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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Nov 12. 2024

'압도적 지배력'을 위한 직장인의 화요일 클래식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지 벌써 1년째가 되어간다. 이전 회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조직문화에 고민이 많다. 제조업 기반의 회사라 그런지 업무를 할 때, 격자무늬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조직의 역할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조언을 듣기도 했고, 위기를 체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격상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주어진 격자 안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 경쟁 시장에서 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전문성의 부재. 그것은 회사원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퇴근길을 걸어가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주어진 일을
압도적으로 해버리자

애매하게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다 보니 예전 회사의 방식대로 그저 80점 정도의 답안만 제출했다면, 하나의 일을 하더라도 200점짜리를 제출해 버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일을 기획하면서 수많은 합의와 절차를 거쳐 산출물이 나오겠지만, 애초에 내 산출물이 그들의 바이블이 될 수 있게 만들어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내가 들었던 화요일의 클래식음악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난, 위 영상을 보고 '압도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체감했다. 김수연 피아니스트의 발트슈타인 소나타 1악장의 연주다. 아티큘레이션, 프레이징, 글리산도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이 음악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저 피아니스트는 94년생이다.


위 연주자뿐만 아니라 음악도 가히 압도적이다. 베토벤은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할 정도로 청력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음악가에게 '사형 선고' 그 자체인 그러한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03년과 1804년 작품들은 음악사에서 길이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베토벤 3번 교향곡 '에로이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 그리고 1804년 작곡한 이 작품, 발트슈타인 소나타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어떻게 이 작품이 위대한 작품이며 음악사적으로 압도적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발트슈타인 피아노 소나타 악보

막상 피아노 악보를 보면 '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치곤 쉬워 보이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냐하면 장조이기 때문이다.(피아노 초보로서는 상당히 감사한 조성이다)


그러나 저 타악기처럼 정확한 리듬으로 쳐야 하는 코드와 불현듯 출현하는 조성 변화들에서 바로 '아 내가 악마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1악장의 1 주제(코드 진행)는 재현부 마지막 파트에서는 Bb major로 시작하다가 C major로 변환하고 2 주제(코랄) E major로 시작하지만, 재현부에 가서는 C major로 변하기 때문이다.

악마 같은 조성변화이다.


악보를 보는 것도 힘든데 엄청나게 빠른 템포와 아티큘레이션이 필요하며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까지, 그리고 긴 패시지까지 왜 이 곡이 입시 연주곡으로 잘 애용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옥타브 반 연주가 가능한 에라르 피아노

당시 획기적이었던 에라르 사의 피아노로 인하여 베토벤의 창작욕을 불태웠으며 다양한 음역대 연주와 울림으로 세밀한 셈여림이 가능했던 것이다. 토벤이 축적해 온 모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이 곡에 반영이 되었다.


오케스트라 관현악곡을 방불케 하는
전통에 기반한 '혁신적' 피아노 소나타

바렌보임의 폭발적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악장

3악장 연주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가 아주 좋다. 피아노로 마치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듯 대위법이나 복잡한 구조가 큰 흐름으로 어우러져 음악을 만들고 있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한 이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대작인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노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베토벤 3번 교향곡과 같은 위치의 창조적 산물이었다.


이 이후에 피아노 소나타들은 이처럼 교향곡의 성격을 담는 소나타로 발전하였다는 것에 이 곡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


거침없는 페달링, 기존의 고전주의의 트릴과 다른 트릴, 내밀한 감정의 셈여림을 통한 폭발등은 이 곡을 통하여 '고전주의'에서 베토벤 자신의 생각을 담은 '낭만주의'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틀 안에서 새로운 창조적인 작업을 하였다. 1악장에서는 소나타 형식, 3악장에서는 론도 형식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주는 교훈

베토벤이 과연 창조적 작업을 하기 위해 기존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했을까?

답은 아니다. 베토벤 교향곡 1번이나 2번 등 베토벤 초기 교향곡은 하이든 교향곡과 같은 고전주의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처럼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도 과거의 틀 안에서 과거의 것을 잘 이해하고 활용했고, 그 안에서 베토벤 주관적 아이디어를 잘 반영했기 때문에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같은 제조업에서 종사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큰 대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매너리즘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어쩌면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기존의 절차와 역할을 잘 이행하고, 그것을 '압도적'으로 이해하고 '압도적'으로 최선을 다해 업무 하다 보면 베토벤처럼 드디어 나만의 아이디어를 혹은 내 업무 권한 밖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


이 글을 읽는 직장인들 모두에게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발트슈타인' 같은 하루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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