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1>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에세이 작가가 되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 글을 시작으로 나는 에세이스트가 되고, 에세이 스타가 되고, 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인스타 팔로워 다섯 명쯤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인스타 팔로워 다섯 명 올려보려고 브런치 시작했다, 암.
첫 글은 거창하게 써야겠다, 하고 생각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펜이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굳은살이 생겨서인가. 손까지 굳은 모양이다. 굳은 손. 그러다 그냥 박정민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읽으며 '이야, 나 좀 박정민이랑 비슷한데'라고 생각한 감상을 급히 적었다. 새벽 감성에 취했다.
'어, 이거 좀 높다*'
바로 브런치에 옮기고, 작가 신청 딸깍.
(*필자는 요즘 좋은 걸 보면 높다고 말한다. 약간 따라가기 힘든 그 높은 느낌이랄까.)
심의는 한 5일이 걸린다고, 흠, 싶던 찰나. 이틀 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와! (무려 브런치 작가 신청 4회차였다. 대략 5년에 걸친 네버엔딩 스토리. 이젠 엔딩 스토리다.)
나 따위가, 작가?
내가 작가라니. 사실 나는 지금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다. 현실은 나도 못 지키고 있지만, 음 나를 지켜야 나라도 지키는 거 아닌가. 암튼. 입대 후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친구들부터 만족시켜야 다른 독자들도 만족을 하지. 어느 날 한 친구가 단톡방에서 말했다. "이 XX 왜 이렇게 어려운 말 씀?"
딱 걸렸다.
약간 높아 보이려고 어려운 말을 남발했다. 가끔은 챗지피티랑도 논의했다.
'... 이런 상황에 쓸 만한 두 글자 단어 추천해 줘'
'...'
'아니, 그런 거 말고 좀 더 신박하게 임마'
'...'
아, 그랬던 회심작인데. 젠장, 다 들켜버렸다. 수능 지문으로 나왔다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시오'(혹은 출제자의 의도)를 다 들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셈. 샘이 난다. 샘이솟아리오레이비
아무튼, 브런치엔 쉬운 말들로 글을 써보자. 이등병 자식아.
아, 맞다. 나는 이등병이다. 이등병은 2등 병사인 줄 알았는데 서열상 9,845등 정도 되는 듯. 이등병은 발언권이 없다. 신생아에 가깝달까. '어.. 음... 오... 예...'하다가 속으로 '으엉엉엥엉후'하고 울면 된다. 다행히 글을 쓸 권리는 있다. 군대 얘기는 보안이라 안 할 예정이니 댓글로라도 날 시험에 들게 하지 말 것. 발언(發言)권 대신 발이 얼어버릴 권리는 있는 나. 브런치에서 손놀림이라도 보여주겠다.
나의 글을 쓰는 역사는 7살 때로 돌아간다. (맞는진 모르겠다. 9살 때 같기도 하다) 어떤 시를 쓰는 교육을 받았는데, 그날부터 시집을 내겠다는 목표로 공책에 빽빽이 글을 써댔다. 지금이랑 똑같은 게 써놓고 공개를 안 했다. 엄마도 안 보여줬다. 내가 엄마라면 나 등교했을 때 꺼내봤겠지만. (아 젠장, 꺼내봤을 거 같다. 들고 등교할걸) 만약 세상에 시집을 내놨다면 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9살이 노트에 휘갈긴 시 모음집? 쒯. 멍청한 녀석. 놈은 스타가 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공개한다.
<25살이 군대에서 노트에 휘갈긴 에세이 모음집> !.
벌써 별로다. 놈은 스타가 되는 법을 모른다.
이후 중학생이 되었다. 그는 문학적 잠재력을 인정받아 문학 영재반에 들어갔다. 여자 14명에 남자 한 명. 폭력적이다. 그 클래스는 남중을 다니던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엄마 미워. 선생님까지 여자였는데, 샤샤샤샤샤이보이던 나는 낮은 턱 위에 올라서서 발표를 할 때면 홍당무보다 빨개지곤 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척했다. 나는 '문학영재'니까. 결국 그 해 교육청 영재원 마무리 행사에는 <노인과 바다> 독후감을 제출했다. 내 독후감은 호평을 받았고, 내년에도 '영재'이길 바라냐는(그냥 내년에도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와후. 일곱살 때부터 난 시를 써댔어, 영재였지.
놀랍게도 난 <노인과 바다>를 5장 정도 읽었다. 읽다가 프리미어리그를 봐야 해서 급히 인터넷 서핑을 했다. '노인..과 바..다.. 줄..거리'. 역시, 초등학교 때 ITQ 인터넷 자격증을 딴 보람이 있다. 그때부터 난 교육청을 불신했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다음 해 영재원을 또 다녔다. 어쩌면 즐긴 걸지도. 녀석. 물론 영재원 수업이 끝나면 누구랑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저 웹서핑의 신이 되었을 뿐.
그때부터였나. 논술 수업을 들어도 글은 읽지 않고 정보를 모아 내용을 상상하기 바빴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사회적 물의(?)를 빚지 않은 채 잘 살아왔다. 어쩌면 진짜 영재였을지도.
혹시나 이 글이 떴다면, 당신도 희망을 가져라. 나와 생면부지인 이가 이런 추잡한 자기고백을 읽고 있다니, 새삼 부끄럽다. 교단 위에서 발표하던 그때처럼. <노인과 바다> 대신 <노인과 바다 : 총정리 줄거리 포함(스포주의)>를 읽고도 충분히 독후감을 쓰고, 대학에 가고, 필력이 늘었으니. 당신도 희망을 가져라. (브런치 작가도 무려 4수 해서 사수했다. 영재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모르겠다. 인스타 팔로워 다섯 명 늘면 목표를 이뤘으니 그만둬도 되려나. 어디까지 가나 보자. 아니, 언제까지 쓰나 보자. 전역날까지 브런치 쓰면... 인생이 바뀌어 있으려나. 아, 생각만으로 높다. 지금이 저점이네. 지금 구독해라. (죄송합니다,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