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극복하는 법

서평 <달려라 아비>(창비, 2005)

by 정훈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달려라 아비' 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 2005)에 실린 단편 소설이다. 작가는 2002년 단편 <노크 하지 않는 집>으로 제 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후 여러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 그리고 산문집을 출간하였으며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소설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이나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시키며 결코 가볍지 않은 내면의 주제 의식을 독자에게 던져주곤 한다. 작가의 문체나 표현 방식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사를 권유할 만큼 신선하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달려라 아비' 는 자신(딸)을 홀로 낳아 키운 어머니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번도 같이 살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하여 어머니에게 들은 사건들을 자신만의 생각으로 상상하며 써내려 가고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느낌, 두 분의 만남, 처음으로 아버지가 달리기를 했던 일, 어머니를 구박하는 할아버지의 속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해진 아버지의 소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아마도 딸은 태어나면서 유일하게 함께한 엄마에게 많은 것을 묻고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빠는 왜 없는지? 왜 그가 돌아오지 않는지? 에 대한 물음들에 대해서 엄마와 딸은 결핍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당당하며 딸은 사뭇 재치 있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있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그리움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결핍된 환경을 슬픔이나 위로로 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세월을 살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떠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왜 없었을까?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테지만 “아버지가 미안하대, 그리고 그때 참 예뻤대"라는 아버지의 말을 딸에게 전해 들었을 때, 못나고 무책임한 남편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 바쁜 현실을 살아가면서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알고 싶지만 묻고 싶지 않은 질문 “왜 집을 나갔는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은 그 순간 중요해지지 않는다. 용서라기보다는 흘러간 시간만큼의 축적된 감정에 대한 해소이다. 우스운 모습으로 달리던 아버지에게 눈이 부실까 선글라스를 씌워주는 딸의 마지막 모습도 동일하게 해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화자는 무책임하게 떠난 아버지를 비난하지도 않고 남겨진 가족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무능하게 보이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 나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고통과 상처를 힘들어한다면 이 작품을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상처와 고통은 상대에게 동일한 어려움으로 갚아내거나 왜 그런 거냐고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저지른 행위와 상관없이 나의 삶을 나 답게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상처에 대한 진정한 극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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