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발언
먼저, 후배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이렇게 목소리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지휘관, 참모님들을 비롯해,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초급간부가 아닌 선배님들께서 남의 일임에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심에 후배로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실 저는 용기 내서 마이크를 잡긴 했지만, 예전 어떤 병사가 세미나에서 "저는 앞에 계신 장군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했던 일화처럼, 제 이야기와 제가 "요즘 MZ세대들은.."으로 희화화되고 비난받을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초급간부 중의 나름의 선임으로서, 제가 다른 후배들에게 말할 용기를 주고, 진정으로 처우가 개선되어 더 훌륭한 인재가 들어와 조직이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신 있게 목소리를 냅니다.
군인의 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지 금전적 보상을 얻기 위한 단순한 직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명감으로 군(軍) 생활을 수 십 년 해오신 선배님들 앞에서,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도록 애국심을 길러달라 사명감을 길러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닌, 금전적 보상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후배로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저희의 정신적 뿌리인 독립군분들은 되려 재산까지 독립자금에 보태면서 독립전쟁에 참여했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금전적 처우 개선이, 몇 초급간부의 흔들리는 애국심과 사명감을 더 크게 부여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애타는 심정으로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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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소심했다. 수업시간에 손 들고 발표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선생님께서 일어나 발표를 시키면, 얼굴을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입술만 움직일 뿐 입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성격과 달리, 요즘말로 하자면 '하고자 하는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무언가 비효율적인 일, 불합리적인 일에는 꼭 나의 의견을 개진했다. 내가 이용하는 서비스에 '건의사항'이 없는 것보다 슬픈 일은 나에게 없었다. 게다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상에서 나의 키보드는 날뛰었다. 오프라인에서도 윗사람이나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면 나름대로 말도 잘했다. 아무도 집중하지 않는 학급 회의에 임원도 아니면서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반 반장들은 어떻게 보면 하는 일마다 토 달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성격은 딴 데까지 않았다. 선배한테 불합리한 교육을 받으면 더 높은 선배를 찾아가 그 선배를 고자질했고, 불합리하게 벌점을 받으면 군기의 상징인 당직실까지 찾아가 당직선배에게 이는 정당치 않다고 따졌다. 조직의 처우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의 현실적인 방법으로 외부언론과 컨택까지 했었다. 나는 상하관계가 엄한 조직에서 나는 정신 나간 후배이며, 언제나 내부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폭탄 같은 조직원이다. 그러나 나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바로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이런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언젠가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소신껏 행동한다.
이 과정 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 먼저,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무언가 바꾸기 위해 예를 들어 일개 직원의 의견이 사장까지 전해져야 한다면, 그 의견은 부장도 아닌 과장에서 멈춘다. 이 또한 선방할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었는데, 조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한 검사가 '아래'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모든 악과 부정을 저지르며 '위'에 가려는 내용이다.(아마) 나 또한 부정을 저지른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꾸려면 어떻게든 높은 직위에 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는 나는 결국 조직을 배신한 내부고발자라는 것이다. 내 편인 줄만 알았던, 내 앞에서 나에게 공감해 주며 나의 의견을 잘 들어주었던 사람이 뒤 돌고 나면 나를 비난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신고한 놈'으로 손지검을 받아야 했다.
맨 위에서 말했던 글은 사실 과거가 아니다. 내가 내일 열리는 300여 명이 참석하는 초1급2간3부 처4우5개6선(검색방지) 대토론회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무섭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지. 동기조차 어차피 곧 초1급2간3부 탈출하는데 남을 위해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꼭 그렇게 해야 하냐는 조언 속에서. 또 이후 내가 암암리 속에서 어떠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지. 이 글을 쓰는 동안 더 용기가 없어진다. 내일 일정상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나의 정신이 죄책감을 덜 느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