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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7. 2023

2023년 5월 일기모음 3

5월 21일 일요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에 기상했다. 텃밭에 가서 상추, 케일, 쑥갓, 열무를 수확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갔는데 갈 때도 힘들었지만 올 때는 어깨 가득 짊어진 짐 때문에 진짜 죽다 살아났다. 집에서 키우던 무싹을 밭에다 옮겨 심었더니, 종자가 달라서 무가 안 될 거라는 인터넷 정보와 달리, 무가 되었다. 잎을 먹으려고, 흰 뿌리가 덜 자랐지만 일단 뽑았다. 간만에 엄마를 만났다. 내가 키운 상추, 열무, 케일, 쑥갓을 챙겨드렸다.


엄마가 사준 오리고기 특선. 감자옹심이를 처음 먹어보는데 입에 잘 맞다. 내가 고기를 구우니 서빙하던, 나이대가 이모뻘 정도 되는 직원분이 내게 "아가씨인데도 고기를 참 잘 굽네. 많이 구워봤나 봐. 남자친구한테 고기 구워주고 그러면 안돼. 버릇 나빠져." 라며 유쾌한 뉘앙스로 말을 붙였다. 단순히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보고 저런 대사가 줄줄 나오다니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그냥 웃었다.


5월 23일 화요일


퇴근 후 수성구 요리학원에 무료요리수업을 들으러 갔다. 오니기라즈와 레몬딜오이피클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오니기라즈는 너무 대충 만들었더니 잘랐을 때 단면이 예쁘지 않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오이피클은 조만간 집에서 다시 한번 만들어볼 생각이다.


5월 24일 수요일


퇴근 후 잠깐 밭에 들러서 물을 주고 루꼴라 씨앗을 뿌렸다. 감자가 참 잘 큰다. 주말에 캐간 상추를 벌써 다 먹어서 또 캤다. 주말에는 여행을 가니까, 내일과 모레 이틀 치 먹을 상추만 있으면 돼서 많이는 안 캤다. 요즘 내 최애음식은 상추다. 내가 직접 상추농사를 지어서 너무 좋다. 쑥갓도 캤다. 입만 똑똑 뜯어가려고 했는데 뿌리째 쑥 뽑혀버렸다. 사실 쑥갓은 향이나 식감이 내 취향이 아니다. 우동에 넣어먹으면 그나마 좀 먹을만하고 생식은 별로. 이왕 키운 거 일단 먹기는 하겠다.


텃밭이웃아저씨가 나더러 농사를 엄청 잘 지었다고 상추 싱싱한 것 좀 보라고 칭찬을 하셨다.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청상추는 양이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적상추만으로도 이미 양이 많아서 이건 다음에 조금 더 자랐을 때 수확하기로 하자. 케일은 확실히 무농약으로 키우니 벌레가 많이 먹긴 한다. 어디 갖다 팔 건 아니라서 외관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벌레에게 줄 건 주고 나머지를 건져도 먹을 양은 충분하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서둘렀다.


언니들과 저녁약속이 잡혔다. 주말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다. 팔달역에서 북구청역까지 삼호선을 이용해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고성동에 있는 쭈꾸미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근처 술집에서 치킨과 하이볼을 시켜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얘기와, 뭐 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말을 많이 하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1차에서 이미 잔뜩 먹어서 배가 차서 2차 때 식욕이 없어서 안주는 별로 안 먹었다. 언니들은 하이볼을 나는 얼그레이하이볼을 마셨다. 하이볼이 원래 이런 심심한 맛이었나. 도수가 별로 없는 것 같고, 술이라기보다는 음료수 같다. 편의점에서 파는 캔하이볼이 더 맛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요즘 거의 매일 술을 마시네. 사람을 만나는 만큼 술을 마시는 것 같다.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려면 마실 것이 필요한 법이다. 주로 저녁에 만나는데 그 시간에 커피를 마실 수는 없으니까 결국 술이다. 술을 마시면 그 자리가 편안해져서 좋다. 과음만 안 하면 문제 될 게 없다. 아, 돈이 나가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고성동은 골목이 예뻤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입구 쪽에 있는 피맥집이 끌려서 다음에 다시 한번 와보고 싶어졌다. 교통편이 좋다. 언니들과는 10시 20분쯤 헤어졌다. 삼호선을 타고 집에 와서 씻고 일기를 쓴다. 내일 미라클모닝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내일 퇴근 후 별다른 일정도 없는데 운동은 간만에 저녁에 해야겠다.


5월 31일 수요일


모임에서 만나서 친해진 언니 둘과 1박 2일 (27일, 28일) 부산 해운대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여자 셋이 아니라 다른 모임원들 (남자 5-6명가량) 도 포함하여 아홉 명 정도가 함께 펜션을 빌려서 놀기로 했는데,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무산됐다. 사유는 '참석하는 여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어쨌든 저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다.


펜션여행에 동참하겠다는 여자가 이 여자 셋 밖에 없었고, 이 여자 셋은 딱히 이성들에게 선호되는 대상들이 아니다. 굳이 펜션까지 가서 함께 놀 의미가 없다. 대략 그런 내용. 여행계획이 무산되고, 아쉬움이 남아있던 언니 한 명이 우리끼리라도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 모임을 통해서 펜션 여행을 한번 경험해 보나 했는데 어쩔 수 없게 됐다. 근데 차라리 이게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1. 장소 : 익숙하고 만만한 부산으로 정해졌다. 먹거리가 많은 해운대에 가자길래 그러자고 했다. 바다만 보이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2. 숙소 :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이건 금액면에서 저렴하기 때문에 내가 어필했다.


3. 이동수단 : 버스를 이용했다. 기차가 더 싸고 낭만도 있지만, 해운대로 곧장 가기에는 버스가 합리적이었다. 대구에서 해운대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기차의 경우 부산역에서 내려서 해운대까지 버스를 또 갈아타야 한다. 하지만 금액면에서 국밥 한 그릇값의 차이가 나며, 부산역에 내려서 해운대까지 관광차원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도 나쁘지 않... 일단 같이 움직이고 싶었기에 따르기로 했다.


4. 일정 :


1) 27일 토요일 9시 20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 11시 해운대 도착, 터미널 10분 거리에 잡은 숙소에 짐 풀기, 11시 ~ 3시 점심식사, 해운대해수욕장, 카페 가서 시간 보내기, 3시 숙소체크인, 5시쯤 나와서 저녁식사, 술 마시기 기타 등등


2) 28일 일요일 11시 체크인 전까지 각자 개인시간, 11시 ~ 점심식사, 해리단길 구경, 쇼핑, 카페, 5시 20분 해운대 출발, 7시 대구 도착


실제로 한 일은, 첫째 날은 해운대 도착, 숙소에 짐 풀고 나오기, 일본라면집 방문, 해운대해수욕장 걷기, 카페 가서 앉아있기, 숙소 가서 조금 쉬다가 나와서 고깃집 가서 고기 먹고 술 마시기, 오락실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고 놀기, 인형 뽑기 오락실 및 근처 매장 구경하기, 숙소 돌아와서 술 마시다가 씻고 자기


둘째 날은 새벽 다섯 시 기상, 혼자 해수욕장 가서 산책하기, 숙소 돌아와서 샤워하기, 테이블에 앉아서 물 마시고 여행사진 정리하고 휴대폰 만지기, 8시에 언니들 기상, 언니 한 명과 시장 가서 떡볶이, 김밥, 빵, 우유 사 와서 아침식사하기, 11시 숙소 체크아웃, 해리단길 가는 길에 카페 들러서 커피 마시며 앉아있기, 소품샵이랑 프리마켓 구경하기,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버스 시간 바꾸고, 밀면 한 그릇씩 먹고 정류장 가서 대기하다가 시간 맞춰서 버스 타고 대구 가서 하산 (해운대 3시 출발, 대구 대략 5시? 도착)


5. 비용 : 숙소 및 버스 예약, 음식값 계산 모두 언니들이 했다. 여행이 끝나고 단톡방에서 영수증을 공유하고 금액을 나눴다. 내 몫만큼 언니에게 계좌로 송금해 줬다. 숙소 33,000원, 버스비 13,300원*2, 식비 75,000원, 쇼핑+오락 20,000원 (총합 154,600원)


이십 대 중반 때 대전에 이사 간 친구를 볼 겸 친구 하나와 함께 찾아가서 셋이서 대전여행을 짧게 했던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누군가와 이렇게 여행을 해본 게 처음이다. 여러 가지 느껴지는 게 많아서 한 번씩 경험해 보기에는 괜찮지만, 아무래도 누군가와 하루종일 붙어있는 게 내 적성은 아닌 것 같다.


1. 첫째 날


해운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높은 건물들이었다. 언니 한 명이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이런 높은 건물들 속을 걷다 보니 '역시 시골에서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사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를 좋아한다. 예전에 한번 모임단톡방에서 아파트와 주택 중 어디서 살고 싶다는 질문이 나왔었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만장일치로 아파트를 선택했다. 마당에 텃밭이 딸린 주택에서 사는 게 내 로망이다. 높은 건물이 신기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첫끼로 류센소에서 라면과 만두를 먹었다. 라면 한 그릇에 기본 만원 이상이고, 만두도 한 접시에 6천 원이라 한 개에 천 원이 훌쩍 넘는다. 메인요리만으로도 배가 불러서 만두는 좀 사치였던 것 같다. 맛은 괜찮은 편이다. 나는 소금라면을 먹었다. 셋 모두 메뉴가 다 다르다. 소금라면에 식초를 넣으면 맛이 더 좋다고 하길래 뿌려서 먹어봤더니 진짜였다. 국물에서 은은하게 상큼한 맛이 났다. 국물을 한 모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 마셨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 해수욕장에 가서 바닷가를 걸었다. 날이 더워서 오래는 못 있고 사진만 조금 찍고 카페로 향했다. 바닷가에 돗자리 펴고 앉아서 태닝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랐지만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뭐든 혼자 하는 게 익숙한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이었으면 이것저것 계획하고 실행했을 것 같다. 뭐든 남과 같이 하는 건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조율해야 하는 과정이 귀찮고 번거롭다. 그래서 함께 하는 일에서는 실행력이 약해지는 편이다. 모래성이 인상적이었다.


까사부사노에 갔다. 크림레몬샷을 주문했는데 주문이 잘못 들어가서 그냥 레몬샷이 나와버렸다. 계산서를 보니 레몬샷으로 계산되었길래 (크림레몬샷 4,000원, 레몬샷 3,000원) 그냥 마시기로 했다. 크림이 없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처음 마셔보는 메뉴라 잘 몰라서 주문을 하면서 굳이 아이스로 달라고 말을 붙였는데, 직원분이 이게 아이스 개념이 아니라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애피타이저 개념의 음료라는 둥 어쩐다는 둥 설명을 붙이시길래 잘 모르겠고 일단은 달라고 했다.


웬일인지 커피 생각이 별로 안 나서 커피 대신 다른 음료를 마셔보고 싶었는데 개중 상큼하고 입이 깔끔할 같은 레몬이 끌렸다. 음료를 받아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얼음은 없고, 따뜻하지는 않지만 막 차갑지도 않았다. 착즙 한 레몬에 시럽을 섞은 달고 신 음료수 같았다.


컵 입 닿는 부분에 설탕을 잔뜩 발라놨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칵테일을 제조할 때 종종 쓰는 방법으로 알고 있다. 혀를 날름거리며 핣아먹게 해서 사람을 야하게 보이게 한다나 뭐라나. 달고 맛있어서 컵을 빙 돌려가며 남김없이 다 핥아먹었다. 맛이 좋았다.


카페를 나와서 주변을 둘러봤다. 내부가 어떨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테리어의 오락실이 눈에 들어와서 일단 들어가 봤다. 일층에는 소품이나 포스트 등으로 꾸며져 있고, 이층에는 인형 뽑기 기계가 잔뜩 있었다. 기계 속 인형이 탐나기도 했고, 재미있을 것도 같아서 한번 해봤다가, 순식간에 천 원을 날렸다. 한번 하고 나니까 더 하기가 싫어졌다.


숙소 가는 길에 아직 짓고 있는 높은 건물이 보인다. 널리고 널린 게 높은 건물인데 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해운대가 관광지로써 왜 인기가 많은지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혼자 여행을 한다면 해운대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내 취향은 아니다.


관광지다 보니 먹거리가 몰려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여럿이서 와서 술 먹고 놀기에는 괜찮을 수도 있겠다. 예전에 부산에 살던 지인을 만날 겸 부산에 당일치기 여행을 하러 왔던 적이 있다. 그때 지인의 추천으로 송정해수욕장을 갔었던가? 지인이 내게 해줬던 말이 생각이 난다.


"해운대는 타지 사람들만 가는 곳이야. 부산에서 진짜 바다가 예쁜 곳은 송정이지, 해운대가 아니야. 근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해운대는 사람만 많고 바다가 예쁘지 않아."


오후 3시에 체크인했다. 숙소가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샤워장도 편하고 좋아서 아침저녁으로 꼬박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다 했다. 체크인하고 조금만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나는 일단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씻었다.


오반장에서 갈매기살과 맥주를 먹었다. 언니들이 구워주는 고기와 말아주는 소맥을 날름 받아먹기만 했다. 고깃집을 나와서는 오락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자카야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냥 숙소에서 마시자고 내가 의견을 냈다. 방 안에서는 취식을 못하게 해서 방 밖 공용테이블에서 술과 음식을 먹었다. 와인을 잔에 가득 채워서 3잔 정도 마신 것 같다.


마지막에 언니가 건네주는 엄청 독한 보드카를 한 모금 정도 받아마셨다. 나는 술을 더 이상 못 마실 것 같아서 도중에 방으로 들어가서 일찍 잠들었는데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인지 모르겠다. 언니들은 더 마시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와서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더 나누다가 새벽 한시쯤에 잤다고 했다. 술을 잘 마시는 언니 한 명은 엡솔루트?라는 이름의 독한 보드카를 거의 혼자서 한병 다 마셨다. 술을 마시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찍은 사진들을 받았다. 평소 내 사진을 거의 안 찍는데, 이번 여행에서 동행자가 없었으면 사진 한 장 안 남았을 뻔했다. 막상 남은 사진들을 보니까 좋다.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언니들을 찍어줄 생각을 전혀 못 했다.


2. 둘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혼자 해운대해수욕장을 산책했다. 해운대시장도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공용테이블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거나 여행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언니들은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언니 한 명은 숙취로 일어나기 힘든 상태라 더 주무시게 놔두고 나머지 한 명과 같이 밖에 나가서 떡볶이, 김밥, 빵, 우유를 사 와서 공용테이블에 펼쳐놓고 먹었다.


11시에 체크아웃했다. 숙소를 빠져나와서 해리단길로 향했다. 카페 갔다가, 해리단길 소품샵 및 프리마켓을 구경하고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샀다. 다들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버스시간 앞당겨서 예약 바꿔놓고, 밀면 한 그릇씩 하고, 시간 맞춰서 버스 타고 대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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