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첨지의 아이러니

by 신하연

이 세상 최고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인력거를 타는 사람도 많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아내에게 줄 설렁탕도 샀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 보니 아내가 죽어 있었다.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과 내용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 더 커다랗고 중요한 아이러니는 김 첨지의 감정선에 놓인다.

사는 건 각박하고 힘이 드는 일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다. 성격은 괴팍해지고, 아내에게는 잘해주기 어렵다. 아내가 아프니 일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말 한 마디 따뜻하게 해주는 게 어려운 이유는 자존심에서도 그럴 것이고, 말을 사납게 하다 보니 다음 말을 부드럽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좋은 날이었다. 분명히 어느 때보다도 돈이 잘 벌렸다. 그래서 설렁탕을 사서 갔는데, 설렁탕을 먹을 아내가 죽어 있었다. 그가 느낀 강렬한 슬픔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완전히 좌절되어 버린 것에서 빚어진다. 이 희망의 몰락이야말로 서사를 비극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주 대단한 영웅이나 왕이 몰락하는 과정도 슬픈 일이지만, 영세한 소시민이 삶에 작은 희망을 품었다가 그게 사라지는 것도 큰 비극을 느끼게 한다. 사는 건 힘이 드는 일이고 그 삶의 비극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중첩을 통해서가 아니라 몰락을 통해서이다.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아주 나쁜 일이 있을 수 있다. 나쁜 일만 겹치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한 절망은 좋은 일이 파괴될 때 온다.

김 첨지는 삶에 희망을 품었다. 거대하기는 커녕, 인력거에 손님을 조금 더 태웠다고 품은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가 느낀 슬픔은 겨우 피워낸 꽃 한 송이가 짓밟히는 느낌과 같다.

풍만하게 핀 꽃이 시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들처럼 번듯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아주 소박한 꽃 한 송이를 피워냈는데 그것마저 가차없이 망가지고 만다. 삶이 주는 아이러니라는 게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주 작은 희망마저 짓밟힌다. 태어나서 수많은 꿈을 꾸고 살아보려고 애쓰다가, 좌절을 겪고 삶을 비탄한다. 사람은 그런 아이러니를 알고서야 삶을 직시하게 된다. 아주 비정한 카드도 삶이 주는 것 중에 하나였단 걸 인식하고, 삶이란 게 희망으로 가득하지는 않지만 그런 방식으로 삶으로서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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