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재료 없이도 단 5분 만에 뚝딱 완성되는 훌륭한 일품요리, 인스턴트 라면.
발상지는 일본이라는데, 정작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 일본 라면에는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다. 건면에 액상스프(또는 가루스프)만 겨우 들어있는 정도라 부수적인 재료가 없으면 짠 국물에 몸을 담근 쓸쓸한 면발만 호로록 삼켜야 하기 때문이다. 건더기 스프의 부재는 의외로 크다.
그런 연유로, 우리 집에서 애용하는 것은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이다.
5개들이 한 팩에 399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그 어떤 마트에도 들어와 있는 강력한 공급망. 게다가 누가 끓여도 실패하지 않는 맛이다. 맵찔이 남편조차 '집에 없으면 불안하다'며 떨어지지 않도록 구비해 두는 신라면. 얘는 한국을 좀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안에 약간 한국인 바이브가 있다. 내지는 내가 교육을 잘 시켜 그리 변했던가. 나는 아마도 애국자가 아닐까. 그런 의미로 정부는 내게 무궁화 훈장을 쿨럭쿨럭.
신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집에선 항상 다진 마늘을 넣어 풍미를 살리고 고춧가루를 좀 더 넣거나, 돼지고기나 양배추를 넣어먹기도 한다.
그중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낫또를 넣은 신라면.
보통은 그냥 라면 끓이듯이 하다 나중에 낫또만 넣는데, 오늘은 조금 호화롭게 참기름 약간에 돼지고기와 다진 마늘, 라면 스프를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였다.
사람마다 면발 취향은 제각각이지만 나는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한다. 씹는 맛이 좋고, 더 고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은 스프가 넘치지 않을 정도의 센 불에 단시간 끓이는 걸 선호한다. 어느 정도 면이 풀어지면 계란과 숙주나물을 얹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단백질에 섬유질이 추가된 고오급 라면이지만 여기에 낫또까지 올려주면 한층 더 특별한 라면이 된다.
열을 가하지 않고 생식을 하는 것이 낫또의 가장 효과적인 섭취법이라 하나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장건강에 도움이 되는 낫또균을 내 손으로 루비콘강 건너편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안녕, 낫또균. 잘 가, 낫또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조금만 끓였다)
낫또 신라면의 좋은 점은, 매콤한 신라면에 콤콤한 발효콩 특유의 향미가 섞여 마치 청국장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두부와 대파, 애호박을 넣어 뜨끈하게 끓인 청국장 국물을 흰쌀밥에 척하고 부어 호호 불며 먹던 날들이 있었다. 다른 반찬 없이도 국대접에 밥을 두어 번이나 다시 채워먹고는 티브이 앞으로 가 야무지게 귤까지 까먹던 그 겨울날들을 떠올리며, 오늘 내가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은 낫또를 넣은 신라면이 아니라 청국장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렵게 왔으니 쉽게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벌써 10년도 넘게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왔을 때처럼 혼자 훌훌 떠날 수도 없게 되었다. 엇비슷한 재료를 얼렁뚱땅 때려넣고 그리운 맛의 흉내만 낼 뿐이던 나의 요리도 언젠가 이국땅 우리 집에선 '엄마의 손맛'이라 불리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