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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Apr 01. 2024

2024년 4월 1일

백수 1일차. 휴직이지만 복직할 확률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퇴사를 한 셈이니 백수라고 생각하겠다. 한 직장에서 장장 8년을 일했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될 것 같다. 평소처럼 7시에 일어났다. 그동안 아침마다 일어나는게 고역이었는데, 내가 아침잠이 많아서도 아침마다 이유를 모르게 몸이 아프고 기분이 나빠서도 아니었다. 그저 출근하는게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유없이 몸과 마음이 안 좋고 쉽게 일어나지지 않았다. 출근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이렇게 잘도 벌떡 일어나진다. 밖에 나가기는 싫고, 그동안 일하느라 소홀했던 집안일을 좀 하는게 좋겠다. 그리고 학습지를 풀던가 책을 읽던가 해야겠다. 일단 아침식사로 우유에 씨리얼을 말아먹고 유튜브 실시간 뉴스를 봤다. 정치얘기, 밥상물가 인상얘기가 다다. 별로 재밌는 뉴스거리가 없다.


남자친구 출근길을 배웅해줬다. 덕분에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했다. 밖에 나가면 늘 돈이 쓰고 싶어진다. 카페에 들러서 테이크아웃 음료를 사마시거나 편의점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사고 싶다. 소비욕구를 억누르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요즘 가장 관심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이다. 유튜트에 짧게 짧게 올라온 사연 몇가지를 연달아서 봤다. 계속 보니까 지루하다. 아무래도 이건 혼자 보는 것 보다는 남자친구랑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봐야 재밌는 것 같다. 스케쥴 노트를 정리했다. 앞으로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을 끄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디오가 필요해서 역시나 또 유튜브에 접속했다. 예전에 즐겨듣던 돌비의 공포라디오를 듣는다. 재밌는 사연이 없어서 한참을 고르다가 겨우 하나 골랐다. 시청자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줄여서 시들무라는 이름의 채널이 있다. 동네꼬마라는 닉네임을 가진 남자가 단골 게스트로 등장해서 본인이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특히 재밌다. 동네꼬마는 직업이 중고차 딜러인데, 직업 특성상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게스트가 목소리에 힘이 있고, 무서운 이야기를 틀어주는 채널답게 잔잔하게 틀어놓은 음침한 호러 음악도 어쩐지 내 취향이라 다른걸 하면서 틀어놓기에 좋다. 사실 그렇게까지 막 재미있지는 않은데 그냥 뭐라도 틀어놓고 싶어서 틀어놓는다. 사연을 들으면서 지난달 가계부를 정리하고, 카톡을 조금 하고, 일기를 쓴다. 그동안 글쓰기를 소홀히 했는데 의식적으로라도 꾸준히 일기를 써야겠다. 글을 잘 써야겠다는 압박은 내려놓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쓰고 싶은걸 쓸 생각이다.

 

지난달 식비가 50만원을 넘어섰다. 40만원 정도라 생각했는데 다시 계산해보니 어마어마하다. 점심 때 계속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수시로 카페 음료를 테이크아웃한게 영향이 큰 것 같다. 사실 배달음식이 마냥 좋았던 것도 아니다. 쓸데없이 양이 많고 비싸고 포장용기 쓰레기가 자꾸 나와서 싫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게 불편하고, 식당에 가서 먹기에는 점심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편의점 음식은 너무 질리고,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앞으로 당분간 출근을 하지 않을 것이니 이렇게 식비가 많이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가성비 좋게 집밥을 자주 해먹을 생각이다. 외식을 하고 싶을 때는 종종 남자친구 찬스를 쓰는게 좋겠다. 일단 이번달만큼은 집밥 먹는 것에 길들여져야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남자친구에게 평일 저녁을 꼬박꼬박 잘 챙겨줄 생각이다. 대충 어떤 음식들을 해먹을지 구상을 좀 해봐야겠다. 이따가 일기 다 써놓고 요리책을 좀 찾아볼 생각이다. 중고서점에서 싼 값에 잔뜩 사놓고 아직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요리책이 집에 여러권이다.

 

어제 문득 '언제쯤이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돈 걱정이 많다. 내가 원해서 일을 그만두는거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일을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돈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사실 내게는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최근의 퇴사와 별개로 이 불안은 늘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지금 내 형편에 이 돈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당장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절약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번달부터 근로 수익은 뚝 끊기지만, 내게는 그동안 벌어모은 돈에 대한 자본 소득이 있고, 내일 국장님 만나서 대화 잘 나누고 휴직 급여도 신청할 것이다. 경제적 공동체로서 함께 인생을 꾸려나갈 남자친구도 곁에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조금은 내려놔도 될 것 같다.

 

하고 싶은게 많다. 블로그도 다시 하고 싶고, 인스타그램도 해보고 싶다. 계정은 있고 이것저것 눈팅하느라 수시로 들어가보기는 하는데 내 게시물은 없다. 지난달부터 구몬 일본어 학습지를 풀기 시작했는데 지난달 학습지 진도는 진작에 다 뺐고, 이번 달 학습지를 기다리고 있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오래 전에 12개월 할부로 100권 짜리 영어학습지를 사다놨었는데 초반에 잠깐 하다가 제대로 안 하고 계속 방치해뒀었다. 쉬는동안 영어학습지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일단 오늘 할일은 책방청소, 옷정리, 설거지. 영어학습지를 풀려고 했는데 지금은 집중이 안 돼서 못 하겠다.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효과가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꼭 헬스장 가야지 마음 먹었는데 막상 오늘 되니까 집 밖에 나가기가 싫다. 이따가 오후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일단 다른 일들 하면서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려보자. 이제 청소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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