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클럽과 싸이월드의 시대를 살았던 나의 친구들에게
"앞으로의 시대는 정보가 돈이 된다."
때는 2000년대 초중반, 중학교를 다닐 때 사회과목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다. 우리는 이것을 정보화시대라고 불렀다. 지금와서 생각할 때 한 가지 아쉬운 건 "무슨 정보"가 돈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었다. 그때는 그런 걸 궁금해할 여력은 없었다.
그저 시험에 나오는 내용을 달달 외울 뿐이었다.
정보가 돈이 된다는 내용이 교과서에까지 실려서 그럴까? 날이 갈수록 정보는 많아졌다. 사람들은 싸이월드에서 정보를 만들었고 또 교환했다. UCC가 유행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폰이 나왔고 스마트폰 기반의 페이스북부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까지 넘어왔다. 정보의 유통채널 자체가 변했다.
이러한 거대한 혁신과 변화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기회를 찾고 성공방정식을 써내려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유튜버나 인터넷방송 스트리머가 빌딩을 사고, 신고가로 고가의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이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니게 될 정도로 흔한 이야기가 됐다.이들은 주로 정보화시대에는 정보가 돈이 된다는 식의 교과서 내용을 달달 외운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소수가 독점하고 그 정보를 정해진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강의나 도제 방식으로 유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방송 3사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정보를 독점적으로 유통하고 그것을 사람들이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의 언론지형도 이제 끝났다.
데이터 스트리밍을 통해 정보의 진입장벽이 무한에 가깝게 낮아졌다. 개인이 필요하면 서울대나 하버드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 영상을 찍어 자신의 지식을 전세계 사람들이 보는 유튜브에 올릴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벌이나 자격증이 갖는 위상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학벌과 자격증은 성실성이나 특정 분야의 기능에 대한 증명으로서 기능했다. 이제는 학벌이나 자격증 같은 게 없어도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많아졌다. 유튜브 콘텐츠, 개인 SNS 팔로워수, 쌓아놓은 글이나 영상 등. 실제로 이런 것으로 관련한 스타트업이나 심지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제는 나의 쓰임을 고용주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전세계가 연결된 플랫폼과 채널은 나의 정체성과 내가 가진 가능성을 P2P로 사람들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게 해준다. 고용주가 수요자를 만나 수요를 창출하고 직원이 생산의 수단으로서 맡겨진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시대가 변했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용이 되는 것이 어려울 뿐, 개천에서는 아직도 용이 나오고 있다. 단지 그 "용"이라는 게 예전처럼 "사법고시 패스"나 "행정고시 패스" 같은 게 아닐 뿐이다. 시대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하면 기회가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변화의 정도가 큰 시대에는 그 기회 역시 크다. 단지 지나간 과거의 관점으로 현실을 보면 기회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냥 노는 청년"이 260만에 달한다고 한다. 20대, 30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길을 잃었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중간쯤에 있는 나와 같은 30대, 40대는 급변하는 시대가 불안하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기존의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는 변혁의 시대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위기였지만 보통사람들에게 언제나 기회였다.
1890년대 구한말 조선은 세계질서에 편입되면서 왕정은 붕괴되고 사회는 혼란했지만 신분제가 폐지됐다. 역관집 노비였던 개똥이는 우연히 서양의 언어를 일찍부터 접해서 영어를 할 줄 알게되었고, 그는 인생을 바꿨다.
반면, 대대손손 양반가를 지내온 명문가의 외아들인 이도령의 아버지는 영어교육에 대해 오랑캐의 것이라며 결사반대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선 사서삼경을 달달 외워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조선이 건국되고부터 50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성공을 보장했던 공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도령아, 쓸데 없는 거 자꾸 하지 말고 (사서삼경) 공부나 해!"
어떤가? 어디서 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사서삼경이 맞다 틀리다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할 건 개똥이는 시대에 맞는 선택을 함으로써 삶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많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은 아버지의 반대로 돈을 훔쳐 가출을 해서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었다면, 지금의 현대그룹은 없었을 것이다. 1세대 프로게이머인 임요환은 부모님의 강요로 입시를 위해 재수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많다.
"쓸 데 없는 거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시대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세상은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을 요구한다. 돈도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고, 사람도 새로운 흐름에 모여든다. 과거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답이 없고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AI와 로봇이 모든 노동을 대체할 것 같고, 노동을 하지 못하면 돈을 못 벌고, 그러면 원하는 삶을 못살고 가난하게 살 거라는 생각의 흐름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변화가 무조건 좋다고 옹호하는 건 아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시킨다. 모든 문제는 양면이 있다. 그렇지만 좋든 싫든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기회를 포착하느냐, 지금은 기회조차 없다고 불평하고 포기할 것이냐? 그 사다리는 과거의 것이고, 기회라는 것도 지금은 그 개념이 달라졌다.
그래서 뭘 하라는 건데?
AI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한다. AI는 개성이 없다. 정체성이 없다. 모든 사람의 질문에 똑같이 답할 뿐이다.
나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직책, 직무, 직업"이라는 낡은 패러다임, 노동력이라는 생산수단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나만이 가진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물리법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콘텐츠다.
정체성을 가시적인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라는 원석을 망치와 정으로 깨고 다듬어야 한다. 조각가가 조각을 하듯 원석을 깨고 다듬어서 나만의 걸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삶과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지난한 고민과 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조각을 예쁘게 완성시킬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까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기회는 있다.
아니, 크다.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돈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앞으로는 이 두 가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정체성을 가진 독창적인 콘텐츠가 재산이 되고 매력적인 페르소나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사회이다.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고 생산성의 증대로 자원의 희소성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 상상보다 더 급격한 변화에 사람들은 이 격변의 시기에 본능적인 불안에 휩쌓여있다. 마치 구한말처럼, 남북전쟁 이후처럼, IMF 전후처럼.
지금부터라도 나를 탐구하고 바라보고 찾아내야 한다. 나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답이 없어보이는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의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끝까지 봐준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