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정 Dec 02. 2015

블루하우스를 찾아서

홍콩 여행기 -  첫째날의 오후



무계획으로 온 탓이었다.

나는 홍콩 길 한복판에서 형형색색의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의 여행 첫째날의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곰곰히 생각중이였다.

내가 있는 곳은 완차이. 시간은 오후 네다섯시 쯤.

일단 걷기로 했다. 

목적지가 없으면 어때. 그냥 걷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나는 여행중이었다.





Wanchai




완차이는 내 맘에 쏙 드는 동네였다.

내가 다시 홍콩을 가게 된다해도 나는 완차이에 묵고 싶다.

적당히 조용하고 필요한만큼만 활기차고 길거리 카페 아무곳에 들어가 지나가는 트램만 쳐다보고 있어도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동네.

첫째날에 느낀 완차이에 대한 생각은 여행 마지막날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침사추이보다 서울과 닮은 센트럴보다 나는 완차이가 더 좋았다.

물론 관광객도 비교적 덜하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완차이를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정말 많은 트램들을 봤는데

트램은 홍콩섬의 매력의 원동력 중 하나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알록달록한 트램들을 보면서 당장이라도 타고 싶었지만,

나는 트램의 노선도 정류장도 이용방법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여행을 가게 되면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용감해지는 나지만 여행 첫째날부터 모험을 할 용기는 조금 부족했다.

저 네모난 것들의 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뛰는게 더 빠를 것 같은 느린 걸음걸이하며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려야하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목적지 없이 걷고 있는데, 문득 2주일 전 호텔을 예약하면서

호텔이 있는 완차이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포털사이트 검색을 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그 중에 제일 기억에 남았던 '블루하우스'가 생각이 났다.


블루하우스가 생각이 남과 동시에 그 자리에 멈춰 선 후 스마트폰을 꺼내어 블루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대충 찾아보았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블루하우스.'


그 한줄을 읽자마자 나의 발걸음은 블루하우스로 향했다.

나는 공항 프린트존에서 뽑았던 완차이 지도를 폈고 블루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추청되는 곳을 점찍어 둔 뒤,

그 곳을 찾아 걸었다.




완차이에서 제일 큰 시장이라는 타이윤 재래 시장을 지나 5분쯤 걸었을까,

저 멀리 블루하우스가 보였다.





블루하우스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무슨 마음이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블루하우스의 맞은편에 서서 오랜동안 블루하우스를 쳐다보았다.




Blue House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용 건물인 블루하우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허름한 건물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서 있었을까.

파란색이 주는 묘한 느낌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조그마한 건물을 보면서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고 조금은 치열하게 살았을 저 곳에서의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며 나는 블루하우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페인트자국하며, 추위를 온전히 막아주진 못할 것 같은 위태로워보이는 옛날식 문마저 매력적으로 보였다면 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 될까,



처음엔 다른 건물인 줄 알았던 파란색 옆 회색 건물이 그 오래전 페인트가 모자라 칠하다 말고 그냥 두었다는 걸 알고 잠시나마 90년대 초의 홍콩인들의 자유로움을 상상했다.

우리나라였으면 어떻게든 파란색 페인트를 구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웃음이 났다.



Blue House



블루하우스 2층부터는 여전히 주거용으로 쓰이고 있고, 1층은 블루하우스의 역사가 담긴 생활사 박물관으로 이용된다는데

조금 아쉽게도 내가 간 날은 1층 박물관이 쉬는 날이였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많은 걸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뒤돌아보게 만들었던 블루하우스.



아직까지도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이 뭐였는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던 블루하우스다.





숙소로 돌아갈까 하면서 다시 지나간 타이윤 마켓 생필품 가게에서 한국에서 준비 해오지 못했던 홍콩용 돼지코를 하나 사서 나왔는데 주위가 시끌벅적했다.

싸움이 난 것이였다. 그리 큰싸움은 아닌 거 같아서 조금 보다가 지나쳐 가려는데

싸우던 남자 둘 중 한명이 갑자기 차에 타더니 나머지 사람을 향해 차를 들이밀었다.

짧은 거리라 속력은 높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화를 돋구기에는 충분했고 결국 몸싸움으로 번지고 주위는 난장판이 되었다.

제일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그것도 첫째날에 맞닥뜨린 상황치고는 그닥 달갑지 않은 상황이였다.





혹여 나에게 불똥이 뛸까 싶어 그냥 무시하고 갈까했지만 두려움보단 궁금증이 더 컸나보다

나는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뒤로하고 홍콩인들에 섞여서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동영상과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던, 우리나라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은 홍콩 젊은이들을 보며

누군가가 신고라도 해줬음 싶었고, 다행히 내 옆에 서 있던 여성분이 신고로 추정되는 통화를 하는걸 보고서야 발걸음을 뗐다.  


시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경찰차와 구급차 여러대가 나를 지나갔고, 

마음을 놓고 다시 나의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금은 피곤했다.

해는 이미 거의 다 지고 있었고 이른 아침 비행으로 약간은 지쳐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숙소에 곧바로 들어가긴 너무 아까운 첫째날이었다.


완차이 도로를 지나가는 트램을 보며, 결국 트램을 타보기로 했다.

아무곳이나 정차하는 줄 알았던 트램이였는데 자세히 보니 조그마한 정류장들이 거리 곳곳에 있었다.

정류장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냥 트램이 그려져있는 표지판 하나가 달랑 세워져있다.

표지판보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찾을 수 있었던 트램 정류장.

배차간격 또한 짧아서 금방금방 탈 수 있었다.










홍콩 트램 내부 모습




그렇게 목적지도 없이 나는 트램에 올랐다.

아쉽게도 2층 맨앞자리는 사수하지 못했지만, 처음 타보는 트램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느릿느릿 홍콩의 밤거리를 내려다보며 내 생각 또한 여유로워졌고,

적당한 따뜻함의 바람과 홍콩 사람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하염없이 홍콩에 빠져들었다.




사실 홍콩에 오고 싶었다기보단, 내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온 여행이었다.

졸업을 앞 둔 4학년의 청춘은 불안하고 흔들리기 일쑤였고, 

한없이 나쁜감정들이 나를 집어삼킬 때가 있는데 그럴땐 속절없이 우울함에 파묻히고 만다.

그 기분은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태의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말 백마디를 들어도 한 번의 부정적인 생각이 더 크게 나를 지배했었다.


그래서 온 거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게 여행이니까,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러.


멀리서 보니까 일상속에서 하던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더라.

내 일상보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다양한 형태의 고민들이 떠다니겠지.

내가 겪는 이 흔들림도 내 안에서만 컸지 멀리서 보면 별 거 아닐것이다.





좋아하는 걸 할때 행복하듯, 그 때의 트램 안에서의 나는 참 행복했다.









트램을 타고 한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강변이 보이길래 일단 내렸다.

구글맵을 켜서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하니, 꽤 멀리왔다.

이름도 정확한 주소도 모르는 강이 흐르는 동네에서 조금 산책을 하다가 타고 온 길의 반대편 트램에 다시 올라 숙소로 향했다.








이 정도면 만족할만 한 첫째날이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대단하게 맛있는걸 먹지 않아도 멋진 옷을 쇼핑하지 않아도

나의 홍콩에서의 첫째날은 충분했고 행복했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홍콩(香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