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예술로 해방되다 《국보》

by 김보통

리뷰 : 영화 《국보》 (2025)

감독 이상일

출연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 와타나베 켄, 타카하타 미츠키 외

원작 요시다 슈이치 『국보』



신에게 빈 게 아니라 악마와 거래한 거야.
모든 것을 버릴 테니 일본의 최고가 되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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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을 타고난 타치바나 키쿠오. 가부키 무대를 동경하던 15살 소년은 재능을 인정받아 가부키 명장 하나이 한지로에게 선택되어 '한지로'라는 이름의 세 번째 계승자가 된다. 혈통과 이름이 함께 계승되는 가부키 세계에서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난 키쿠오가 '3대 한지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모든 것을 버릴 테니 최고의 온나가타가 되게 해 달라는 악마와의 거래가 성사된 덕이었을까. 하나이 한지로의 아들, 정통 후계자 슌스케가 아닌 키쿠오가 그의 이름을 잇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찰나, 키쿠오는 '3대 한지로'라는 이름의 무게만큼 불어난 빚까지 물려받고도 슌스케의 삶을 훔쳤다고 손가락질받는다. 가부키 세계에서는 이름을 계승하면 전대의 명예와 예술적 역할까지 승계받는 시스템을 따라 큰 무대에서 주연으로 서는 약속의 문을 여는 것인데 '3대 한지로'가 된 키쿠오는 물려받은 이름이 우습게 단역만 전전한다.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출신이 문제였을까, 혼외 자식의 존재가 문제였을까. 과거와 현재가 모두 그의 발목을 잡고, 언론에서는 연일 뭇매를 때린다. 마침내 단역마저 끊기고, 더 이상 아무도 배역을 주지 않자 키쿠오는 중견 배우 아즈마 센고로를 찾아가 사정해 보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벼랑 끝에 몰린 키쿠오의 선택은 그의 딸 아키코였다. 자신을 향한 아키코의 동경과 애정을 이용해 몸을 섞고, 그녀의 가문에 편입되고자 했지만 아즈마 센고로가 딸과 인연을 끊으면서 키쿠오의 마지막 발악도 재가 되어버린다. 가부키 중심 세계에서 쫓겨나더라도 연기만은 놓지 않던 키쿠오지만, 가부키를 예술이 아닌 술자리의 분위기를 채우는 유흥의 일부로 소모하는 무대를 전전하는 생활은 그의 몸과 마음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온나가타를 연기하던 키쿠오는 자신을 여자로 오해한 취객에게 사기꾼이라며 폭행당하고, 옥상에서 술에 취한 채 흐트러진 모습으로 춤을 춘다. 그 장면은 모든 것을 버릴 테니 일본의 최고가 되게 해달라는 야심에 가득 찼던 그의 과거와 선명히 대비된다. 꼿꼿하던 자세는 무너지고, 총기로 반짝이던 눈은 텅 비어버렸다. 그나마 곁에 남아있던 아키코마저 "대체 어딜 보는 거야!"라는 외침을 끝으로 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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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추락할 곳이 있을까.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키쿠오에게 한줄기 빛이 내려온다. 임종을 앞둔 국보 만기쿠가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하나도 없는 좁은 방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만기쿠는 키쿠오에게 춤을 춰보라고 하고, 영화의 다음 장면은 가부키 전문 극장에서 함께 공연하는 키쿠오와 슌스케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조지의 두 사람>으로 무대에 복귀한 키쿠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가부키 무대의 화려한 연출, 아름다운 복장 때문이 아니다. 모든 욕망과 갈등을 내려놓고, 무대 위에서 그 순간의 공연을 순수하게 즐기는 모습이 가슴 뭉클했다. 나는 이때 비로소 그와 악마의 거래가 완성되었다고 느꼈다. 슌스케를 제치고 '3대 한지로'가 되면서 일본 최고 가부키 배우의 계보를 이을 자로 인정받은 순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영광을 잃고, 성공하겠다는, 인정받겠다는 욕망마저 자리를 잃은 때가 일본 최고 가부키 배우가 되는 시작점이었다. 진짜 국보의 탄생은 예술이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존재의 목적으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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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보에서 키쿠오의 첫 등장 씬은 1964년, 타치바나파 신년회의 <세키노토> 공연이다. 얼굴에 하얀색 분칠을 하고, 입술을 빨갛게 물들인 키쿠오가 벚꽃나무 정령 스미조메를 연기한다. 키쿠오의 연기는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관객들을 웃음 짓게 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공연을 마치고 분장을 지우면서도 방금 전 공연의 흥이 사라지지 않아 친구와 대사를 치고받았던 모습은 귀엽고 순수했다. 온 가족이 해체되고 혼자가 되어 하나이 한지로의 슬하에 거두어졌지만, 가부키 세계를 만난 키쿠오의 얼굴에는 슬픔이나 절망의 흔적보다는 감동과 흥분의 표정으로 가득했다. <렌지시>, <백로 아가씨>를 처음 보고 두 눈을 반짝이는 모습, 수리부엉이 문신 위로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에서 가부키를 향한 키쿠오의 열정과 순수함이 부각된다. 슌스케와 함께 <두 명의 등나무 아가씨>를 연습하던 시절은 또 어떠했나. 이름의 무게도, 후계 구도의 갈등도 없이, 오로지 서로의 호흡에 맞춰 부채 끝을 정렬하던 그 시간들. 그때 두 사람이 나누었던 것은 서로를 향한 질투가 아니라 예술을 향한 순수한 몰입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예술만이 인간을 고통스러운 욕망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고 말했다. 키쿠오가 모든 것을 버릴 테니 일본 최고가 되게 해달라고 악마와 거래했을 때 악마가 가져간 제물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그의 지독한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싶고, 증명하고 싶고, 끝내 살아남고 싶어 했던 그 처절한 욕망들이 완전히 으스러졌을 때 비로소 그의 안에는 오직 예술이 들어설 빈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칸트가 말한 무관심적 만족은 바로 이런 순간을 뜻하는 게 아닐까. 사욕 없이, 내가 이 예술을 통해 무엇을 얻을지 계산하지 않는 상태, 오직 무대 위에서 춤추는 행위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상태. 복귀한 <도조지의 두 사람>에서 보여준 키쿠오의 미소는 승리자의 미소가 아니라 마침내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석방된 자의 평온함처럼 보였다. 그렇다. 결국 악마와의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러나 악마가 가져간 것은 키쿠오의 영혼이 아니라 그를 괴롭히던 열등감과 인정 욕구였고, 그 대가로 돌려준 것은 그가 소년 시절 그토록 사랑했던 순수한 가부키 그 자체였다. 욕망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예술로 해방된 인간. 그 비우고 비워내어 투명해진 존재는 비로소 국보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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