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 잿빛극장
두 싱글 여자의 투신자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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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의 '잿빛극장' 을 읽었다. 작가의 네임벨류와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구입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기대와는 달리 술술 잘 읽히지가 않아서 완독까지 상당히 애를 먹었다. 잘 읽히지 않으면 안 읽어도 될 텐데 돈 주고 산 책이랍시고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끝까지 다 읽었다. 이 책은 소설가 '나' 가 과거에 익명의 두 여자가 함께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다가 기어이 그것을 소설로 써내기에 이르렀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연극화해 내는 과정을 다시 소설로 써낸 살짝 난해한 내용의 소설이다. 일단 나는 대충 이런 이야기로 이해하고 읽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도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를 구분해 낼 수가 없었다.
아무런 목차도 없이 그저 세 가지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이 나에게는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이름조차도 없이 주인공인 소설가 '나'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알파벳으로 지칭해서 이것 역시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을 헷갈리게 해서 내용 이해와 가독성을 떨어뜨리게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소설가 '나' 를 이 책의 저자인 온다리쿠로 이해하고 읽었지만, 계속 읽다 보니 과연 소설가 나가 온다리쿠 자신이 맞긴 한 건지, 설령 맞다고 한들 온다리쿠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이 맞긴 한 건지 그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시점을 알아야 한다. 이 소설은 별도의 목차 없이 0, (1), 1, 이렇게 세 가지 시점으로 진행된다. 내게는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이 너무 생소하고 불편했으며, 내용 역시 불편했다. 그냥 모든 게 다 불편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휘 중에서 이 '불편' 이라는 단어 외에 이 소설을 읽은 내 감상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어휘가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꾸역꾸역 다 읽어낸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단 돈 주고 산 책이라 기필코 완독 하리라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내심 결말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0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잿빛극장' 을 집필하는 나, 즉 소설가의 일상
(1) : 원작소설 '잿빛극장' 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과정
1 : '잿빛극장' 의 두 주인공인 T와 M이 대학에서 처음 만나고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여 각자 살아가다가 어느 날 재회해서 동거를 하다가 중년이 되어서 함께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과정 (한 명은 돌싱, 한 명은 애초에 싱글)
나는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어쩌면 이 이 소설 속의 여자들에게서 내 우울하고 절망적인 미래를 봤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국은 나도 미래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평소 외면하고 싶었던 내 어두운 내면을, 이 책이 자극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기 때문에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불편해하면서도 공감 가는 단락들은 분명히 있었고 특히 어느 단락에서는 나 자신을 대입해 보고 다소 과한 감정이입을 하며 숨이 턱 막히기까지 했으니까.
사실 나는 이왕이면 인생을 조금 더 가볍고 유쾌하게 바라보고 싶다. 어쩌다 태어나서 적당히 욕구하고 생존하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게 인생인데, 굳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괜히 무겁고 진지해질수록 결국은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인생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하면 당연하게도 나쁜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사는 게 즐겁고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 자살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소설가 '나' 는 두 여자가 인생을 비관하여 자살했다고 감히 속단하지는 않는다. 그저 소설가 '나' 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총동원하여 그 자살의 원인을 짐작해 볼 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종료되는 순간까지도 두 여인의 자살 원인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상의 문제, 이룰 수 없는 사랑, 권태,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순간적인 기분에 의한 충동, 그게 뭐가 됐든 모든 가능성을 상상해 보고는 거기서 멈춘다. 중간중간에 독신여성으로서 공감 가는 부분이 약간은 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시선이 너무 진부한 것 같다. 근데 또 온다리쿠의 나이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들의 살아생전의 일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 이유에 대해서, 소설가 '나' 가 얼마나 상상하고 또 상상했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비록 타인의 죽음을 가지고 글을 쓴다마는 그 죽음을 절대로 가십거리로 소비하지는 않겠다는 마음, 그들을 애도하는 마음, 소설가의 그 마음이, 독자인 내게 충분히 와닿았다.
이 책은 흥미를 유발하는 즐거운 내용의 책이 아니다. 나 역시도 굉장히 힘들게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굳이 꼽자면, 타인의 감정, 생각, 일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죽은 두 여자의 살아생전 일상 이야기만큼이나 소설가 '나' 를 둘러싼 일상과 깊은 사념도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읽고 생각할 거리가 충분하지 않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