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씨. 진술을 하시려면 좀 더 자세히 해 주시는 게 좋았을 뻔했습니다. 최근에 정은안 씨가 저지른 투약사고가 크게 한 건 있었다구요?”
차인선에게 대충 이야기를 듣고 온 유영선은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이만식의 질문에 대꾸했다.
“병원 입장에서 형사님들께 말씀드리기 좀 민감한 사안이긴 한데, 이왕 이렇게 됐으니 숨길 수도 없네요.”
영선은 골치가 아픈 듯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후 콧등 밑으로 약간 내려간 안경을 고쳐 썼다.
“일주일 전쯤 정은안 선생님이 투약사고를 일으켰어요. 혈압이 낮은 사람한테 주는 승압제를 과다 투여하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었어요. 본래, 환자분이 다른 지병과 합병증도 많이 있던 상태였고 약물도 2시간가량만 과다 투여되다가 다시 정상적으로 용량을 조절했기 때문에 꼭 그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족 측에서는 약물 과다 투여 때문에 환자가 사망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의료소송도 불사하겠다면서 중환자실 앞에서 행패를 부린 적도 있고요. 그래서 당자자인 정은안 선생님이 스트레스가 많았을 겁니다.”
“환자 사망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얘기네요?”
“네..그런데 사실은 상황이 좀 더 복잡해요. 사실, 투약사고를 내고 나서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은안 샘이 마지막에 실수로 약용량을 과다하게 세팅해 놓고 다른 동료가 실수한 것 마냥 덮어 씌웠거든요.”
“덮어 씌워요?”
“네, 사고가 일어난 다음, 자신이 마지막으로 약용량 세팅을 했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투약 사고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 무서워서 말을 못 했나 봐요. 그것 때문에 누명을 쓴 동료 간호사는 많이 힘들어했고요.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걸 보면, 그걸 옆에서 지켜봤던 은안 샘 마음도 말이 아니었을 걸로 생각되네요. 오죽하면, 죽기 전날 저한테 다 털어놓으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그 사고로 때문에 우울증 치료 같은 것도 받았나요?”
“글쎄요. 그건 개인적인 사안이라, 잘은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부서장으로서 많이 미안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잘 이끌어주고 도와줬어야 하는데......흑..”
“저.. 진정하시고..여기 휴지요.”
영선은 눈물을 훔치며 부하직원에게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막지 못했다는 후회와 깊은 책임을 통감하는 듯 시시때때로 기도를 했다. 참 롤러코스터 같이 감정 변화가 자유자재인 사람 같았다. 조금 전 되도록이면 사건의 빠른 처리와 수습을 부탁하던 냉철한 부서장의 모습과 이른 나이에 절명해버린 부하직원을 애도하는 지금의 모습은 간극이 너무 커 보였다. 하지만 조사 막바지에는 역시나 사건의 빠른 처리를 부탁하는 모습만은 일관성이 있었다.
“세탁실에는 가 봤어?”
“네, 오픈이 대략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라고 합니다.”
“그럼, 정은안은 몇 시 정도에 봤데?”
“세탁실 직원은 정은안을 못 봤다고 합니다. 워낙 소음도 심한 곳이고 사람이 드나들어도 그냥 병원 직원이려니 하면서 신경을 안 쓰는 곳이기도 하구요. 누가 문 열고 들어와서 주머니 하나 가져간다고 해도 딱히...”
“그 주변 CCTV는?”
“없습니다.”
“흠...그래. 적어도 사망 추정 시각은 5시 30분에서 6시 30분으로 좁혀졌군. 다음 참고인은?”
“30분 이내로 올라올 겁니다.”
다음 참고인은 신예희였다. 15년째 병원을 다닌 책임간호사로 호리호리한 체격에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빳빳하게 다린 유니폼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딱 봐도 간호사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정신없이 새벽에 나온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 바쁜 와중에도 화장은 어떻게 다 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빈틈없이 자신의 모습을 검열하는 사람 같았다.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평소, 정은안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앞선 직원들 말로는 말도 별로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맞아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용하고 쓸데없는 말 안 하고.. 오히려 좀 답답한 편이었죠.”
“답답하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입니까?”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뭐 물으면 속 시원하게 대답 안 하고 속으로 꿍 하고 있다가 나중에 대답하는 사람이요.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전후 사정 밝혀지면 사람 괜히 미안하게 만들고.. 뭐... 좀 대하기 쉬운 타입은 아니었어요.”
“정은안 씨가 많이 소심했나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중환자실 사람들이 다 착해요. 그래서 은안 샘 힘들 때 많이 도와주려고 애쓰고, 실수도 덮어주고, 대화도 많이 하려고 했는데 그걸 본인이 잘 못 받아들이더라고요. 보니까 약간 우울증도 있는 것 같고...”
“정은안씨가 우울증이 있는 것 확실한가요?”
“뭐, 그걸 대놓고 물어봐야 아나요? 얼굴이 매일 울상인데..저야 자세히는 모르죠.”
“같이 근무하신 적은 없나요?”
“은안샘같은 신규들은 거의 프리셉터랑 붙어서 근무해요. 은안 샘 독립하고 나서는 거의 이브닝,나이트만 했구요. 저는 데이 근무만 주로 하기 때문에 인계할 때 약간 얼굴 보는 정도죠.”
“최근에 정은안씨 관련 투약사고가 있었다고 하던데 보호자들이...
구인호가 투약사고 관련 보호자들을 채 언급하기도 전에 신예희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아..죄송해요. 그 일 생각하니까 아직도 좀 그렇네요.”
“어떤 면이 그렇다는 겁니까?”
“소송도 시작 안 했는데 데이 근무 때 유족들이 찾아와서 약 잘 못 준 간호사 나와라, 마라~말도 마세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일도 못하게 행패 부리고 보안 요원들이 몇 번이나 왔다 갔는지 셀 수도 없어요. 정말, 평소에 아버지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저희도 이렇게까지 말 안 해요. 이전에 아버지 간성혼수 왔을 때 면회 와서 서류에 의식 없는 사람 지장 찍어가던 인간들이에요. 면회 끝나고 보니까 환자 엄지에 빨갛게 인주가 묻어 있더라니까요? 나중에 그 환자 깨어나고 자식들한테 나가라고 고래고래 고함치던 거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 없을걸요? 정말, 기가 막혀!! 분명, 병원에서 아버지 사망한 김에 합의금 받으려는 수작이에요. ”
아직도 그때 그 상황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미는지 손부채를 부치며 화를 삭이는 신예희였다. 분명 정은안의 사망과 관련된 참고인 조사인데 환자 유가족에 대한 성토장이 된 듯했다. 이만식은 삼천포로 빠진 답변을 다시 정상 궤도로 끌어오기 위해 신예희에게 질문을 했다.
“투약 사고와 관련해서 정은안씨와 보호자들이 자주 접촉을 했나요?”
“뭐...접촉을 한다기보다는 보호자들이 소리 지르는 걸 자주 들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자기가 실수했는데, 말은 못 하고, 자기 대신 누명 쓴 사람이 계속 당하는 건 뻔히 보이고..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다시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 네..."
고작 참고인 조사 4명 했을 뿐인데 이만식과 구인호는 벌써 지치는 것 같았다. 마침 뱃속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요동을 쳤고 둘은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불규칙한 식사시간과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위장병은 이만식의 오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작년 내시경 검사 때 의사로부터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었는데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벌써부터 건강검진을 피하고 싶은 기분이다.
“R-r-r-r-r-r-r-r-r-"
‘얘가 웬일이래?'
[여보세요? 승호야, 오랜만이다.]
여청과에 있을 때 같이 일했던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만식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근황을 전했다. 인사말이 얼추 마무리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만식은 아무 말없이 후배의 용건을 경청했다. 통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만식 이마에 있는 주름의 수가 늘어났고 이따금씩 한숨도 새어 나왔다.
[그래, 알았다. 걱정하지 말고. 그래. 다음에 소주나 한 잔 하자.]
“인호야, 참고인 조사 몇 명 남았다고 그랬지?”
“4명만 더 하면 됩니다.”
“그럼 비공식으로 1명 더 추가다.”
“네?”
“나중에 보면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