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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필 Kimcine feel Sep 29. 2018

백산수와 효모발효빵

기가막힌 조합


심야버스에서 충전중


백산수와 토종효모빵의 완벽한 조화



앞선 문장에 어느하나 어울리는 표현들이 없지만 백산수와 토종효모빵으로 때우는 밤 10시 버스에서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이날은 평소보다 무척 빠르게 서울 버스를 탔다. 추석 연휴 다음날이라서 일찌감치 예매를 해두었는데, 무척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버스에 올랐다. 수업은 오후 2시인데, 아침 7시 20분 버스에 올랐고, 나는 그 버스에 오르기 위해 베이지 볼캡 모자를 푹 눌러썼다. 사실, 어젯밤부터 나는 내일 모자를 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늦잠을 잔 게 사실이다.

충무로역 영화인의 길을 건너다.

지하철에서 내릴 수 있는 용기



나는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었다. 지금에야 안 사실이지만 어쨌든 과거에 묻힐 경험은 하나도 없게하시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한다. 몇 년 전에 잡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서울에서 반 년을 지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스마트폰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아서 지하철 거꾸로 타기를 수번 반복했었다. 오죽이나 촌뜨기였으면, 지하철 교체?시간에 모두 내린 순간까지도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했었다. 난 이 지하철을 타고 가야만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 땐 그 생각이 전부였다. 나는 이 길을 택했고, 이 곳에서 내리고 나면 다시 길을 잃겠지? 하지만, 난 그 때 그 지하철에서 내려 얼마간 헤매긴 했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했었다. 지금 내 인생도 그렇게 목적이 달라지긴 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커피가 백산수인 여자


갈증 해소에 딱인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단연 커피다. 돈도 없는 주제에 커피는 좋아해서 늘상 커피숍을 찾는데, 커피숍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다. 내가 왜 이리 가난하냐 물으면 팔할이 커피다. 이걸 고쳐야하나 싶다가도 고칠수 없는게, 장소를 구분하며 글을 쓰는 내 습관 혹은 버릇이다. 조용한 카페를 선호하기는 한다. 다만 너무 고요한 적막은 오히려 귓가에 징-하는 울림이 들린다. 귀 안쪽에서 나오는 소리라 뭐라 형언할 수는 없지만 기분좋은 자극은 아니다. 그래서 되려, 소음이 적당한 카페를 찾는다. 카페 내부로는 오전 햇살이 비췄으면 좋겠고, 드문 드문 책을 읽는 사람도 몇 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사람보다는 창밖을 바라봐주는 손님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고, 가끔 테이크아웃을 하는 고정 손님이 있어서 적당히 울리는 커피 머신 소리도 꽤 좋다. 어쨌든 창가에 햇살이 비추면, 햇살을 조금 벗어난 원목 의자에 앉는다. 허리를 펴고 앉을 때 적당한 각이 유지돼 노트북을 바라볼 때 목이 휘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무얼하는지 가끔 궁금하듯 지나가는 아르바이트생이 있다면 나는 더욱 열심히 내 일에 매진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쓰는 글에 빠져서 다닥 소리를 내며 빠르게 키보드 위를 손가락이 날아다니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카페를 고를 때 예민하리만치 나만의 생각에 갇힌다. 이래서 내가 아마 글을 못쓰나 보다. 선조들은 장비를 탓하지 말랐거늘. 
어쨌든 충무로 역에서 나와 도대체 못 찾겠는 내게 '할리스 보이실거예요'라고 말해준 분께 감사하다. 왜냐하면 나는 길치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카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거든요. 




인생은 더러는 내리막길인듯 싶다가, 자세히 보면 오르막길이다.


여길 언제 와봤더라 했더니, 2013년도였던가 전주국제영화제 홍보팀으로 일했을 때 왔던 언론시사회장이었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 때 기억이 떠오르며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굉장히 힘들었을 때였다. 계약 기간만료를 알고 들어난 임시직이었고,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여기에 겁 없이 들어와 이렇게 밤낮이 뒤바뀌고 잠을 줄이며 식사까지 거른채 서울에 와있나. 홍보팀의 난코스이자 꽃이라면 언론시사였는데 끝나고서는 암울하달까 참달하달까 하여간 그랬다. 물론, 언론시사가 그랬던 게 아니다. 커튼콜이 오르고 박수와 함께 모든 이가 떠난 자리에 남아 조용히 명찰을 추리고서 짬을 내 국밥한그릇 먹으려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 



' 나 ,여기서 뭐하는 거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확하지는 않지만 5년이 흐른 지금 내가 여기를 다시 오게 될 줄 그 땐 전혀 상상도 못했다. 더욱이 놀라운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영화제에 들어왔을까 했는데, 오마이갓! 주님, 저 지금 영화 하고 있어요. 참 인생은 살아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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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막힌 조합,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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