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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희 May 02. 2021

[4월호] 우리 부부가 라면을 먹는 법

2인 가정통신문 4월호 발행.

라면을 -으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먹을 때야 맛있게 먹긴 한데, 밀가루도 별로  좋아하고 면류도 별로  좋아하는 탓에 우리집 부엌 상부장엔 라면을 쟁여두지 않는다. 싸다고 5 짜리 세트로 사두면 오빠가 몰래몰래 하나씩 끓여먹길래 웬만하면 아예 안 사두려고 한다. (오빠는 뱃살을 빼야 한다. 오빠 미안..)


미안하지만 우리 부부가 라면을 먹는 순간은 철저하게 나에게 달려 있다. 주로 언제냐 하면, 금요일 저녁에 둘 다 일 마치고 저녁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이제 자야겠다 싶어서 씻고 양치질하고 자려는 그 순간이다. 문득 라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면 오빠한테 일단 물어본다. 오빠, 라면 먹고 싶지 않아? 오빠의 대답은 당연히 YES.


하지만 섣불리 라면을 끓여먹으면 99% 후회한다. 대충 허기가 지는 시간이라 라면이 생각난 거라면 먹고 나서 더부룩한 느낌만 든다. 정말 내 몸이 라면을 원하고 있는 건지 정확하게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유튜브를 킨다. 검색창에 '라면 먹방'을 친다. 먹방 유튜버들의 현란한 먹방 영상이 주르륵 뜨면, 하나씩 먹방 영상을 플레이해본다.


우리는 먹방 취향이 비슷하다. 하나, 유튜버가 말을 하지 않고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둘, 라면이랑 다른 음식을 같이 먹기보단 라면 하나만 조지는 영상이어야 한다. 셋, 김치랑 먹어야 한다. 넷, 너무 호들갑 & 오바 떨지 않고 묵묵히 먹어야 한다. 우리의 레전드 영상으로는 입짧은 햇님의 진라면 영상, 흥삼이네의 열라면 영상, 프란의 진라면 영상이 있다. 이 영상들을 같이 호들갑 떨면서 보고 나면 미친듯이 라면이 생각나면서 우리 둘 다 배가 꼬르륵 거린다. 아, 이 라면고픔은 찐이구나. 오빠가 "내가 사올까?"하면 나는 "응."하고, 오빠가 편의점으로 튀어나가면 나는 냄비를 꺼낸다.


냄비에 물을 올린다. 물은 1.3인분 정도로만 아주 조금 넣는다. 동시에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우리는 맵고 짜고 자극적인 라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이 한강인 라면은 용서할 수 없다. 너무 짜면 끓인 물을 더 붓더라도 처음엔 일부러 물을 자작하게 넣어서 라면 스프가 면에 잘 베도록 해줘야 한다. 물이 끓을 동안 냉장고에 파, 청양고추 두어개를 꺼내서 쫑쫑쫑 썰어둔다. 그럼 그 사이에 오빠가 진라면 매운맛 2개를 사온다. 라면은 꼭 진라면 매운맛이어야 한다. 물이 팔팔 끓으면 스프를 탈탈 털어넣고 면을 넣는다. 썰어둔 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극강의 자극적인 맛을 위해 고추가루도 반스푼 정도 넣어준다. 면은 흔들지 않는다. 그 모양 그대로 익도록 냅둔다. 면이 익기 전에 계란 하나를 톡 까서 넣고 면으로 슬쩍 덮어준다. 그동안 오빠는 아주 재빠르게 김치를 접시에 담고 앞접시, 냄비받침, 수저를 식탁에 둔다. 그럼 나는 라면을 호다닥 식탁에 옮기면 끝. 이 모든 과정은 2분 안 쪽으로 끝내야 한다. 손발이 착착 맞는다.


면은 아주아주 꼬들하고 매운 맛이 잔뜩 벤 상태다. 각자 자기 그릇에 조금씩 덜어 먹는다. 아까 본 먹방 유튜버처럼 둘이서 말도 없이, (한다면 맛있다- 오 맛있다 정도) 호로록호로록 먹는다. 김치랑 먹고, 숨어있는 계란이랑 먹고, 면만 먹고, 국물도 틈틈히 떠먹는다. 진짜 맵고 짜고 자극적이라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다. 역시 라면은 최대한 나쁘게 먹어야 본연의 맛을 극대화할 수 있다. 씁하 씁히 하면서 먹는 라면은 끓이는 시간 만큼이나 먹는 시간도 순식간이다. 입 안이 쫌 짜도 라면 먹을 땐 굳이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렇게 라면 2개를 뚝딱해치우고 각자 물 한 컵씩 마신다. 아주 만족스러운 라면이었다. 남은 설거지는 내일의 우리에게 미룬다. 역류성 식도염이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그대로 누우면 잠이 바로 오더라고. (건강에 안 좋은 건 알지만 아주 가아끔 이렇게 먹는 거니까 괜찮겠찌?) 우리 부부의 완벽한 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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