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진짜 내 것은 얼마나 남을까?

문유석 작가의 강연에서 배운 '깊이 읽기'의 힘

by 해결사

저번 주에 문유석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강연 중 한 청중이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작가님처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세요." 솔직히 처음엔 '역시 뻔한 답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이어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저를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작가님은 운동이나 밖에서 노는 것에 큰 재미를 못 느끼셨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문학전집을 펼치기 시작했고, 초등학생이 읽기엔 꽤 어려운 내용이었음에도 그 전집이 당시 작가님에게는 가장 소중한 장난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집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던 경험이, 지금 자신의 글쓰기 능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마음 한켠이 찌릿했습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나 풍요롭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대단합니다. 유튜브, 팟캐스트, 뉴스레터, 오디오북, SNS 지식 채널까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 강의를 바로 들을 수 있고, 눈 깜빡할 사이에 새로운 인사이트를 접할 수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분명 엄청나게 좋아진 환경입니다.

그런데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좋아진 건 맞는데, 그만큼 한 가지를 깊숙이 파고드는 경험을 할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 게 아닐까?"

선택지가 없었던 그 시대에는 그게 오히려 강제로 한 가지에 집중하게 만드는 환경이었습니다. 작가님에게 문학전집은 그냥 유일한 선택지였고, 그래서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요. 지금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한 번 읽고, 유튜브 요약 영상 보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요.



"읽었다"는 것과 "내 것이 됐다"는 건 다릅니다

저도 사실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요즘 책을 읽으면 한 번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뿌듯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한 달이 지나 "그 책 어떤 내용이었어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정말 '내 것'이 된 걸까요?

저는 조심스럽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세 번, 네 번은 읽어야 비로소 내 사고방식 안에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그냥 스쳐 지나가고, 두 번째에야 구조가 보이고, 세 번째부터 '아, 이게 이런 말이었구나'하는 감이 오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미 또 다른 책, 또 다른 영상, 또 다른 콘텐츠로 손이 가고 있으니까요.



지식의 양이 아니라 깊이가 코어 능력을 만들지 않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우리가 '코어 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은밀한 방해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쓰기 실력, 논리적 사고, 깊은 공감 능력 같은 것들은 얕게 많이 읽는다고 쌓이지 않습니다. 한 가지를 반복해서 소화하고, 내 언어로 다시 풀어보고, 나만의 해석을 붙이는 과정에서 쌓입니다.

작가님이 그 문학전집을 수십 번 읽으며 무의식 중에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을 겁니다.

물론 선택지가 많다는 건 축복입니다. 저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것을 접하고 싶습니다. 다만 그 풍요로움 속에서 가끔은 의도적으로 한 발 멈추고, 한 가지를 더 오래 붙들고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볼게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에 머무는 능력은 오히려 더 희귀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오히려 제 독서 습관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최근에 읽은 책 중, 정말 '내 것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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