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PD의 커리어 고민
최근 채용 사이트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콘텐츠 업계에는 아직 AI가 본격적으로 침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웬만한 대기업에서도 AI 관련 역량을 필수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PD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흔히 편집이 주된 업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휴먼 터치’가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출연자와 소통하며 그들의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일, 카메라·오디오 등 다양한 스태프와 협업하여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일 등이 있다. 이런 부분은 아직 AI가 대체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나 편집의 영역은 빠르게 AI가 침투하고 있다.
1. 생성형 AI 활용 기반 이미지 및 영상 제작 경험이 있으신 분
2. 영상 콘텐츠 연출 및 제작 경험을 보유하신 분
3. 3D 콘텐츠 연출 및 제작 경험을 갖고 계신 분
4. 생성형 AI를 활용한 AI 영상 포트폴리오 제출 필수
5. 1분 이상의 영상/ 팀 작업의 경우 역할 및 기여도 기재 필수
최근 모 대기업에서 AI PD 직군을 채용하며 내건 자격 조건이다. 필요 역량으로는 Midjourney, Runway, Stable Diffusion, Flux, Comfy UI 등의 생성형 AI 툴이 있다. 이 공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다. 첫째, 대기업조차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점. 둘째, 이를 대비해 취준생 및 업계 종사자들이 AI 역량을 갖추려 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재작년, 좋은 기회로 AI PD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과 구성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내 역할은 전파진흥원의 지원사업에 제출할 사업계획서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이었고, 실제 프로그램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AI가 콘텐츠 제작에 관여한다'는 개념은 제작자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익숙하지 않았다. AI를 활용하겠다는 방향은 정해졌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 것인가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기획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이 상상에 의존한 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구현 과정은 남아 있는 제작진의 몫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후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함께했던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AI PD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매우 고된 작업이었다고 한다. AI PD가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 대학의 AI 연구팀과 협력해 학습을 진행했으며 실패한 날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특집으로 다뤄볼 생각이다.
이제 콘텐츠 업계에서도 AI의 침투를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시대가 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년 차 PD 경력에서, 나는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AI가 PD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걸까?"
그러나 질문이 잘못됐다. "AI를 다룰 줄 아는 PD가, AI를 다루지 못하는 PD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PD의 역할은 단순한 편집자에서 AI를 활용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PD는 단순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조종하고 최적화하는 ‘AI 네비게이터’가 되어야 한다.
AI는 빠르게 영상을 편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감성을 담을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 시대에도 살아남는 PD가 되기 위해선, 기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만의 스타일, 그리고 인간적인 감성을 콘텐츠에 녹일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모두가 AI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AI가 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AI가 자동으로 숏폼 영상을 제작할 수 있지만, 그 영상을 ‘어떻게 편집하면 더 감동을 줄 수 있을까?’는 인간의 영역이다.
앞으로 AI 친화적인 PD가 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을 이 브런치를 통해 공유하려 한다. PD라는 직업은 시청자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물론, 창작물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성격이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2025년, AI의 범람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시리즈를 함께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