수록 떨어져 가는 기분이 든다.


5월 3일 수요일


SNS가 인생낭비라는 말이 있다. 한때는 네이버블로그에도 몰두하고 인스타그램에도 몰두했지만 지금은 둘 다 안 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인생 낭비였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나마의 순기능을 이야기하자면 일시적인 감정해소 정도는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고 있다. 스스로 인생 낭비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가상공간을 구축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티스토리 블로그 정도는 최소한으로 놔두기로 하자. 이조차도 안 하면 마음이 너무 허하다.


현재 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따로 없다. 한때는 네이버카페활동 (하루키팬카페) 을 하기도 했었고, 막상 적으려니 딱히 뭐가 없긴 하네. 현재 모임 단톡방이 여러 개인데, 어떻게 보면 이것도 커뮤니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서 애쓰는 게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무언가를 놓칠 것 같다는 착각을 버리고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버릇을 고쳐야겠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내내 폰만 만지다가 집안일 깨작거리고 일기 쓰고 씻고 잔다.


5월 4일 목요일


우울한 사람들이 비만해지고, 비만인 사람들이 우울하다. 우울해서 살이 찌고, 살이 쪘기 때문에 우울하다. 순서가 어떻든 살이 문제다. 살을 빼야 하는데 계속 무기력하다. 한때는 왜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했고, 지금은 왜 그때처럼 하지 못 하는 것일까. 요즘은 거의 매일 몸이 아프다. 얼굴이 많이 늙었다. 새벽헬스를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으나, 가기 싫어서 안 갔다. 어젯밤에 돌려놓고 도저히 잠이 와서 다 돌아갈 때까지 못 기다리고 그냥 놔두고 잔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서 널고, 어제 먹고 남겨둔 샌드위치와 율무쉐이크를 마저 먹고, 샤워를 하고, 옷을 골라 입고, 맥모닝을 먹기 위해 맥도날드에 왔다.


퇴근 후 마지막 심리상담에 갔다. 상담선생님이 내 TCI 검사결과지를 깜빡하고 안 챙겨 오셔서 당황해하셨다. 아직 결과분석이 덜 끝났지만 이미 안 들고 오셨는데 뭐 다시 갔다 오실 수도 없고 어떡하냐. 별 방도가 없으니 그냥 결과지 없이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평소 궁금해하던 약물 복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선생님이 지난주에 봤던 내 TCI 검사결과와 그동안의 대화로 분석해 본 결과, 현재 나는 약물 복용이 전혀 필요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나더러 정신과에 방문해서 약 처방을 받을 돈으로 차라리 다른 곳에 돈을 쓰라고 했다. 지금 내 수준에는 그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약이 아닌 다른 것들을 약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조금만 힘들 때마다 '아 내가 정말 약이라도 먹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로웠을 거라고 했다. 이번 상담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약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긍정적인 자기 세뇌를 최소 1년 동안은 꾸준히 하라고 하셨다. 한두 달 가지고는 금방 리셋된다. 최소 1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도 알고 보면 모두 환경적으로 세뇌당한 것들이라고 했다. 이제는 스스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서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인 것 마냥 세뇌시키라고 했다. 추가상담이 필요하다면 다시 한번 더 상담을 요청하라고 하셨는데 더 이상 안 받아도 될 것 같아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상담을 끝내고 언니들과의 술약속에 갔다. 1차 히다리키키, 2차 제줏간, 3차 오늘와인한잔, 4차 오락실 노래방... 탕진했다. 확실히 여자들끼리 있으니 온통 남자 얘기다. 같이 했던 모임 이야기, 오늘 받았던 심리상담 이야기, 추후 여행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동거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언니 한 명은 동거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나 같은 경우 타인의 동거에는 관대한 편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누군가와 한집에 살게 된다면 사회체제가 인정해 주는 법적부부로서 함께 살고 싶지 애매하게 동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이 굳이 필요 없어서 안 한다는 오래된 동거커플들도 있긴 하던데,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안 간다.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굳이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다. 언젠가 헤어질 것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결국은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 일 아닌가 싶은 생각도 내심 든다. 그냥 함께 하는 게 좋긴 한데 결혼까지 할 정도로 탐나지는 않는 경우도 있겠다. 동거와 결혼의 차이를 두고 책임감을 운운하던데 결혼은 쉽게 헤어지기 힘들지만 동거는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지면 끝이라는 게 그 논리다. 그런데 법적구속이 없다고 해서 함께 살던 사람들이 쉽게 헤어질 수 있을까. 근데 뭐 헤어지려면 결혼하고도 헤어지겠지.


와인바에 처음 가봤다. 와인이 맛있다. 와인은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나로서는 가격에 따라서 맛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비싼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으니까 경험해보지 못해서 알지 못하는 것도 있고, 맛을 본다고 한들 과연 맛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한시 넘어서 헤어졌다. 두 사람 모두 택시를 타고 집에 갔고 나는 집까지 걸어서 갔다.


사람들과 더 같이 있고 싶어서 5차를 제안했지만 두 사람에게서 모두 이제는 그만 집에 가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짜 혼자 있기 싫다. 5차라니, 이 시간에 도대체 어디를 더 가야 할까. 술을 한잔 더 마시거나 아니면 24시간 카페에라도 가고 싶었다. 팔거천을 따라서 산책하며 한참을 걸었다. 걸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아 외롭다. 미칠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였다. 집에 와서 씻고 정신 차리고 일기를 쓴다.


5월 5일 금요일


영화 '맨 프럼 어스' 를 봤다. 방 한 칸에서만 1시간 30분 동안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람들이 계속 역사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나눠서, 배경이 전혀 바뀌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 한 공간에서 연기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영화보다는 오히려 연극 같다. 조니워커나 권총 등 적절하게 소품을 사용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대사들이 재밌다. 배역 중 누가 그랬더라. 성서에 나오는 말을 단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지 말라. 마지막에 진실을 알게 된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어버려서 결국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게 됐다. 독특한, 실험적인 영화도 볼만하네.


5월 6일 토요일


퇴근하고 북성로 카페에 글쓰기 모임을 하러 갔다. 글쓰기모임을 하고 나와서 카페 5분 거리에서 만들기 체험이 있어서 참여하러 갔다. 그런데 이건 뭔가 잘못됐다. 프로그램 시작하고 40분간 내 취향에 안 맞는 무슨 종교냄새 물씬 풍기는 배경음악 + 딱히 관심 없는 남미여행후기 (대략 워밍업) + 쉴 새 없이 찍어대는 카메라 셔터소리에 아 이런 건 줄 차마 몰랐다 잘못 왔다 후회하며 정신이 혼미해 가던 찰나에 간신히 워밍업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향오일을 손바닥에 한 방울 떨어뜨려서 그 향을 맡게 해 줬는데 그 향기를 맡으니 심신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매듭팔찌 만들기는 생각보다 내 적성에 잘 맞았다. 배운 걸 응용해서 금방 팔찌 여러 개를 뚝딱 만들었고 개중 하나는 아는 언니에게 선물해 줬다. 손으로 만드는 건 재밌고, 그 밖에 모든 것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는 히피인 척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애초에 자본주의 체제에 살면서 히피로 사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돈이 싫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돈에 환장하는 사람 같다.


5월 7일 일요일


독서모임에 갔다.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언제 어른이 됐다고 느끼시나요? 나는 가족들이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텀이 점점 길어질 때, 연락이 뜸할 때, 나를 내버려 둘 때, 어른이 됐음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낄 때, 의지할 데가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이 느껴질 때, 내가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됐구나 하고 생각한다. 평소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살았는데 질문을 듣고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인 질문이었고, 긴 생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내게 모임은 말이 하고 싶어서 가는 곳인 것 같다.


5월 8일 월요일


일하고, 퇴근하고, 카페에서 커피랑 빵을 사 먹고, 오래간만에 헬스장에 갔다. 몸이 관리가 안 돼서 엉망진창이다. 특히 살이 쪘다는 게 문제다. 살 빼는 게 뭐가 어렵냐고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래 뭐 덜 먹고 많이 움직이면 빠지는 게 살인데 그깟 살 빼기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이해가 안 갈 만도 하다. 분발하자.


저녁에 퇴근하고 간만에 친구랑 통화를 잠깐 했다. 친구가 내게 자신의 일상을 내게 조잘조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친구는 그동안 일기를 쓰지 않다가 오래간만에 썼다고 했다. 간만에 일기를 쓰면서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분석해봤다고 한다. 원래 말할 사람이 있으면 대화로 풀다 보니 굳이 일기를 쓸 생각이 들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일기를 많이 쓰게 되고 대략 그런 것 같다. 일상 기록도 기록이지만 결국 말을 못 해서 쓰는 게 글이기 때문이다. 일단 나한테는 그렇다.


혼자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혼자 살고 있지만 혼자 살까 봐 무서운 이 모순된 감정은 뭘까. 아무래도 '늙어서도 혼자일까 봐' 라는 전제가 깔린 감정인가 보다. 며칠 전에 모임에서 셰어하우스 이야기가 나왔다. 가볍게 농담 삼아 꺼낸 이야기 같긴 한데, 순간적으로 관심이 갔다. 굳이 가족, 애인,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필요하다면- 한집에서 동거동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사실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아직 단 한 번도 못 만나봤다. 그냥 막연하게 저런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또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 내용 없는 안부연락이었는데 어쨌든 반가웠다. 간만에 친구 카톡 프로필을 봤다. '육아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괴롭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 글만 봐도 알 것 같다. 카톡 프로필에 올라온 아이의 사진도 봤다. 사진을 보니 갓 태어나서 눈도 못 뜨던 게 엊그제 같던 아이가 참 많이도 컸다. 나는 내가 먼저 친구 아이의 안부 따위는 절대 묻지도 않는다. 내가 이 친구의 인생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15년간 알고 지낸 오랜 세월에 쌓인 가늘고 길고 은근한 친밀감은 차마 무시할 수가 없다.


그 뒤로 또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술을 마시고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친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진다. 많이 힘드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어쨌든 올해 연락은 처음인 것 같다. 굉장히 오랜만이다. 나를 반가워한다. 제발 연락 좀 하라고 한다. 알겠다고는 했지만 과연 내가 먼저 연락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늘 무슨 날인가. 가장 먼저 언급한 친구의 경우 평소 종종 연락을 하지만, 생전 연락 없는 두 친구로부터 같은 날 동시에 연락이 왔다. 뭔가 신기한 날이다. 얼마 전에 힘든 일이 있어서 (불과 며칠 전 일인데도 놀랍게도 그 힘든 일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바닥에 쭈구려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힘들 때는 사람 생각이 난다. 내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런가, 힘들고 외로운 사람에게 매몰차게 대하고 싶지 않다.


5월 9일 화요일


일하고 집에 와서 밥 해 먹고 치우고 씻고 일기 쓰고 잔다. 한동안 비소식이 없어서 조만간 날 잡아서 텃밭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상추가 얼마나 자랐으려나 궁금하다. 지난번에 갔을 때도 이미 먹어도 될 정도로 자라긴 했으니 이번에 가면 조금은 캐와도 될 것 같다. 대충 속아서 비빔밥에 넣어먹을까보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이다. 식당에서 매번 칠천 원씩 주고 사 먹는데 집에서 해 먹으면 조금 더 저렴하게 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채소는 텃밭에서 친환경으로 키운 아이들을 캐면 될 것 같고, 콩나물이랑 계란 정도를 사면 되겠다. 일단 밖에서 좀 사 먹다가 다음 주부터...


5월 10일 일수요일


새벽 5시 기상, 출근 전 헬스장 가기 성공했다. 출근시간에 쫓기다 보니 시간이 너무 짧다. 집중력을 발휘해서 바짝 하고 끝내자. 어쩌다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있는 거, 이왕이면 건강하게 살고 싶다.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아생전 늘상 강조하시던 말씀이 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 첫째는 몸, 둘째는 돈, 셋째가 사람이다. 역시 몸이 가장 중요하다. 더 이상은 이 몸으로 이렇게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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